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들이 대운하 반대 걷기 나선 이유

"생태파괴 막고 생명 존중하자"... 새만금 전철 밟지 않겠다는 각오도

등록 2008.02.13 09:17수정 2008.02.1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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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도보순례에 참여하는 성직자들이 애기봉 전망대에서 출발 인사를 하고 있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도보순례에 참여하는 성직자들이 애기봉 전망대에서 출발 인사를 하고 있다. 성하훈

한반도 대운하에 반대하는 종교계 성직자들의 순례가 12일 김포 애기봉 전망대를 출발해 낙동강 하구 을숙도에 이르는 대장정에 돌입했다.

각 종단의 성직자들이 참가하는 이번  대운하 반대 순례의 공식 명칭은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의 도보순례’. 대운하 예정지를 걸으며 운하의 무모함을 알리는 것이 이들이 순례에 나서는 주된 이유지만 ‘생명의 강을 모신다’는 표현에서처럼 생명을 파괴하는 우리 안의 성장주의에 대해 참회하는 것 또한 중요한 목적으로 두고 있다.

이들은 출발선언문을 통해 ‘한반도 대운하 구상이 수많은 생명체들을 제물로 삼음으로서 당대뿐만 아니라 미래에게도 엄청난 재앙을 부르게 될 것’이라며 ‘지구위의 모든 생명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참회의 길을 나선다’고 밝혔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생태계가 훼손되고 생명이 경시되는 풍조에서 이를 반성하며 생명과 평화의 길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성직자들로서 생명파괴에 단호히 맞서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셈이다.

생명이 아파하는 곳에서 함께 할 것

 성직자들의 생명평화 도보순례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출발 행사에 모인 참석자들. 맨 앞줄이 도보순례에 나서는 성직자들이다.
성직자들의 생명평화 도보순례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출발 행사에 모인 참석자들. 맨 앞줄이 도보순례에 나서는 성직자들이다. 성하훈

종교계 성직자들이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며 600km의 대장정에 나선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심각한 생태파괴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운하가 제대로 추진될 경우 대규모 생태훼손이 벌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이다. 이는 천혜의 연안습지를 개발의 명목아래 파괴한 새만금이나 최근 발생한 태안 삼성기름유출사고 등을 능가할 수 있다는 현실에 기인한다.

이와 관련해 이번 도보순례에 주도적 역할을 한 수경스님은 지난 1월 한 언론에 기고한 글을 통해 대운하는 단순한 개발이냐 보전이냐가 아닌 생명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생명이 아파하는 곳에 함께 있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이번 도보순례를 주도한 수경스님은 이전부터 환경문제가 있을 때마다 전면에 나서왔으며, 2003년에는 문규현 신부 이희운 목사 김경일 교무 등과 함께 새만금 살리기를 위한 3보1배를 벌였고, 지리산 주변 및 낙동강 순례 등을 통해 환경문제의 중심에서 여론을 환기시켜 왔다.

대운하 찬반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이들이 순례를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런 지난날의 경험에 근거한다. 일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에서는 되돌리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3보1배를 통해 새만금을 살리기를 호소했지만 상당부분 진척된 공사는 이미 지출된 천문학적 공사비를 낭비할 수 없다는 문제까지 거론되면서 강행됐고, 결국 호소가 묻혀지면서 새만금은 끝내 살아나지 못 했다.


그래서 이번 순례는 원래 2월 1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새정권이 출범해 불도저식으로 밀어 붙이기를 할 수 있으므로 그전에 하루라도 빨리 움직여야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만큼 개발로 인한 생태파괴는 이들의 마음을 다급하게 했다. '대운하'라는 예고된 재앙 앞에 대운하 반대 걷기는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비과정에서 설 연휴와 종교간 일정 조정 때문에 시일이 다소 지연됐고, 2월 12일 출발하기에 이른 것이다.

도보 순례단이 출정 선언문에서 ‘우여곡절 끝에 만약에 실행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한반도 대운하가 아니라 죽음의 장례 행렬이 누대에 걸쳐 끊임없이 흐르는 한반도 대운구가 될 것만 같아 무섭다’고 한 것은 그렇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굳은 다짐인 동시에 새만금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강한 결의인 셈이다.

