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행사를 하던 중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다가 손을 내렸습니다. 내가 왜 국기에 대고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지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 나라가 언제 자유롭고 정의로웠던 적 있었던가요? 교사의 양심에 비춰 그런 시기가 없었다고 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내 양심이 시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키는 것은 한 인간에겐 모욕입니다."
중학교 교사 아무개씨의 말이다. 그는 자신이 소속된 학교와 이름, 얼굴 사진까지 밝혀도 된다고 말했지만 기자는 교사에게 돌아올 유무형의 압력과 후환을 책임질 수 없음에 차마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대한민국, 언제 자유롭고 정의로운 적 있었나?
그는 지난 해 바뀐 국기에 대한 맹세를 귀담아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동안엔 설렁설렁 귓전으로 흘려보냈는데, 이번엔 어쩌다 '국기에 대한 맹세' 전문이 귀에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오른 쪽을 가슴에 얹고 장엄하게 펼쳐지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듣는 순간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언제 이 나라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적 있었나?'
그는 가슴에 얹었던 손을 내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고 했다. 교사의 양심상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했던 적이 한 두번 아니었으며, 아직도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정의는 멀기만 하다는 게 평소 그의 신념이었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끝나고 애국가 제창이 있었다. 그는 애국가를 부르다 그마저 그만두었다. 자유롭고 정의롭지 못한 나라에 대한 충성 맹세가 도를 넘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졸업식장을 박차고 나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인 순간, 뒤를 돌아보니 학생들은 국기에 대한 맹세가 무엇을 강요하는지도 모른 채 정해진 의식을 따르고 있었다.
지난 해 바뀐 국기에 대한 국기에 대한 맹세 전문을 보자.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1972년부터 2007년까지 사용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지난 35년간 사용하던 맹세문의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가 문제가 되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로 바뀌었다.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지만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개 교사는 차라리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고 했다면 그나마 참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한민국은 자유롭지도, 정의롭지도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시간에도 침해 당하는 자유가 얼마나 많으며 정의롭지 못한 일 또한 얼마나 많이 생겨나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냐는 것이다.
그는 옳지 못한 일이 도처에서 발생해도 슬쩍 눈 감아 주거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사면해버리는 이 나라에선 정의를 논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정의라는 말이 사전적 정의로만 남아 있는 대한민국의 실상에서 태극기를 앞에 두고 나라에 충성 맹세를 강요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 침해란다.
헌법에 보장된 자유를 억압하는 나라 '대한민국'
생각해 보면 헌법에 보장된 사상의 자유가 국가보안법에 의해 짓밟히고 있고, 양심의 자유는 뒷골목에 버려진 쓰레기 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으며, 학문과 예술의 자유 또한 미니스커트 길이를 재듯 멋대로 잣대를 대는 이 나라에 무슨 자유가 있으며, 집회 결사의 자유 또한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침해 당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자유라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 언어인가.
헌법 제32조 4항엔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못 박혀 있지만 이 나라의 정책은 기업체의 부당한 차별에 대해 얼마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었던가. 비정규직에 내몰리고 있는 근로자 중 여성이 다수인 이 나라에서 헌법 32조 4항은 얼마나 우스운 조항이던가.
또한 헌법 35조 1항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국가는 환경을 보전하기 보다 파괴를 일삼고 있으니 이 또한 어찌 정의로울 수 있을까 싶다.
더욱 가관인 것은 새로운 정부를 책임질 이명박 당선자가 대운하를 만든다며 환경을 파괴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국토를 해부하듯 난도질하는 대운하를 과연 환경보전이라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은 이렇게 헌법에 보장된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박탈당하고만 있는데도 이 나라를 어찌 정의로운 나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정의를 빙자한 사람들, 국민의 정의는 박탈해
정의가 살아있다면 국민이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에 나서지 말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는 착한 국민을 투사로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으며, 국민의 권리 따위는 간단하게 무시한다. 정의가 서지 않으니 법질서가 제대로 설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돈 앞에서는 정의도 자유도 무기력하기만 했다. 돈이 최고라는 사람들 앞에서 정의는 언제나 서민으로 살아가는 국민들을 배반했다. 그런데도 국민은 국기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말이다. 블랙코미디가 따로없다.
