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무식도 못하고 일을 시작하다

[왕언니의 중국살이1] 중국에서 한국기업인으로 산다는 것

등록 2008.02.24 17:14수정 2008.02.24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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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삶의 현장 열심히 일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 모습. 눈이 마주치면 지친 기색없이 생글생글 웃는다.
고단한 삶의 현장열심히 일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 모습. 눈이 마주치면 지친 기색없이 생글생글 웃는다. 고의숙

14억 인구의 중국에서조차 제조업의 인력난은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더욱이 제조업 중에서도 3D업종으로 통하는 봉제공장은 한층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그래서 춘절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인원수로 공장의 존폐여부를 점치기도 한다. 그러니 휴가 막바지가 되면 늘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아이들을 기다린다.


특히나 올해는 일부 무책임한 한국기업인들의 야반도주까지 빈번해 한국기업에 대한 신뢰조차 무너진 상태라, 우리 같은 조그만 공장들은 인력 수급을 예측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춘절 휴가를 마치고 첫 출근 하는 날, 여느 때처럼 새벽시장을 다녀와 추운 몸을 웅크리고 긴장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사무실 문을 열었다. 지금쯤 한창 시무식을 위한 관리자회의가 진행될 줄 알았는데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그때까진 도저히 못해요. 잘 아시면서 왜 그래요? 지금 여기 현실이 어떤지 와 보고 그런 말 하세요. 맘대로 하세요. 못하는 건 못하는 거니까."

동생이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에 매달려 진땀을 빼고 있다. 아마 납기 때문에 바이어와 한바탕 하는 모양이다. 이렇게 동생이 전화통에 매달릴 때면 끝내 눈물을 보일 때가 많아 난 슬그머니 현장으로 나왔다.

시무식 날은 일이 되지 않는다. 고향에 간 아이들이 미처 돌아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새로 입사하는 새내기도 많아서 분위기가 어수선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해마다 첫 출근 날엔 관리자회의와 시무식, 대청소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오늘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작업이 한창이다. 아이들이 채 돌아오지 않아 현장이 썰렁할 줄 알았는데 휴가 전이나 별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일단 가슴을 쓸어내리고 사무실로 돌아와 막 통화를 끝낸 동생에게 묻는다.

봉제반 가장 일손이 달리는 곳이라 밤늦도록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도 꾀부리지 않고 열심을 다하는 우리 공장 보물들이다.
봉제반가장 일손이 달리는 곳이라 밤늦도록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도 꾀부리지 않고 열심을 다하는 우리 공장 보물들이다. 고의숙

"시무식도 없이 바로 일 시작한 거야?"
"그럼 어떡해? 지금 서울에선 방방 뛰고 난리인데. 다행히 휴가 전에 라인 깔아 놓았으니 일단 일부터 시작하라고 했지."


"안 온 애들 없어?"
"왜 없겠어. 일곱 명 안 왔는데 두 명은 지금 오는 중이고 신입 일곱 명 왔고, 나머지 애들도 내일은 올 거야. 우리 인원은 걱정이 안 되는데…."

"근데?"
"하청공장이 문제야. 오늘부터 일해도 납기 맞추기가 어려운데 아직 계획도 잡을 수 없다고 하니…."
"그럼 어떡하니?"
언제나 난 대책도 없이 걱정만 부추긴다.

"언니 예비군 있잖아? 나랑 언니가 소방수해야지. 그리고 우리 애들 빡세게 돌려야지 뭐."
"그러다 우리 애들마저 도망가면?"

"우리 애들은 안 그래. 봐, 춘절 전에 그렇게 고생하고도 거의 다 왔잖아. 그리고 작업 일부는 못한다고 했어."
"그래도 된대?"

"안 되면 어쩔 거야? 하는 데까지 하고 못하면 할 수 없는 거지. 그래서 다른 데로 뺄 데 있으면 빼라고 말한 건데."
"또 욕먹었겠구나?"
"…."

점심시간이 되어갈 무렵 이웃 공장 사장님이 찾아 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현장 쪽으로 눈을 돌리더니 "여긴 일 하네" 하면서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이웃 공장은 급한 마음에 우리보다 하루 먼저 시무식을 하고 일을 시작했지만 고향 간 아이들이 절반도 돌아오지 않아 일이 되지 않는다고 한숨을 토한다.

텅 빈 공장 바라보고 있자니 속만 답답해서 함께 칼국수나 먹으러 가려고 왔단다. 공장을 나서니 다른 때 같으면 점심식사를 하려는 아이들과 고향에서 돌아오는 아이들로 북적거려야 할 거리가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 곁에 있는 이웃공장 사장님이 길게 한숨을 토한다.

한산한 마을 거리. 공단 입구에 있는 마을 풍경이다.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 때가 되면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데 요즘은 이렇게 한가하다.
한산한 마을 거리.공단 입구에 있는 마을 풍경이다.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 때가 되면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데 요즘은 이렇게 한가하다. 고의숙


빈방을 알리는 벽보. 춘절휴가를 마치고도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증거물이다. 요즘 우리 마을 대부분의 집에 이런 쪽지가 붙어 있다.
빈방을 알리는 벽보.춘절휴가를 마치고도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증거물이다. 요즘 우리 마을 대부분의 집에 이런 쪽지가 붙어 있다. 고의숙

"올해는 작년보다 더 심한 거 같죠?"
"작년은 재작년보다 더 심했잖아요. 작년 우리 공장에 신입이 열세 명 왔는데 그게 재작년의 절반이었어요. 올해는 일곱 명 왔으니 또 절반이고."