실무준비에 이전 삼보일배에 함께했던 사람들이 다수 참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회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수경 스님의 경우 새만금을 살려 내지 못한 것에 대해 부담스러운 마음을 많이 갖고 있었으며, 대운하를 제대로 막지 못하면 심각한 재앙이 된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하고 “대운하 사업이 본격 추진될 경우 더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다른 종단 성직자들과 이 문제를 의논한 끝에 도보순례를 결정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경스님과 이필완 목사님 이번 성직자들의 생명평화 도보순례를 제안한 수경스님과 순례단장을 맡은  이필완목사님
수경스님과 이필완 목사님이번 성직자들의 생명평화 도보순례를 제안한 수경스님과 순례단장을 맡은 이필완목사님성하훈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하기에 이번 순례에는 각 종교계의 환경운동을 이끌고 있는 성직자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은 2001년 결성된 종교환경회의를 통해 교류해온 인사들이기도 하다. 

순례에 참여하는 성직자중 양재성 목사님은 기독교환경연대 사무총장이며, 수경스님은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도법스님은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상임대표를 맡고 있으며, 최상석 주교는 성공회 환경연대 사무국장이다.

또 김규봉 신부님이나 이동훈 신부님은 창조보전전국모임에서 활동하고 있고, 홍현두 교무님은 원불교 환경단체인 천지보은회 홍보실장을 맡고 있다.

이밖에 문인으로서 동참하고 있는 이원규 시인은 지리산생명연대 사무처장을 역임했으며 박남준 시인 또한 지리산권 환경운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한편으로 이들 종교인들이 도보순례를 선택한 것은 성직자로서 물리적 충돌보다는 생명 평화적 관점에서 사회적 여론을 일으키겠다는 사회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담겨 있다. 촛불시위가 새로운 시위문화로 정착된 것처럼, 갈등이 있는 곳에서 같이 대립하기 보다는 그간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며 ‘참회’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종교인들은 그동안 삼보일배나 탁발순례를 통해 이 같은 모습을 보여 왔고, 이번에 걷기라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를 선택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갈등이 있는 곳에서 대립하기보다는 참회 선택

 애기봉 전망대 입구에서 도보순례를 시작하고 있는 성직자들
애기봉 전망대 입구에서 도보순례를 시작하고 있는 성직자들성하훈

2000년 10월 낙동강 수질 개선을 위한 댐 문제 논란이 한창일 때 당시 수경스님이 서있던 곳은 낙동강 발원지였다. 대립의 현장과 멀리 떨어져 있던 장소에서 그가 한 일은 묵묵히 낙동강 줄기를 따라 걸어 내려오는 것이었다.

개발을 통한 해결이 아닌 생명 살리기의 바탕에서 그 근원을 살려나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한 것. 그 와중에 수질 오염원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되면서 결국 낙동강 댐 건설 문제는 유야무야 된다. 단순히 드러난 현안을 개발논리로 해결하려는 노력 보다는 근원적인 부분을 짚어서 생각해 보자는 의도가 들어맞은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이번 도보순례는 단순히 ‘한반도 대운하 반대’라는 명시적 목표를 넘어선다고 볼 수 있다. 대운하 뿐만 아니라 개발이나 성장주의에 근거한 생태파괴는 그 어느 것이든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리는 것이며, 뭇 생명을 죽음의 현장으로 내모는 것이고, 하나님의 창조질서 행위에 도전하는 신성모독행위라는 것이 이들 성직자들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결국, 100일간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 등 4대강을 걷게 되는 이들의 대장정은 무분별한 개발을 통한 재앙을 막고 생명을 존중하면서 서로간의 평화를 이뤄내자는 종교인들의 사회적인 호소인 셈이다.

