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 배심원 제도' 시행을 앞두고 2006년 4월 12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모의재판에서 명예배심원단으로 참여한 문화예술인들이 법정 밖에서 배심원 평의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난 12일 오전, 내가 사는 경기도 군포에서 마을버스·지하철·KTX고속열차·택시를 타고 찾아간 곳은 동대구역에서 가까운 대구지방법원이었다. 첫 국민참여재판이 열리는 대구지방법원 11호 법정 앞에 도착한 것은 이날 10시 30분쯤이었다.
그러나 곧장 법정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배심원 후보자로 법정에 나올 것을 통보받고 법정에 나온 시민들 중에서 실제 배심원으로 뽑힐 사람을 고르는 ‘배심원 선정절차’는 내가 도착하기 전인 오전 10시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는 배심원 후보자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정보도 거론될 수 있기 때문에 '국민참여재판에 관한 법률'은 배심원 선정절차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정했다.
배심원이 되지 못해 돌아가는 사람들그래서 아쉬움이 적지 않았으나, 배심원 선정절차가 끝난 낮 12시 20분때까지 배심원 후보자중에서 먼저 귀가해도 좋다는 결정이 나온 사람들이 귀가하거나 최종적으로 배심원에 선정된 12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있었다.
먼저 70대의 할아버지가 10시 40분경에 나오셨다. 나이가 많아서 면제해 줄 것을 요청해고 판사가 이 요청을 받아주어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12시쯤에 30대의 남자가 나왔다. 귀가하게 된 이유를 물어보는 기자 옆에서 그 남자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허리질환이 있어 장시간 배심원 임무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유로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20분쯤이 지난 뒤, 재판장을 비롯한 배석판사, 검사가 법정밖으로 나왔다. 배심원 선정절차가 모두 끝났음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12명의 배심원(예비배심원 3명 포함)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이 줄줄이 법정밖으로 나왔다. 이들은 이제 각자의 집이나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을 일단 막아선 것은 참석소감, 최종 배심원으로 선정되지 못해 중간에 돌아가는 심정, 앞으로도 나오라고 하면 어찌할 것인가 등을 묻는 수십 명의 기자들이었다.
'국민참여재판'의 도입을 주창해왔던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혹시 이들 시민들의 입에서, "에이~ 괜히 왔어" "시간만 아까웠어" "다음에는 오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지" 하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시민들의 참여가 없이는 이 제도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 안 좋은 말이 나오면 어쩌나 긴장했지만다행히 취재진의 질문을 받은 10여 명의 시민 중에 어느 누구도 내가 걱정했던 말들은 나오지 않았다. 며느리가 직장에 나가면 애기를 맡아 보고 있다는 60대로 보이는 할머니는, 오늘은 며느리가 휴가를 얻어 지금 집에서 애기 보고 있다면서 출석하는 게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솔직하게 말씀했다. 그래도 다시 오라고 하면 또 오고싶다고 했다.
보험설계사 일을 하고 있다는 40대로 보이는 여성은 자신은 조금은 자유로운 직업이라 부담은 없었고, 다만 배심원으로 뽑히지 못해 못내 서운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배심원으로 선정된 사람들이 잘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기자들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하던 시민들 앞에서 나의 걱정은 술술 풀렸다.
오전의 배심원 선정절차가 끝난 이날 재판은 오후 2시에 이어질 예정이었다. 점심을 먹고 1시 30분쯤 법정 출입문 앞으로 갔을 때 재판을 방청하러 온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자칫하다가는 120여석 정도라는 법정 안에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까 은근히 걱정이 들었다. 나 말고도 관심가지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1시 50분이 되니 법정 출입문이 열렸다. 나는 운좋게 앞에서 2번째 줄에 앉았다. 좌석을 차지하지 못해 서서 보아야 할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니, 대략 140여명이 방청한 것으로 보였다.
이제 곧 12명의 배심원이 배심원석에 앉을 것이고, 피고인도 법정에 나올 것이고, 검사와 변호인이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한 '전쟁아닌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역사적 순간이었다.