"그러니 봉제공장 이제 다 해먹었지 공인도 없이 어떻게 일해?"
"애들 있다고 뭐 나을 거 같아요? 이제 방법 없어요."

"하긴 그렇죠? 일 안해도 기본급 줘야지. 야근 주 40시간 이상 하지마라지. 어떻게 해먹겠어. 일찌감치 보따리 싼 사람들이 현명한 지도 모르지. 에-효."
"그렇게 한숨 내쉰다고 뭐 달라져요? 기다려 봐요. 있던 애들 몇 명이야 더 오겠지. 그러면 걔들 정예부대 만들어서 본 공장은 샘플이랑 급한 거만 돌리고 나머지는 중국공장에 하청 뿌려요. 관리만 잘 하면 그게 젤 나요."

"사장님이야 기존 하청공장이 있으니까 그렇지. 난 하청공장도 없잖아요."
"찾아보면 조그만 공장은 많아요. 대신 관리 잘해야지. 중국 애들 만만히 보았단 걔들 좋은 일시키는 꼴이 되거든. 나처럼 매일 쫓아다녀야 돼요."

봉제공장 현장 경력 30년차의 해법이 책상물림 사장님한테는 너무 힘든 주문처럼 보인다. 우린 더 이상의 대화를 중지하고 묵묵히 식사만 했다. 간간히 내뱉는 이웃 사장님의 한숨 소리에 우리 모두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절친하게 지내던 이웃 공장들이 작년 춘절휴가를 마치고 인력을 채우지 못해 고전하다 결국 문을 닫고 도주하다시피 한국으로 돌아갔으니, 절반 밖에 돌아오지 않은 직원들을 보고 어찌 걱정이 안 되겠는가.

점심을 마치고 공장에 돌아오자 막 시작종이 울린다. 현장은 첫날답지 않게 활기가 넘쳐난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생글생글 웃는 아이들 모습에 무겁던 마음이 스르르 녹는다. 한 바퀴 현장을 돌아보고 온 동생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굳었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협조는 필수. 우린 전원수비 전원공격의 스포츠 전법을 현장에 적용하며 부족한 일손을 최대화한다. 출고시간이 임박하자 덜 급한 재단반 친구들이 완성반에 와서 돕고 있다.
협조는 필수.우린 전원수비 전원공격의 스포츠 전법을 현장에 적용하며 부족한 일손을 최대화한다. 출고시간이 임박하자 덜 급한 재단반 친구들이 완성반에 와서 돕고 있다. 고의숙

"애들 참 예쁘지? 첫날인데 꾀도 안 부리고. 보물단지들이야."
"그럼 보물이지. 어느 공장을 가 봐도 우리 현장처럼 분위기 좋은 데가 없어."

춘절 휴가를 앞에 두고 야반도주한 한국공장의 친구들이 석 달 치 임금을 못 받아 고향 갈 길이 막혔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우리 앞에서조차 "한국 놈들 다 죽여야 한다"고 서슴없이 말하면서도 막상 현장에선 최선을 다해준 고마운 아이들이다.

우리 역시 달아난 공장에 돈을 떼이고 춘절 자금 계획에 차질이 생겨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노사가 힘을 합쳐 옷 한 장이라도 더 내보내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다. 덕분에 아이들에게 약간의 보너스와 선물꾸러미를 들려서 고향에 보낼 수 있었고 우리도 조촐하게나마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이번에도 납기를 독촉하는 전화가 빗발치는 가운데 우린 업무 개시 첫날을 제외하고 일요일도 없이 매일 자정이 넘도록 일을 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 입사한 아이들이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일도 있었지만 동생과 우리 부부는 소방수가 되어 함께 현장에서 뒹굴었다.

우리의 보물들 역시 회사의 긴박한 사정을 이해하고 지쳐가는 동료들을 독려하며 열심히 일했다. 덕분에 한꺼번에 출고하지 못하고 몇 차례에 나누어 그것도 비행기로 실어 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이달 급료를 걱정하지 않을 만큼의 물량을 출고할 수 있었다.

고맙다 얘들아!
모두 빠짐없이 돌아와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단다. 어린 나이에 늦게까지 일하는 모습을 대할 때마다 마음이 안타까울 적도 많지만 이것이 우리의 삶이니 어쩌겠니? 그저 지금처럼 우리 열심히 하자. 이렇게 함께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거야. 너희들의 꿈이 우리 공장을 통해서 조금씩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도 열심히 노력할게.
우리 함께 加油!!(아자!아자!!)

덧붙이는 글 | 1.중국 칭따오에서 8년째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여동생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2.직원들과 가족처럼 지내다 보니 직원간 호칭을 직급으로 하기보다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직원들끼리도 이름이나 언니. 오빠 식으로 호칭합니다. 글에 '직원'이라 칭하지 않고 그냥 익숙한 대로 '아이들'이라 표현했음을 양해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1.중국 칭따오에서 8년째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여동생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2.직원들과 가족처럼 지내다 보니 직원간 호칭을 직급으로 하기보다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직원들끼리도 이름이나 언니. 오빠 식으로 호칭합니다. 글에 '직원'이라 칭하지 않고 그냥 익숙한 대로 '아이들'이라 표현했음을 양해바랍니다.
#봉제공장 #인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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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살면서 오블에 <고단한 삶의 놀이터>란 방을 마련하고 타국살이의 고단함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블로그 운영한 지가 일 년 반이 되었으나 글쓰기에 대해 늘 자신이 없어 좀 더 체계적이고 책임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에 시민기자 활동을 신청합니다. 주로 사는 이야기와 여행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주부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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