설날, 산소와 납골당 비교체험기

편리함과 한적함, 당신의 선택은?

등록 2008.02.08 09:58수정 2008.02.0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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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 엄마는 일찍부터 동생과 나를 깨우신다.


"빨리 일어나서 차례상 준비하자. 늦게 나가면 길 막혀서 안돼."

평소보다 2시간이나 이른 기상시간, 휴일 같지 않은 휴일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리 가족은 명절 날 아침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다. 아침에 차례상을 차리고 나서 친할머니가 계신 납골당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계신 산소를 순회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납골당 가는 길이 꽉 막혀 버리기 일쑤다.

올해도 어김없이 아침 일찍 졸린 눈을 비비며 차례상을 차리고, 비몽사몽으로 차례를 지냈다. 부모님을 따라 차에 오르면서 문득 생각했다. '나중에 우리 부모님은 어디에 모실까? 또, 나는 어디가 좋을까?' 매년 의례적으로 친할머니의 납골당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산소를 따라 다니기만 했지, 미처 그런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아마도 죽음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여겼기 때문이리라. 이번 설에는 두 곳을 비교, 체험한다는 생각으로 발길을 옮겼다. 항상 차에서 못다 잔 잠을 청하던 나였는데 오늘만큼은 차 안에서도 눈이 말똥말똥, 잠이 오질 않았다.

분주하지만 깔끔하고 저렴한 납골당


우리 가족은  ‘ㅇㅇㅇ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올해에는 차례를 지낸 후에, 세배도 하고 담소도 나누었더니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9시쯤 출발했는데, 벌써 납골당 주차장은 만원이 되어서 임시 주차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임시 주차장과 추모공원까지 거리가 멀어 납골당에서 마련한 차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집에서 편히 앉아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는 설날 아침이었다.

 분주한 임시 주차장, 가족과 함께 납골당으로 향하고 있다.
분주한 임시 주차장, 가족과 함께 납골당으로 향하고 있다.김혜민

 앉을 곳이 없어서 서성이고 있는 추모객들
앉을 곳이 없어서 서성이고 있는 추모객들김혜민

 좁은 복도, 꽉 들어찬 납골함들. 할머니는 중간쯤 계시다.
좁은 복도, 꽉 들어찬 납골함들. 할머니는 중간쯤 계시다.김혜민

납골당에 들어갔다. 수많은 추모객 덕분에 복도에는 앉을 곳 하나 찾기 힘들었고, 할머니의 유골함이 모셔져 있는 방 또한 좁아서 잠시 서 있다가 나왔다.


가끔은 다른 추모객들과 부딪히기도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명절 때만 방문하는 곳인데, 그조차도 오래 머무르지 못할 때가 많아 할머니께 항상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와 본 할머니 납골함에는 위, 아래층에 다른 납골함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아빠가 말씀하셨다. "답답하시겠구나…." 그런 아빠를 보는 나의 마음도 답답해져옴을 느꼈다. 

반면에, 납골당 내의 분위기는 언제나 깔끔하고 밝게 유지되고 있었다. 올해에도 예쁜 꽃들과 장식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납골당이라도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지만은 않다.

우리 가족도 할머니 납골함 앞에 사진을 붙여두고, 꽃도 걸어두었는데, 볼 때마다 왠지 나와 멀지 않은 곳에 계신 기분이 든다. 할머니의 옆 칸에는 다른 가족이 차례로 써내려간 편지도 보였다.

 깔끔한 납골당 내부
깔끔한 납골당 내부김혜민

이곳 납골당은 차례를 지내는 곳과 납골함이 모셔져 있는 곳이 분리되어 있고, 곳곳에 관리 요원이 배치되어 있다. 한쪽에는 고인의 성함이 쓰여진 조그마한 패를 모아 놓았는데, 돈을 꽂아 놓으면, 후에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이용된다고 한다. 우리도 배를 접어서 할머니 위패에 걸어두었다.

친할머니가 계신 납골당의 한 칸 가격은 약 300만원대이고, 관리비용도 30년에 50만원으로 꽤 저렴한 편이다. 가격이 싸고, 국가에서도 적극 권장하기 때문인지 납골함 수는 꾸준히 늘고 있었고, 추모객들도 부쩍 많아졌다. 주차장 자리가 만원이었던 올해의 풍경은 작년엔 볼 수 없었던 일이었다.

우리는 납골당에서 20분쯤 머문 후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산소로 발길을 돌렸다. 

