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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여행]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수비대의 국기하강식

등록 2008.02.19 16:13수정 2008.02.1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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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수비대의 국기하강식 중 양국 군인이 함께 국기 내리는 모습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수비대의 국기하강식 중 양국 군인이 함께 국기 내리는 모습 ⓒ 서종규


인도 북부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많은 군인이 임시로 주둔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도로를 따라 사막 곳곳에는 전차를 비롯한 각종 차량들과 큰 천막,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군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파키스탄에서 벌어지는 혼란 상황을 경계하며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카슈미르 지방의 영유권을 둘러싼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분쟁은 끊이지 않았다. 1947년 카슈미르 지방의 귀속문제가 결정되지 않은 채 파키스탄이 독립하자, 그 해 10월 인도가 이 지역을 강제 점령했고 이로 인해 1948년에는 두 나라의 제1차 전면전이 발발하였다. 1949년 두 나라는 카라치협정을 체결하여 카슈미르 지방을 인도가 2/3, 파키스탄이 1/3을 분할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합의에도 불구하고 1965년 국경지대인 쿠츠에서 양국 국경수비대의 충돌이 발생 제2차 전쟁이 일어났으나 1965년 유엔의 휴전 결의에 따라 휴전하게 되었다. 1988년에는 인도가 지배하는 카슈미르 지역 이슬람교도들이 독립투쟁을 벌여 상황이 악화되었고, 1996년 국경 11개 지역에서의 총격전, 2001년 인도 국회의사당 내의 총격으로 132명의 의원이 사망하는 등 두 나라의 대립과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 원인은 카슈미르 지역의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을 중심으로 인도의 힌두교와 파키스탄의 이슬람교가 부딪히는 종교적 갈등, 그리고 카슈미르 내 분리독립운동단체(JKLF)의 결성과 독립운동 등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그 대립과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펀자브 지역에 있는 암리차르에서 약 30㎞ 정도 파키스탄 쪽으로 가면 '와가' 지역이 있다. 이곳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을 연결하는 국경이자 넘나들 수 있는 유일한 육상 통로가 있다. 두 나라의 국경을 통과할 수 있는 시간은 3시 30분에 끝나지만 일몰 30분 전에 두 나라의 국경수비대가 펼치는 국기하강식은 대단한 볼거리로 알려졌다.

a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수비대의 국기하강식 준비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수비대의 국기하강식 준비 ⓒ 서종규


a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수비대의 국기하강식에 참석한 인도 국민들의 춤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수비대의 국기하강식에 참석한 인도 국민들의 춤 ⓒ 서종규


삼엄한 국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국기하강식

1월 24일(목), 오후 3시 반에 찾은 인도 국경의 관문(Customs Area)엔 벌써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국경을 통과하는 관문에서 약 50m 뒤에 또 하나의 문이 있는데, 그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문 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문 앞에 모인 사람들은 함성을 지르며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다.


오후 4시가 되자 군인이 그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함성을 지르며 쏜살같이 내닫는 사람들을 따라 우리도 국경의 관문으로 걸어갔다. 군데군데 군인들이 서있어도 사람들은 축제의 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처럼 들떠 있었다.

국경의 관문은 철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굳게 닫혀 있었다. 철문 옆 문설주 왼쪽에는 인도 국기가 오른쪽에는 파키스탄 국기가 게양되어 있고, 인도 수비대 건물 앞에는 계단으로 된 관람석이 만들어져 있었다. 철문 건너편 파키스탄에도 건물을 중심으로 둥근 관람석이 만들어져 있었다.


인도쪽 관람석은 가장 바깥쪽에 인도 남자석, 중간에 인도 여자석, 그리고 안쪽에 외국인과 귀빈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 앞다투어 국기하강식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약 2000여 명이 자리잡은 인도 지역 관람석은 단체로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과 박수를 치는 사람 등 분위기는 들떠 있었다. 외국인 좌석에도 호기심에 가득 찬 외국인들이 가득하다. 국경의 삼엄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축제의 분위기였다.

상대적으로 파키스탄 쪽은 조금 조용한 편이었다. 멀리 보이는 파키스탄 관람석에 500여명이 차 있지만 차분한 편이다. 파키스탄 국내의 정치적 소용돌이가 영향이 미치는가 보다. 원래 파키스탄 지역의 관람석도 그 열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두 나라 군중의 기 싸움이 대단한 함성으로 울려 퍼졌다고 한다.

어떤 인도 청년 둘이 인도 국기를 들고 철문 쪽으로 달려간다. 군중이 환호하며 함성을 지르자 신이 난 그들의 깃발을 받아들고 다른 청년 둘이 또 뛰어간다. 다른 청년들도 줄을 서서 깃발을 받아 들고 철문까지 달려갔다가 돌아오며 환호한다.

4시 30분이 되자 국경수비대의 스피커에서 명쾌한 인도 노래가 울려 퍼진다. 노래에 맞추어 사람들이 들썩이며 춤을 춘다. 아이를 안은 여인이 관중석 앞의 거리로 나와서 춤을 추자 많은 사람이 앞으로 쏟아져 나와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춘다.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앞으로 나와서 춤을 추고 여자들을 여자들대로 춤을 춘다. 스피커에서 '힌두스탄'을 선창하면 군중들은 '진다받'을 외친다. '위대한 힌두스탄'이라는 뜻이란다.