출발기도 출발에 앞서 기도하고 있는 성직자들
출발기도출발에 앞서 기도하고 있는 성직자들성하훈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 일정

일차 날짜(요일) 출발지 도착지
제1일 2월12일(화) 애기봉 전망대 → 후평 1리 복지회관
제2일 2월13일(수) 후평 1리 복지회관 → 김포 용화사
제3일 2월14일(목) 김포용화사 → 행주대교 진입로
제4일 2월15일(금) 행주대교 → 여의도 국회 뒤편 둔치 주차장
제5일 2월16일(토)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동호대교 아래

제6일 2월17일(일) 동호대고- 암사선사주거지(강동구 상암동)
제7일 2월18일(월) 암사선사주거지- 팔당대교(하남시)
제8일 2월19일(화) 팔당대교- 광주시 퇴촌면 남종보건지소
제9일 2월20일(수) 퇴촌 남종면- 수청리 작은청탄마을
제10일 2월21일(목) 수청리- 강상면 양근대교

제11일 2월22일(금) 휴식(토론 빨래 목욕 등)
제12일 2월23일(토) 강상면 양근대교- 여주군 흥천면 계사리 석불암
제13일 2월24일(일) 석불암- 여주읍 대로사 앞 천변
제14일 2월25일(월) 여주읍- 점동면 되레리(도리마을)
제15일 2월26일(화) 되레리- 충북 앙성면 영죽리 강촌마을 덕음나루터

제16일 2월27일(수) 강촌 덕음나루터- 충주시 가금면 묵계대교
제17일 2월28일(목) 묵계대교- 용두동 용두IC
제18일 2월29일(금) 휴식(토론 빨래 목욕 등)
제19일 3월01일(토) 충주시 이류면 용두IC- 이류면 쌍효각(성벽정)
제20일 3월02일(일) 이류면 쌍효각- 충북 괴산군 감물면 상유창

제21일 3월03일(월) 괴산군 감물면 상유창- 칠성면 원비동
제22일 3월04일(화) 칠성면 원비동- 연풍면 갈금리 갈금교
제23일 3월05일(수) 행사? 연풍면 갈금교- 연풍면 조령 터널예정지(?)
제24일 3월06일(목) 연풍면- 이화령- 경북 문경읍 마원리
제25일 3월07일(금) 휴식(토론 빨래 목욕 등)

제26일 3월08일(토) 문경읍 마원리- 문경시 호계면 별암리
제27일 3월09일(일) 호계면 별암리- 상주시 함창읍 금곡리 봉황대
제28일 3월10일(월) 함창읍 봉황대-상주시 중동면 중동초교 회상분교장
제29일 3월11일(화) 중동면 회상분교장- 중동면 신암리 중동교
제30일 3월12일(수) 중동면 중동교- 구미시 선산읍 초곡리

제31일 3월13일(목) 선산읍 초곡리- 해평면 금호리
제32일 3월14일(금) 휴식(토론 빨래 목욕 등)
제33일 3월15일(토)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 구미시 구미대교
제34일 3월16일(일) 구미대교- 칠곡군 왜관읍
제35일 3월17일(월) 왜관읍- 대구시 달성군하빈면 봉촌리 봉촌제방

제36일 3월18일(화) 하빈면 봉촌제방- 달서구 호림동 금호강
제37일 3월19일(수) 달서구 금호강- 달성군 논공읍 낙동대교
제38일 3월20일(목) 낙동대교- 현풍면 도통리 도통서원
제39일 3월21일(금) 휴식(토론 빨래 목욕 등)
제40일 3월22일(토) 현풍면 도통서원- 구지면 대암리 우곡교

제41일 3월23일(일) 대암리 우곡교- 의령군 낙서면 상포
제42일 3월24일(월) 의령군 낙서면 상포- 창녕군 남지읍 대곡리 박진교
제43일 3월25일(화) 남지읍 대곡리 박진교- 남지읍 둔치공원
제44일 3월26일(수) 남지읍 둔치공원- 부곡면 학포리 학포분교
제45일 3월27일(목) 부곡면 학포분교- 김해시 한림면 명례나루터

제46일 3월28일(금) 휴식(토론 빨래 목욕 등)
제47일 3월29일(토) 한림면 명례나루터- 밀양시 삼량진읍 승선철교
제48일 3월30일(일) 삼량진읍 승선철교- 밀양시 물금읍 원동취수장
제49일 3월31일(월) 물금읍 원동취수장- 부산시 북구구민운동장
제50일 4월01일(화) 부산시 북구구민운동장- 낙동강 하구 을숙도

성직자들이 중심이 돼서 걷는 행사지만 구간별로 함께 걷기를 원하는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다.
자세한 문의는 02-720-1654, 010-9116-8089

#대운하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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