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별 영어교육'으로 사교육방지? 그건 '동문서답'!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어교육'이 아니라 '인성교육'

등록 2008.02.08 15:21수정 2008.02.0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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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에서부터 영어과목·영어시간을 1시간에서 한 3시간 정도 늘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초등학교부터 사실은 영어시간에 가능하면 영어로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을 제가 모시려고 합니다.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계약직 선생님을 모셔서 특히 방학 때 과외를 하고요. 또 학부모님들이 걱정하시는 것은 우리 아이가 3학년 때부터 영어로 가르치면 미리 과외해서 준비하고 가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시는데요.

 

안 하셔도 됩니다. 새로 시작해도 가르칠 수 있도록 수준에 맞도록, 아이들의 수준차이에 의해서 반을 만들어서 가르치는 그런 것을 아주 치밀하게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영어 몰입 교육'에 따른 '사교육 조장 가능성'에 대해, '수준차이 반'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나도 알고, 여러분도 알고, 모두가 안다. 안타깝게도 이건 새로운 해결책이 아니다.

 

소위 말하는 '이해찬 세대' 이후의 세대는 이미 '수준별 이동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하며, 그 이전 세대에게는 '우열반'이라는 이름이 낯익을 것이다. 문제는, 이 새롭지 않은 해결책이 정말로, '영어 몰입 교육'에 따른 '사교육 조장 가능성'의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등급제' 운영?

 

영어를 매개로, 초등학생 시절부터 소위 말하는 '등급제'를 운영하겠다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이명박 당선인은 이미 대선후보 시절부터 대학 입시에 관해 '3불 정책(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본고사 금지)'을 폐지하겠다고 나섰다.

 

'3불 정책 폐지'와 영어를 매개로 한 초등학교의 '우열반 운영'을 한 울타리에서 묶어서 판단해보라. 우리 사회와 그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교육을 그야말로 정글판으로 만들겠다는 이야기다.

 

무엇을 매개로 한 정글판일까? 바로 학교성적만을 토대로 인간을 서열화해 그 서열을 사회로까지 이끌어나가겠다는 인식, 그리고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학교성적과 대학입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인식이다. 역시나, 이명박 당선인은 신자유주의의 화려한 전도사였다.

 

알면서 하는 이야기일까? 모르면서 하는 이야기일까? 그 옛날, '우열반 시절'에 사교육이 없었을까? 불법고액 과외단속하느라 불철주야 발로 뛰었다던 그 시절의 공무원들은 모두 일하지 않고 놀았다는 의미일까?

 

'수준별 이동학습'을 한다던 최근 10년간, 사교육은 죽었을까? 아니면 더욱 기승을 부렸을까? '사교육 조장 가능성'에 '수준차이 반'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다니, 이건 '동문서답'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 학부모들의 평균적인 인식에 맞춰, '수준차이 반'을 바라보고자 한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수업을 매개로 '우열반'을 나눈다고 가정해보자는 뜻이다.

 

당신의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영어 몰입 교육'을 받는다. 한글도 터득하기 이전부터 알파벳을 가르치고 영어책을 읽히는 우리 학부모들이, 이 다급한 사태에 과연 가만히 있을까?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부터 영어교육을 받고자 할 것이다.

 

이제, 각 대학의 유아교육학과의 커리큘럼에는 '영어회화'가 필수과목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유치원 선생님들도 현지인 수준의 영어회화를 갖춰야 한다.

 

재정이 비교적 넉넉한 유치원이라면, 아예 현지인 영어교사를 초빙해올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영어 몰입 교육'을 한다? 한국에서는, 유치원 교육에서부터 영어에 대한 사교육 열풍을 조장하겠다는 의미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형편이 넉넉한 집이라면, 유치원이 아니라 현지인 영어교사가 있다는 영어회화학원에서 교육을 받게 할지도 모른다. 영어회화학원에서 아예 기초부터 확실히 책임지겠다면서 유치원생 과정 커리큘럼을 추가해 학부모들을 유혹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막상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된다는 '영어 몰입 교육'에서 아이가 '열반'으로 떨어졌다고 가정해보자. 대한민국 학부모들이 과연, 그 '열반'의 교육을 받도록 아이를 가만히 놔둘 수 있을까? 아니다. 복수의 '영어 몰입 교육'을 받으면 아이의 실력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것이라 믿으며, 또다시 아이를 학원으로 보낼 것이다.

 

'현장'을 중시한다는 이명박 당선인이라기에, 학부모의 눈에 맞춰 '영어 몰입 교육'을 바라보며 예상해본 것이다. '사교육 조장 가능성'에 대한 대답이 '수준차이 반'이라고? 내가 왜 '동문서답'이라고 했는지, 이제 알았는가? '현장'을 중시한다면서, 도대체 왜 이러시는가? 이명박 당선인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옛 속담을 기억하시라.

