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의 현장'은 숭례문만이 아니다

[손석춘칼럼] '덜컥개방'과 '방임'... 숭례문도 열고 쇠고기시장도 열고

등록 2008.02.14 17:30수정 2008.03.0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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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 1호 숭례문이 지난 2006년 3월 3일, 100년만에 개방되었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유홍준 문화재청장, 문화재 관계자,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숭례문 개방식'을 갖고 숭례문의 중앙통로인 홍예문을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오른쪽에서 4번째가 이 당선인.
국보 1호 숭례문이 지난 2006년 3월 3일, 100년만에 개방되었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유홍준 문화재청장, 문화재 관계자,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숭례문 개방식'을 갖고 숭례문의 중앙통로인 홍예문을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오른쪽에서 4번째가 이 당선인. 이동현

"숭례문을 일반에 개방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미련한 말도 들린다. 그야말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반편의 말과 조금도 다름없다."

<동아일보>가 종합면에 편집한 작가 김주영의 기고문이다. '치욕의 현장'을 찾아 쓴 글은 숭례문 개방의 책임을 묻는 사람들을 숫제 ‘반편’이라 욕하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동아일보>를 비롯한 대다수 신문과 방송이 숭례문을 개방한 책임을 묻지 않는 까닭은 '반편'이 아닌 데 있을까.

한국의 신문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의 해악은 깊숙이 퍼져있다. 상대의 논리를 멋대로 단순화해 매도하는 사람들이 무장 늘어나고 있는 게 좋은 보기다.

숭례문 참사 책임 묻는 게 '반편'인가

명토박아둔다. 숭례문을 개방했다는 이유로 이명박 당선자의 책임을 묻는 게 아니다. 아무런 안전 대책 없이 덜컥 개방한 책임을 묻고 있을 따름이다. 대다수 언론이 궁따고 있다고 해서 진실이 바뀌지 않는다. 숭례문을 덜컥 개방한 이명박 서울시장의 책임은 크고 원천적이다.

그럼에도 마치 숭례문 개방 자체를 반대하는 반편으로 몰아세우거나 이명박 책임을 아예 거론도 않는 윤똑똑이들이 언론계에 똬리틀고 있다.

주류 신문과 방송이 침묵하는 영향은 미처 우리가 의식 못할 만큼 두루 퍼져있다. 가령 숭례문 큰 불에 이명박 책임을 거론할라치면 지나치다고 눈 흘긴다. 하지만 어떤가. 범행자가 숭례문을 선택한 이유를 보더라도 대책 없이 숭례문을 덜컥 개방했기에 빚어진 참사 아닌가.  


 국회 통외통위는 13일 상임위 회의장을 옮겨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을 상정 통과시켰다. 한미FTA에 반대하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회의장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 통외통위는 13일 상임위 회의장을 옮겨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을 상정 통과시켰다. 한미FTA에 반대하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회의장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이종호

숭례문이 불꽃으로 무너져내린 뒤에도 대책 없는 개방, 남대문식 개방은 여전히 활개친다. 보라. 마음은 '콩밭'에 가있는 임기 말 국회의원들이 새삼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을 밀어붙이겠다고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자가 한 목소리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빨리 처리하라고 다그친다. 심지어 <조선일보> 사설은 쇠고기 전면 수입까지 부르댄다. 노 대통령과 이 당선인의 결단이 필요하단다. 광우병 위험성이 다시 거론되고 있는 현실은 모르쇠다. 


숭례문도 열고 한국 쇠고기 시장도 열고

'덜컥 개방'과 '방임' 두 가지로 간추려지는 '숭례문식 개방'의 특성은 그대로 한국 경제로 이어진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의 국회 비준을 추진함과 동시에 자본의 논리에 모든 것을 맡기려 한다. 이명박 당선자 스스로 '친기업 정부'를 당당히 선포했다. 말이 좋아 언죽번죽 '친기업'일 뿐, '친재벌' 정부다.

재벌 총수들에게 언제든 자신에게 전화를 걸라는 당선자의 눈웃음은 노동운동을 겨냥해 '법과 질서'를 부르대는 눈초리와 대조적이다.

덜컥 개방하고 모든 걸 자본의 논리에 맡기려는 당선자의 '용기'를 충실히 정당화해주는 몫은 삼성경제연구소다. '한국경제 고도성장은 가능한가' 제하의 보고서는 "소비와 투자를 적정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인수위가 목표로 제시한 6% 성장을 이룰 수 있단다. 대통령 당선자가 듣기에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그렇다면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안한 '소비와 투자 활성화 대책'은 무엇일까. 법인세 인하와 규제 완화란다.

절로 실소가 나온다. 결국 자본에 모든 걸 맡기라는 주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앞서 미국 굴지의 투자기관 골드만삭스도 규제 완화를 충고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8일 오전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경제인 간담회에서 조석래 전경련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회장, 최태원 회장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8일 오전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경제인 간담회에서 조석래 전경련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회장, 최태원 회장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불타는 치욕의 현장은 숭례문만이 아니다

결국 남대문식 개방의 피해자는 대다수 국민일 수밖에 없다. 이미 대통령직 인수위는 노사관계 '실적'에 따라 지자체에 지방교부세를 차등 지급하겠다는 기상천외한 방침을 밀어붙이고 있다. 노동기본권을 보장한 헌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와도 모르쇠다.

그렇다. 미국 자본의 논리와 한국 재벌의 논리가 그대로 이명박 정권의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덜컥 개방과 방임이라는 '숭례문식 개방' 논리다. 감시해야 마땅한 언론은 되레 용춤 춘다. 묻고 싶다. 정녕 우리 시대의 미련한 반편이는 누구일까.

청와대와 국회의사당, 재벌과 언론사의 마천루에서 지금 이 순간도 덜컥 개방과 방임의 논리는 활활 타오르고 있다. 치욕의 현장은 비단 숭례문만이 아니다.
# FTA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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