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특집 프로그램, 대세는 '재활용'

스타 출연자들의 중복 출연, 시청자의 다양한 볼권리 침해

등록 2008.02.11 11:05수정 2008.02.1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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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틀었다. 일주일 전에 봤던 것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화면 상단에는 '000특집'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그냥 '재방송'이나 '하이라이트'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특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민망해 보인다. 다시 채널을 돌리니 이번엔 영화가  나온다. 그런데 이건 어쩐지 낯설지가 않은 게 추석 때 봤던 영화다.

 

예상대로 올해도 설연휴 TV의 트렌드는 '재활용'이 주류를 이루었다. MBC <무한도전> <황금어장-무릎팍도사> <이산 스폐셜> 'KBS <해피투게더> <해피선데이> <미남들의 수다> SBS <빅스타 명장면> 등 설 연휴 황금시간대를 차지한 대부분의 예능-오락 프로그램들은 저마다 '베스트' 혹은 '특집'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그동안 기존 방영분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편집한 것으로 연휴 특집 방송을 채웠다.

 

방송사의 재활용 전략은 최근 급속도로 상승한 프로그램의 제작비 절감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 1회 방송을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고, 프로그램 제작과 캐스팅 섭외 등 많은 노력과 비용이 소모되는  파일럿 프로그램에 비하여, 이미 기존에 검증된 아이템과 에피소드를 간편하게 다시 써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재활용'은 방송사로서도 적은 수고에 큰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알짜배기 전략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미 공중파와 케이블 등을 통하여 수 차례 재탕삼탕됐던 재방송분을 또다시 봐야하는 시청자들로서는 방송사의 무성의함에 불쾌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명절 때마다 반복되고 있는 특집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기획이나 코너 구성면에서 수십 년 가까이 낡은 포맷을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의 패러다임을 재탕하는 데 그치고 있어서 국내 방송가의 콘텐츠 부족에 창의성에 대한 열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예능 프로그램뿐만이 아니라 명절 영화들도 올해 재탕 편성이 극에 달했다. 지상파 3사에 이번에 설 연휴 특집으로 편성된 25편의 영화중 <황후화> <배트맨 비긴즈> <디파티드> <본 슈프리머시> 정도를 제외하면, <괴물>과 <미녀는 괴로워> <복면달호> <아일랜드> <우주전쟁> <가문의 부활> 등 상당수 작품들은 최근 6개월 이내 공중파 방송에서 최소 한 차례 이상 방영되었던 영화들이다.

 

심지어는 지난 추석에 방영됐던 작품들이 그대로 설 연휴에 다시 편성된 것도 있을 정도로 새로운 영화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시청률도 첫 방영 당시 15∼20% 이상을 기록하며 두 자릿수를 넘겼던 작품들이, 재탕 편성된 올해에는 대부분 7% 이하를 기록하며 한 자릿수 시청률로 추락하는 현상을 나타냈다.

 

여기에 몇몇 스타급 출연자들의 무분별한 중복출연도 도마에 올랐다. 김구라, 유재석, 박명수, 이휘재, 이혁재, 정형돈, 솔비 등 최근 상종가를 기록하고 있는 일부 스타급 연예인들은 기존 출연프로그램에 설 연휴 특집까지 합쳐 적으면 4∼5개, 많으면 7∼8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무더기로 넘나들었다. 한 프로그램이 끝나고 채널을 돌리면 다른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연이어 출연하거나  심지어는 시간대가 일부 겹치는 경우도 속출했다.

 

몇몇 스타급 연예인들의 네임밸류에만 의존한 방송사의 콘텐츠 부재도 문제지만, 출연자들 역시 별다른 고민없이 무수한 프로그램에 중복출연하며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나, 기존의 캐릭터를 무성의하게 재탕하는 모습은 시청자의 다양한 볼권리를 침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이 대부분 적지 않는 몸값을 받는 스타 연예인들임을 감안할 때 본인이 느껴야 할 책임감은 물론이고, 방송사의 제작비 절감이라는 명분과도 맞지 않는 것이었다.

 

올해 설연휴 TV 프로그램중 그나마 호평을 얻은 것은 유일한 특집드라마로 방영된 <쑥부쟁이>였다. 농촌드라마의 대명사 <전원일기>의 김정수 작가와 권이상 PD가 다시 손을 잡아 화제를 모은 <쑥부쟁이>는 대가족간의 애환을 다룬 감동적인 휴먼스토리로 10%라는 의외의 시청률을 올리며, 저평가받던 명절 특집극의 가치를 다시 되살렸다는 호평을 받았다.

2008.02.11 11:05ⓒ 2008 OhmyNews
#설연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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