배심원들보다 먼저 판사석에 앉은 윤종구 판사(재판장)가 방청하러 온 사람들과 취재진에게 오늘이 역사적인 첫 재판이니 배심원들에게 너무 부담주지 않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실제 재판이 시작되기 전 잠깐 사진 촬영을 허용할텐데, 배심원들의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해 줄 것을 취재진들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드디어 배심원석에 앉은 12명의 시민들오후 2시 판사석 뒤에 있던 문을 통해 12명의 배심원들이 법정 안으로 들어왔다. 모의재판이 아닌 실제 재판에서 배심원 역할을 해야 할 12명의 시민들이었다. 남자 6명, 여자 6명이었다.
재판 시작 전에 있었던 재판장의 설명에 따르면, 20대 1명, 30대 8명, 40대 3명이다. 학력분포로 보면, 고졸 1명, 전문대졸 3명, 대졸 8명이고, 주부가 4명, 회사원이 3명, 일용직 1명, 건축업 1명, 자영업 2명, 공사직원 1명의 직업분포를 가진 시민들이었다.
동네 아저씨같은 얼굴의 사람, 평범한 점퍼차림의 사람, 나름대로 깔끔한 넥타이를 매고 나온 사람, 양복을 입고 나온 사람 등 정말 평범하고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6명씩 두 줄로 배치된 배심원석에 앉은 그들의 얼굴은 웃는 모습은 아니었다. 시종일관 긴장해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피곤해서 힘들다는 표정이거나 좀이 쑤셔 몸을 비트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점심먹은 뒤 오후의 나른함과, 4시간 넘게 진행되는 힘든 재판과정에서 지루해하는 모습이 보이거나 하품소리가 들린 곳은 방청석 뿐이었지, 2시부터 시작해서 검사와 변호인의 공방이 모두 끝나고 법정밖의 평의실로 돌아갈 때까지 그들 12명은 정말 진지했다.
중간중간 물을 마시기도 하고, 자세를 책상 앞으로 바짝 당겨 앉으면서 재판장이 나눠준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는 모습도 간혹 보였다. 증인으로 출석한 피해자 할머니와 목격자 아저씨, 피고인의 여동생을 상대로 검사와 변호인이 증인신문을 하는 동안에 그들의 눈은 증인석에만 맞추어졌다.
오후 2시에 재판이 시작되기까지 배심원들은 그들이 오늘 다룰 사건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들은 어떤 편견이나 사전 정보없이 이 법정에서 나오는 검사와 변호인의 주장과 증거로 제출되는 자료와 증인들의 증언만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은 숨죽이지 않고 재판과정에서 나오는 모든 말, 자료 하나하나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최대한 검사와 변호인측의 주장과 재판과정을 통해 배심원처럼 판단해 보려고 애썼다.
모의재판이었으면 그저 흥미진지했을 사건이지만이날 사건은 다음과 같다.
27살의 남자 피고인은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뒤 가정형편이 극히 어렵게 되었다. 오토바이 배달업(퀵서비스)을 하다 일으킨 교통사고의 합의금 마련을 위해 사채업자의 돈을 빌렸지만 제때 갚지 못했다. 사채업자는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를 혼자 키우고 있는 여동생까지 위협하고, 피고인은 실업상태였다.
궁지에 몰린 피고인은 전셋집을 구하는 척하면서 강도를 하기로 마음 먹고, 전세광고를 내놓은 70대 할머니를 범행대상으로 정했다. 피고인은 칼과 목장갑, 청테이프를 호주머니에 넣고, 얼굴에는 하얀 마스크를 한 상태로 피해자 할머니 집에 오후 4시경에 갔다. 마침 피해자 할머니는 혼자 집에 있는 상태였다.