때를 맞추어 파키스탄 지역 스피커에서도 커다랗게 틀어 놓은 노래가 울려 퍼지며, 간간이 '파키스탄'을 선창하면 관람석의 사람들이 '진다받'을 외친다. 두 나라가 서로 더 크게 함성을 지르려고 경쟁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열광적이 된다. 파키스탄 지역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와 함성, 인도 지역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와 함성이 섞여 떠들썩한 축제의 장이 된다.

a   인도 국경수비대의 국기하강식에 참여한 군인

인도 국경수비대의 국기하강식에 참여한 군인 ⓒ 서종규


a  인도 국경수비대의 국기하강식의 군인 모습

인도 국경수비대의 국기하강식의 군인 모습 ⓒ 서종규


a  인도 국경수비대의 국기하강식의 행진 모습

인도 국경수비대의 국기하강식의 행진 모습 ⓒ 서종규


분쟁과 싸움이 끊이지 않는 두 나라 국경의 축제

오후 5시, 음악이 그치고 숙연한 침묵이 흐른다. 곧바로 국기하강식이 시작된다. 국기하강식에 참석하는 군인은 두 나라 각각 10명이 줄을 서서 대기한다. 검은색 옷을 입은 파키스탄 군인들, 카키색 군복을 입은 인도 군인들, 그들 머리에는 부채를 붙여 놓은 것 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

구령이 시작되고 군인들의 행진이 시작되자 두 나라 군인들 모두 엄청나게 큰 몸짓의 제식 동작을 한다. 행진하는데 발을 하늘 높이 들었다가 놓는다. 팔도 머리 위까지 흔든다. 서로 기 싸움을 하듯이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구령도 커다란 목소리다.

굳게 닫혔던 국경 철문을 양 군인이 연다. 그리고 두 나라 군인 한 명씩 앞으로 나아가 악수를 한다. 그것으로 국기하강식은 시작된다.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구령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두 나라가 똑같은 구령을 한다.

구령에 맞추어 군인들도 똑같은 모습으로 행진하거나 행동을 취한다. 국기하강식을 따로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 국경인 철문을 사이에 두고 두 나라 군인들이 대칭적으로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파키스탄 군인들이 행진을 하면 인도 군인들도 행진을 하고, 파키스탄 군인들이 철문 앞으로 와서 발을 크게 들고 서면 인도 군인들도 철문 앞으로 와서 발을 크게 들고 선다.

a  인도(카키색)와 파키스탄(검정) 국경수비대의 국기하강식의 두 나라 군인

인도(카키색)와 파키스탄(검정) 국경수비대의 국기하강식의 두 나라 군인 ⓒ 서종규


a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수비대가 함께하는 국기하강식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수비대가 함께하는 국기하강식 ⓒ 서종규


한참 동안 서로 똑같은 여러 가지 제식 동작과 의식을 행하더니 두 나라 병사 2명씩 양옆에 나란히 서고, 그 가운데 국기를 내릴 두 나라 군인이 서로 반대편에 서서 국기대의 줄을 풀고 잡는다. 두 나라의 국가인 듯한 음악이 흐르면서 국기대의 줄을 잡은 두 나라 군인이 동시에 서서히 국기를 내린다. 국기는 같은 속도로 내려져 아래 지점에서 서로 만난다.

국기를 내린 군사들은 똑같은 동작으로 국기를 개어 자기 나라 쪽으로 가고, 다시 한 번 두 나라 군인 한 명씩 큰 동작을 취하며 철문 앞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서로 악수하고 돌아서서 큰 행동을 취하며 걸어간다. 그리고 국경 철문을 닫는다.

숨죽이며 보는 관중 가운데는 국기가 내려질 때 가슴에 손을 올려 경의를 표하거나 박수를 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아마 파키스탄 관중들도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분쟁과 싸움이 끊이지 않는 두 나라 국경에서 축제와 같은 국기하강식을 함께 하고 있다. 처음에는 두 나라가 따로따로 국기하강식을 하는 줄 알고 찾았는데, 서로 같이 서서 같은 구령에 같은 행동과 동작, 같은 음악에 국기 하강까지 같이 맞추어 함께 하는 것이다.

a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수비대의 국기하강식을 바라보며 감격해 하는 인도 국민들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수비대의 국기하강식을 바라보며 감격해 하는 인도 국민들 ⓒ 서종규


a  인도 국경수비대의 기마병

인도 국경수비대의 기마병 ⓒ 서종규


언젠가 판문점을 방문했을 때, 얼굴 하나 움직이지 않는 굳은 표정으로 딱딱하게 서 있기만 한 양국 군인들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적대감과 고도의 격리감만이 흐르는 판문점의 모습이 이렇게 변하면 어떨까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판문점에 외국 관광객을 포함한 수천 명의 사람이 모여 남과 북 군인들이 펼치는 극적이고 멋있는 국기하강식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궁에서 수문장 교대식을 멋있게 한다는데 그것보다도 판문점에서 남과 북이 함께하는 국기하강식은 얼마나 멋있을까?

민족의 분단, 그것을 고착시키는 적대감만 키워왔던 우리나라 판문점에서 인도와 파키스탄과 같은 국기하강식을 함께 하며 양국의 군인들이 악수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양국의 많은 사람이 판문점에 모여 기 싸움을 하면서 외치는 함성과 갈채가 어느새 서로 통하는 하나의 축제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멋있는 환상이다.
#인도 파키스탄 국경수비대 #국기하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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