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창기
30만원 더 벌어 생활비에 보태려고 새벽 찬서리 맞으면서 신문 돌리는 아내. 얼마전 아침 아내는 한 쪽 손을 호호 불면서 들어 왔다.
"밖이 많이 춥나 보네요?"
나는 그저 밖이 많이 추운 가운데 신문을 돌려 손이 시려워 그러려니 했었다.
"날도 추운 데다 장갑 한쪽을 잃어 버려서…."
아내 왼쪽 손등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 아주 가끔 같이 신문을 돌려주면서도 난 아내가 장갑을 끼고 신문을 돌리는 데는 무감각했었다. 어느날 아내가 한 쪽 면이 빨강색으로 코팅된 면장갑을 가져와 깨끗이 빨아 말리는 것을 보았다.
"그냥 면장갑은 미끄러워 신문 정리하는데 불편한데, 이 반코팅 장갑은 미끄럽지도 않은 게 참 좋아."
아내는 공사장에서 쓰고 버린 반코팅 면 장갑을 주워왔고, 그것을 몇 차례나 세탁 후 말려 다시 사용하는 것을 지켜 보았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는 게 가슴이 아파왔다.
아내는 모를 턱이 없었다. 반코팅 장갑이 얼마쯤 한다는 것과 어디에 가면 살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단 돈 몇 푼 아끼려 동네 공사장에서 쓰고 버린 지저분한 장갑을 주워다 재활용 하고 있는 것이었다.
'진작 얘기하지 그랬어…."
난 그 말을 결코 하지 못했다. 그냥 속으로만 삭였다. 아내는 남편이, 더구나 하청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것을 늘 안쓰러워하고 있다. 남편에게 괜한 짐 지울까 싶어 그냥 말없이 혼자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다음날 출근하여 나는 반코팅 장갑을 쓰는 공장 내 작업장을 수소문했다. 마침 그다지 멀지 않은 작업장에서 반코팅 장갑을 끼고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모르는 원청 노동자들에게 달랄 수도 없어 쓰레기통을 뒤졌다.
쓰레기통을 뒤지니 한두 개의 반코팅 장갑이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원청 노동자는 하루 끼고 작업하고는 버리기 때문에 기름만 좀 검게 묻었을 뿐 전체적으로는 쓸 만했다. 처음엔 그것을 비닐 봉지에 담아 그냥 아내에게 가져다 주었다. 아내는 고맙다며 그것을 다시 깨끗하게 세탁해 말린 뒤 신문 돌릴 때 사용하였다.
다음날부터 나는 장업장 여러 곳의 쓰레기통을 뒤져 반코팅 장갑을 있는 대로 가져다 화장실에 가서 깨끗이 씻어 말린 후 가져다 아내에게 주고 있다. 새벽같이 일어나 신문 돌리고 와서 내 출근 밥상까지 차리는 아내. 이어 자식들 밥 차려 주고 뒷정리 하느라 피곤한 하루를 보낼텐데, 괜히 장갑 씻는 일까지 덤으로 안기는 거 같아서 그냥 모아갈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선 반코팅된 새 장갑을 사주고 싶지만 빠듯한 하청 노동자 월급으로 한 달 생활비 하기도 모자르니 어쩔 수 없다. 다행히도 쓰고 버린 반코팅 장갑을 손에 끼고 비누칠을 해서 박박 비벼대니 기름때가 잘 제거 되었다. 행궈 말리니 거의 새 것처럼 깨끗한 장갑이 되었다.
난 오늘도 아내를 위해 반코팅 장갑을 구하려 작업장 쓰레기통을 뒤진다.
덧붙이는 글 | 매일 하루 서너 개의 반코팅 장갑을 씻어 말리려고 널어두니 원청 사람들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곤 한다. 아내를 위하는 게 먼저지 원청 노동자들의 눈치 보임은 뒷전이다. 이상하게 보든 말든.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인간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노동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청소노동자도 노동귀족으로 사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