피고인은 집안 이곳 저곳을 한 시간동안 돌아다니며 할머니와 전셋집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다 5시경 세놓은 방으로 피해자 할머니와 함께 돌아온 피고인은 칼을 꺼내들며 할머니를 위협하고 넘어뜨린 후, 저항하는 할머니의 얼굴을 심하게 때려 얼굴에 큰 상처를 냈다. 검찰이 보여준 증거자료를 보면 방바닥에는 피가 흥건했고, 사건 직후 병원에서 찍은 할머니 얼굴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짧았지만 거칠게 할머니의 얼굴 부분을 폭행한 피고인은 갑자기 폭행을 멈추었다. 정신을 잃지 않은 할머니가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며 얼굴을 닦아줄 것을 피고인에게 부탁하자 피고인은 할머니의 얼굴에 묻은 피를 방에 있던 낡은 수건으로 닦아 준다. 그리고 피해자 할머니의 요청대로 피해자를 병원으로 데려다주기 위해 피해자를 부축하며 문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집 앞에서 우연히 이 장면을 옆집 50대 아저씨가 목격하였다. 무슨 일이냐고 묻은 옆집 남자에게 할머니는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피고인이 자기가 강도짓을 하다가 그랬고, 지금 병원으로 데려가는 중이라고 했다. 이 피고인과 옆집 남자는 함께 할머니를 부축해서 피해자 집에서 150미터 떨어진 병원까지 피해자 할머니를 모셔갔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피고인은 함께 온 옆집 남자에게 자기가 강도짓을 했으니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목격자는 피해자 할머니를 입원시킨 지 50여분이 지난 뒤 경찰에 신고하였고, 경찰은 병원에서 피고인을 붙잡았다. 그리고 올 초, 검사는 이 피고인을 강도상해죄로 기소하여 재판에 이르게 된 것이다.
강도상해는 부인하지 않아... 쟁점은 범행과정의 우발성피고인도 자신의 강도상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검사와 피고인(변호인)사이에 다르게 주장하는 것은 우선 범행과정에 대한 설명이었다.
검사는 애초 계획대로 저지른 치밀한 범행이라 했다. 반면 피고인과 변호인은 범행계획을 가지고 피해자 집에 간 것은 맞지만, 1시간 가량 이야기를 하다가 마음이 약해져 범행을 포기했는데, 마침 걸려온 사채업자의 협박전화를 받고 마음이 흔들려 저지른 범행이라 주장했다.
범죄 이후에 한 행동에 대해서도 검사는 자수라고 보기 어렵다고 한 반면, 피고인측은 제3자를 통해 경찰에 신고한 것이기는 하지만 명백히 자수에 해당하는 만큼 형량을 정할 때 참고해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재판은 범죄 자체를 부인하는 사건은 아니었다. 검찰이 주장하는 범죄과정이 정확한지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배심원들이 판결하기에 부담이 그나마 줄어든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재판장이 피고인을 출석시키고, 검사와 변호인의 출석을 확인하는 것으로 재판은 시작되었다. 배심원 선서가 이어졌고, 재판장이 배심원들에게 사전에 알고 있어야 할 점들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무죄추정원칙도 설명해 주었고, 범죄의 유무에 대한 입증은 검사측의 책임이지 피고인과 변호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 등도 설명해주었다.
곧이어 검사와 변호인측이 배심원들을 상대로 이번 재판에서 제시할 주장의 핵심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를 말하는 시간이었다. 배심원들에게 사건의 쟁점과 재판진행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그 다음으로는 증인을 포함한 증거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검사와 변호인이 요청한 피해자·목격자·피고인의 여동생이 순서대로 증인석에 나왔다. 이들을 상대로 검사와 변호인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이끌어내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리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려고 배심원들은 한껏 긴장되어 보였다.
간혹 몸이 여전히 불편하고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 할머니가 너무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면, 재판장이 큰 목소리로 증인이 한 말을 그대로 배심원들에게 다시 말해주었다. 덕분에 방청석에 있던 나도 한마디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피고인으로부터 압수한 칼이나 병원의 진단서, 피해자와 범행이 일어난 방의 범행당시와 직후의 사진같은 증거자료에 대한 검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특히 범행직후 수많은 핏자국이 분명한 범행현장 사진과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타당하고 피부가 찢어진 게 분명히 보이는 피해자 할머니의 얼굴사진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