 

'고3 자녀 키웠다는 부모'의 인식이 고작 그 정도인가

 

이명박 당선인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라이벌이던 박근혜 전 대표에게 '교육'과 관련해 이런 발언을 남긴 바 있다.

 

"나처럼 고3 넷을 키워봐야 보육과 교육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독신임을 강조하며, 유권자들이 중요시하는 자녀 교육 문제에서는 자신이 우월하다는 입장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한 인신공격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그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고3 넷을 키워보신 분의 교육에 대한 인식이 고작 저 정도인가요?"

 

'고3 넷을 키워본 경험'의 결과가, '3불 정책 폐지'이며 초등학생 시절부터 영어를 매개로 '우열반 교육'을 시켜야겠다는 결심의 이유로 작용한 것이냐는 점이 내 의문인 것이다.

 

대통령직에 당선됐으면, 우리 사회의 근원을 뿌리 뽑을 생각부터 해야지, 왜 말로는 '뿌리 뽑겠다'고 하면서 확대하려고 나서나? 내가 이명박 당선인에게 너무 과한 기대를 하는 것인가?

 

이명박 당선인이 미당 서정주 시인에게 깍듯한 예를 표한 적이 있다길래,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국어와 국사도 영어로 교육시키겠다"길래, 국어에 무슨 깊은 원한이라도 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필, '미당 서정주'일까? 좀 다른 사람일 수는 없었을까? 시인이든 소설가든, 글을 쓰는 사람은 실천적인 삶도 살 줄 알아야 한다. 미당 서정주가 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했을까? 노벨상은 실천적인 삶을 특히나 중시한다.

 

이쯤 돼면, 이명박 당선인도 뭔가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예를 표하는 것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른다. 국민들을 학살했다는 이에게 '단군 이래 최고의 미소를 가진 대통령'이라는 찬양을 한 이가 무슨 노벨문학상인가? 그렇다. 영어 한마디보다 중요한 것은, '양심'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영어 몇 마디보다, 그 자신의 양심을 바라볼 줄 아는 교육이다. 인성교육이라는 것이다. '조중동'만 보지 마시고, 인터넷 댓글 게시판도 좀 보시라. '초딩'을 지탄하는 누리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초딩'의 의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이"라는 의미로 변질돼 있지만, 실제로 요즘 일부 초등학생의 행동은 예의와 개념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많다.

 

이명박 당선인이 차기 대통령이라면,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이런 부분이다. 인성교육에 대한 의지조차 사라져가는 학부모들의 양심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런 부모 밑에서 왜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일찍부터 사교육에 찌들어 맑은 심성을 잃어가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에 대한 고민이다.

 

다음과 같은 뉴스도 있다. 학원다니는 것이 너무 힘들다면서 자살까지 선택하는 초등학생도 있다고 한다. 그런 초등학생에게 '영어 몰입 교육'을 '수준차이 반'으로 운영하겠다고? 아이들을 더 죽이고 싶은건가?

 

'입시교육'보다 중요한 '인성교육'

 

'미당 서정주'보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고뇌한, 그러다가 결국 일제 치하 감옥에서 옥사한 윤동주 시인을 돌아보길 권한다. 실천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것이지만, 그렇기에 우리가 더 기억해야 하고 본받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는 분이다. 시에 대한 재능 또한 어느 누구에게 뒤쳐지지 않는 분이 윤동주 시인이다.

 

또 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해 건강을 망치면서 살다간 천상병 시인도 있다. 내가 왜 이런 분들을 강조할까?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나라를 생각하는 어린이를 양성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삶의 가치를 생각하고 고민하며, 그를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양심을 갖춘 사람'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국어와 국사도 영어로 교육하겠다"고 했나? 윤동주 시인의 시도 영어로 가르칠 셈인가? 지하에 잠든 윤동주 시인이, 자신이 지은 시가 어린이들에게 영어로 가르쳐진다면 뭐라고 하실지 궁금하다.

 

'영어 몰입 교육'이니 '수준차이별 영어 교육'이니 하는 것을, 안그래도 일찍부터 입시에 치여 고생하는 어린이들에게 강요하지 않길 바란다. 공부에 대한 부담을 일찍부터 짊어지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어린이들을 괴롭히는 짓이다. '오렌지'니 '어~륀지'니 따지기에 앞서, 제발 우리 어린이들을 좀 편하게 해주길 바란다.

 

어린 시절에는 꿈을 꾸고 바르고 고운 심성을 기를 줄 알아야 한다. '고3 자녀 넷'을 길렀다는 이명박 당선인, 당신의 자녀는 어린 시절에 어떻게 교육시켰는지가 새삼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2.08 15:21ⓒ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어공교육 #이명박 #영어몰입교육 #인수위 #어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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