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넘이와 바오밥 나무
김성호
바오밥 나무는 왜 외로움을 많이 탈까바오밥 가지에 걸쳐 있던 저녁노을이 인도양을 향해 뚝 떨어졌다. 바오밥에 길고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외로움이 찾아왔다. 오른쪽 논 건너편의 바오밥은 쌍둥이처럼 두 그루가 바로 붙어 자라고 있다. 가지들도 서로의 방향 쪽으로 뻗어 있다. 외로움을 이겨 내려는 모습이겠지.
당당하게 홀로 서 있던 왼쪽 들판의 큰 바오밥 나무는 해넘이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왠지 쓸쓸해 보였다. 아마도 밤새 외로움에 어둠을 끌어안고 몸부림치리라. 울지 않는 남자의 쓸쓸함이 눈물을 흘리는 여자의 외로움보다 더 깊고 더 크듯이, 강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큰 나무의 고적감은 봄바람에도 하늘거리는 작은 나무의 고독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바오밥은 주로 홀로 서 있어 밤마다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 낮의 당당함에 가려 밤의 외로움을 우리가 모를 뿐이다. 당당함 뒤에 오는 외로움은 어두운 밤에만 진저리를 친다.
바오밥 거리 입구에는 바오밥 나무 열매를 파는 행상들이 많다. 방금 딴 것은 속이 꽈 차서 소리가 들리지 않으나, 오래된 열매는 오그라들어 열매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나무껍질은 겉은 강철 같이 단단하지만, 안은 종이를 여러 장 겹쳐 놓은 듯 물렁물렁하다. 내가 나중에 묵은 오아시스 호텔 뒤편에는 죽은 바오밥 나무를 톱으로 잘라 갖다 놓았다. 나이테를 보니 단단한 나무의 속이 아니라, 물을 흠뻑 머금었다가 말라버린 종잇조각 같았다.
사막의 낙타와 아프리카 소들이 등의 혹에 물을 가득 담고 있다면, 바오밥 나무는 나이테 안에 물을 가득 담고 있다. 모두 지독한 가뭄에 견디기 위한 것이다. 아프리카 소와 바오밥 나무는 몸속에 저수지를 갖고 있다. 바오밥 나무는 나이테가 품고 있는 물로 비가 안 와도 9개월을 꿋꿋이 버틴다. 바오밥 나무의 속은 살아서는 많은 물을 저장할 수 있어 생명의 저수지이지만, 죽으면 물기가 빠지면서 속이 푸석푸석해져 목재로도 쓰지 못한다.
바오밥은 언뜻 보면 못생겼다. 그러나 자주 보면 묘한 매력이 넘치는 나무이고, 정이 가는 나무다.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미루나무처럼 쭉쭉 뻗은 것도 아니고, 버드나무처럼 나뭇잎이 많지도 않다. 처음에는 “이상한 나무가 다 있네”라고 하다가 볼수록 사람의 눈에서 마음으로 옮겨가는 나무이다. 만날수록 끌리는 후덕한 사람과 같다.
바오밥 나무는 계절이 바뀌어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변해도, 아프리카의 삭막한 토양을 탓하지 않고 ‘므두셀라 나무’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움직이는 것은 땅이 아니라 사람이다”는 마다가스카르 속담이 있다. 변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지, 못생긴 바오밥 나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