1980년대에 등장한 전두환 쿠테타 정부는 '정의 사회 구현'을 내걸었지만 전혀 정의롭지 않았으며, 보통사람을 자처했던 노태우 정부는 수천억의 돈을 빼돌렸다가 감옥에 들어가기도 했다. 국민이 누려야 할 자유는 어디로 갔단 말이던가. 권력자들의 정의와 자유만 있는 나라에서 자유와 정의가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에게 미안했던 적이 많아요. 지난 역사를 사실대로 말하는데도 그게 교사에겐 죄가 되더군요. 이러니 무슨 교육이 제대로 되겠어요."
아무개 교사의 말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이내 염증을 느끼고 그만 두었다가 뜻한 바 있어 임용고시를 다시 봐서 교사가 되었다고 했다. 이상한 것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는 인기가 높은데 늘 근무 평가에서는 늘 낙제에 가까운 점수가 나온다는 것이다.
교장이 바라는 교사가 아닌 학생이 바라는 교사인 아무개 교사. 그는 소속된 학교 교장의 잘못된 행태를 비판했다가 조직의 쓴 맛도 즐겨 봤다고 했다. 이젠 그런 일 정도는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연륜이 되었지만 처음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이 비참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왜 해야 하는지도 몰라요. 우리가 왜 하는지 모르고 몇 십년을 했듯이 요즘 아이들도 그래요."
국기에 대한 맹세가 시작된 지 36년이 되었으니 그 역사도 결코 짧지 않다. 처음엔 일제 잔재라 하여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다.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퇴학 당하는 일도 있었다.
국기에 대한 맹세, 정권 연장 수단으로 이용해
국기에 대한 맹세문의 전신은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충남 교육청 장학계장이던 유종선씨가 처음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만들어 충남의 학교를 대상으로 국기에 대한 충성을 유도했다. 유씨가 만든 맹세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유씨가 만든 맹세문은 1968년에 만들었지만 오히려 그동안 사용하던 맹세문이나 바뀐 맹세문보다 뜻이 좋다.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한다면 못할 일도 없다. 이렇게 좋은 문구가 엉뚱하게 변하게 된 것은 유신헌법 제정과 궤를 같이 한다.
박정희 정권은 정권 연장을 위해 유신헌법을 밀어붙였으며,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국민들에게 강제로 충성 맹세를 하게 시켰는데, 그 일이 국기에 대한 맹세이다. 정권 연장의 도구였던 국기에 대한 맹세가 지금까지 유지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 나라의 정체성을 국기에서 찾으려는 것 또한 후진적인 생각이다.
자유로운 사상을 꽃피우는 유럽의 국가들에서는 국기에 대한 맹세 같은 것이 없다고 한다. 제국주의 냄새를 피우는 국가인 일본과 미국 등만 국기에 대한 맹세가 존재한다. 그러나 미국의 맹세문은 대한민국보다 진일보하다. 아래는 미국의 맹세문이다.
"나는 미국의 국기, 그리고 신(神) 아래 하나의 국가이며, 갈라질 수 없으며, 모든 사람에게 자유와 정의가 함께하도록 해주는 공화국에 대해 충성을 맹세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모든 사람에게 자유와 정의가 함께하도록 해주는'이라는 문구는 마음에 든다. 미국은 국민이 국가에게 '자유와 정의'를 요구하지만, 대한민국은 국가가 국민에게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충성하도록 강요한다. 미국과 대한민국의 예만 보더라도 미국이 훨씬 합리적이고 국가의 운영 중심을 국민에게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국기에 대한 충성 맹세를 받으려면 국민이 이해하고 합의할 수 있는 문구로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절대로 충성 맹세를 할 수 없습니다."
아무개 교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자유롭고 정의롭지도 않은 대한민국의 속살을 알고 있기에 충성 맹세를 할 수 없다고 한다. 국민이 맹세를 거부하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던가. 유시민 의원이 국기에 대한 맹세가 파시즘이라 했다가 언론으로부터 호된 매를 맞은 적 있지만 지금의 국기에 대한 맹세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애국심을 강요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자유를 보장하지 않으면서 자유를 노래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과 같다. 국가가 국민에게 정의롭지 못하면서 정의를 부르짖는 것은 앞 뒤가 맞지 않는다.
국가는 국가 스스로 당당할 때 그것을 국민에게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스스로 당당하지 못함에 국민들에게 요구하지 못하고, 억지춘양 격으로 강요만 한다. 국민이 스스로 국가에 충성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의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국기에 대한 맹세, 과연 해야 하는가? 대한민국은 국민에게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며 국기에 대한 충성 맹세를 강요할 자격이 있는가? 답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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