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에 비친 검은 바다 <미안해 바다야!>

모항초 어린이들 기름 유출사고 이후 쓴 글 문집으로 제작

등록 2008.02.20 22:22수정 2008.02.20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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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게

바다야 넌 항상 맑고 깨끗해서 아름다운 모습이였잖아. 그런데 갑자기 크레인이랑 유조선이랑 부디쳐서 순식간에 기름범벅이 되어서 난 너무나 슬펐어 난 다시 너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어. (중략)
깨끗한 바다야 다시 깨끗해 질 때까지 우리 같이 힘내자. 파이팅 그럼 안녕.

2008년 1월 30일 모항초 유빈이가

지난해 12월 7일 발생한 태안반도 기름유출사고의 충격은, 항상 깨끗하고 언제나 달려가 마음껏 놀 수 있던 천연 놀이터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어린 동심들에게도 너무나 큰 충격이 되었다.

이번 사고의 가장 큰 피해 지역 가운데 하나인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에 있는 모항초 어린이들은 학교를 마치면 넓고 깨끗한 백사장을 가진 만리포 해변에서 미래의 꿈을 만들었다. 또 저녁에 만선이 되어 돌아오는 배들이 있는 모항에서 삶의 치열함과 행복을 맛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7일에 발생한 원유 유출사고 이후 이들 어린 동심은 검게 멍들어 가고, 힘들어하는 부모님들의 근심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꿈과 삶의 행복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항상 문만 열면 가까이 있어 소중함을 몰랐던 아름다운 바다와 해변, 부모님의 땀이 배인 항구와 세 달째 서 있는 배들을 보면서 무슨 마음이 들었을까.


소원면 모항리에 사는 국현민씨는 지난 1월 30일 방제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초등학교 2학년생인 유빈이의 방을 들렸다가 한 통의 편지를 보고는 눈물을 흘렸다.

국씨는 유빈이가 "검게 변해 버린 바다를 보고, 힘이 없어 방제 작업은 못하지만 마음으로라도 응원해 다시 바다가 깨끗해져 맛있는 생선도 주고, 또 동생랑 깨끗한 바다에서 수영하러 갈수 있게 해 달라"는 내용으로 쓴 글을 보고, 아이들이 받은 충격을 실감했다고 한다.


다음날 국씨는 유빈이가 다니는 모항초등학교(전원규 교장)를 방문해 유빈이의 편지를 보여주며 모항초 어린이들이 이번 사고를 보고 작성한 글을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 볼 것을 제안했다.

a  모항초 어린이들의 글이 <미안해 바다야!>로 출간되었다.

모항초 어린이들의 글이 <미안해 바다야!>로 출간되었다. ⓒ 신문웅

국씨는 모항초 어린이들이 기름유출사고 이후 느낀 점을 담은 시와 산문, 그림일기, 만화, 편지글 등 60여 편을 받아들고, 그 길로 기획사를 찾아가 사비 200만원을 들여 500권의 문집 <미안해 바다야!>라는 제목으로 출판을 했다. 그리고 기름 피해를 당한 소원면 초등학생들과 태안군내에 책을 전했다.

전원규 교장은 발간사를 통해 "검은 파도에 무섭고 속상한 마음,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하는 어른들의 모습과 자원봉사자들의 선행을 보면서 느낀 어린이들의 마음이 숨김없이 잘 드러나 있다"며 "여느 언론의 보도기사나 어른들의 글보다 소중하고 가치있는 기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국씨도 "모항초 어린이들의 글을 보면서 어른들의 실수로 검게 변해 버린 우리의 소중한 바다를 우리의 자식과 모항초 후배들에게 다시 되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며 "(책을 만든 이유는) 후배들이 자라서 다시는 이러한 실수가 반복이 되지 않도록 가슴에 새기기를 바라는 마음이였다"고 말했다.

a  모항초 6악년 박예찬 학생의 '미안해 바다야'라는 제목의 시

모항초 6악년 박예찬 학생의 '미안해 바다야'라는 제목의 시 ⓒ 신문웅


'미안해 바다야!'


니 모습 보여도
기름이 보여도

바로 앞에 있지만
도와주지 못한 나
정겨운 갈매기 소리
시원한 파도소리
언제쯤 들을까?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해 바다야

모항초 6학년 박예찬 어린이는 바다에게 연방 미안하다고 고백을 한다.

이 문집에는 이처럼 모항초 6학년 학생들의 시에서부터 1학년 학생들의 그림일기와 자원봉사자에게 보내는 편지글, 네칸짜리 만화 등 다양한 어린이들의 글 60여 편이 실렸다.

또 자원봉사자들의 아름다운 봉사 모습이 담긴 화보와 마지막 장에는 모항초 교육가족일동 명의로 ‘태안반도를 살리는 아름다운 자원봉사의 손길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감사의 인사로 끝을 맺고 있다.

이 책을 받아본 한 학부모는 “어린 동심을 검게 만든 이번 사고의 충격을 하루 빨리 치유해 주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방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a  <미안해 바다야>에 실린 학생의 작품

<미안해 바다야>에 실린 학생의 작품 ⓒ 신문웅


#태안반도기름유출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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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시대를 선도하는 태안신문 편집국장을 맡고 있으며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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