 고인의 작은 묘패를 모셔놓고, 추모객이 묘패에 꽂아둔 돈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이용되고 있다.
고인의 작은 묘패를 모셔놓고, 추모객이 묘패에 꽂아둔 돈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이용되고 있다.김혜민

한적하지만 높은 비용, 잦은 손길 필요한 산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계신 파주의 산 길은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물론 교통체증이 심한 곳도 있지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산소는 다른 묘가 많지 않기에 가는 길이 납골당에 비해 한결 수월했다. 깊은 산 속에 자리잡은 산소에 도착하면 마음의 여유가 느껴진다.

산소 앞에서 차례도 지내고, 돗자리에 앉아 편안히 쉬다 가기도 한다. 추석 때는 주변 밤나무에서 밤을 따기도 했다. 올해에도 우리 가족과 친척은 산소 앞에 돗자리를 펴놓고, 오순도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엄마는 "가족들이 오랜만에 와서 재롱을 부리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외롭지 않으시겠다"라며 좋아하셨다.

 한적한 산 기슭으로 가는 성묘길
한적한 산 기슭으로 가는 성묘길김혜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묘 앞에서 편히 쉬고 있는 가족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묘 앞에서 편히 쉬고 있는 가족들김혜민

하지만 그동안 발길이 뜸했던 탓에 예전에 내린 눈이 아직도 소복히 쌓여 있었다. 눈을 치우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봄에는 자주 와서 잡초 제거도 해야 한다. 주변에 후손들의 발길이 끊겨 관리되지 않고 있는 산소들도 꽤 많은 듯 보였다. 한국토지행정학회는 돌보는 사람 없이 버려진 무연고 묘지가 전국에 40% 가까이 된다고 하였다.

 산소에 쌓인 눈을 제거 하고 있는 삼촌
산소에 쌓인 눈을 제거 하고 있는 삼촌김혜민

이곳 산소에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나란히 누워계신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몇 년이 지나서 할머니 옆에 할아버지가 안장되셨다. 부모님께 이곳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산소로 정하신 이유를 묻자 양지 바른 곳을 오랫동안 찾고 찾아 이 땅을 찾았다고 하시면서, 묘비를 세우고 산소를 만드는 데에도 꽤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고 하셨다. 화장한 후에 바로 안치할 수 있는 납골당과 비교하자면 비용과 수고면에서 큰 대가를 치르는 일인 듯했다.

산소 앞에서 어른들은 담소를 나누시고, 아이들은 눈싸움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야기가 끝나가고 아이들의 손이 점점 차가워지기 시작할 때쯤, 우리는 큰 외삼촌 댁에 가기 위해 일어섰다. 추웠지만, 훈훈했던 시간이었다. 엄마 말씀처럼,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무척 좋아하셨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엄마, 아빠는 어디가 좋아요?

분주하지만, 관리가 편하고 저렴한 비용의 납골당. 잦은 관리와 높은 비용이 들지만, 한적한 산소. 어느 곳이 더 나을까? 아마도 사람들은 객관적인 기준보다 주관적인 잣대로 자신이 있을 곳, 부모님을 모실 곳을 고를 것이다. 시신이 훼손되는 것을 꺼려하는 우리 문화 때문에 산소에 안치하는 사람들도 있고, 저렴한 비용과 편리함 때문에 납골당에 안치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가는 납골당의 운영과 이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2007년 9월, 명절 때의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주민간의 갈등이 예상된다며 납골당 설치를 거부한 주민들에게 행정법원이 패소 판결을 내린 것 또한, 납골당의 설치를 독려하는 예 중 하나이다.

하지만 추모객의 한 사람으로서 납골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권장보다는 납골당의 문제점을 해소하거나, 납골당의 장점과 산소의 장점을 접목시킨 대안을 내놓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성묘를 다녀오면서 부모님께 물었다.

“엄마, 아빠 나중에 어디로 모실까요?”
"납골 공동묘지라는 곳 참 좋다더라. 부피가 작은 납골함을 땅에 묻어서 묘지처럼 관리하는데, 공간을 넓게 차지하지 않으면서 가족들이 오면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라고 들었다. 이왕이면 우리 가족 함께 모여있으면 좋겠구나."

아빠의 대답에서 좋은 대안 하나를 발견했다.

덧붙이는 글 | 김혜민 기자는 <오마이뉴스> 7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김혜민 기자는 <오마이뉴스> 7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납골당 #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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