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방학이고 일요일이라 학교는 매우 조용했어요. 본관 안까지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참 예뻤답니다.
아이들이 자기 얼굴을 그려서 '모두가 주인공'이란 제목으로 벽에 붙여 놓았는데, 꾸밈없는 아이들 맘씨가 느껴졌어요. '검은색을 좋아하는 현수' '훌라후프 김보미' '슈퍼맨 영옥' '게임: 정기 뿅뿅뿅뿅' 자기 개성을 살려 그린 그림이 무척 남달랐어요.
"그런데 이제 어쩌지? 어디로 가서 이 아이를 찾아야 할까?"
"아이 집 전화번호라도 알면 좋을 텐데…. 이거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네!"
"하하하! 그래도 여긴 서울보다는 작은 마을이니까 찾을 수 있을 거야."
"가보자! 발품을 팔아야지, 뭐. 하는 수 없잖아. 저기 윗동네부터 찾으면서 내려오자."
함께 간 남편과 난 그저 아득하기만 했어요. 하는 수 없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작은 마을들을 하나씩 찾아가보기로 했어요. 여러 마을을 찾아가서 지나가는 사람만 보면 덮어놓고 물었어요.
"이 마을에 혹시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가 있나요?"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요.
"여는 그런 아가(아이가) 없을 낀데…. 젊은 사람이 없거든."
생각대로였어요. 요즘 농촌 마을엔 젊은이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마을마다 통장님 댁, 또 부녀회장님 댁을 물어 드디어 신동 마을 부녀회장님한테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답니다.
"학생 줄어드는 모교, 내 아들이라도 보내야죠"
올해 구평초등학교에 홀로 입학하는 성윤이는 씩씩하고 통통하게 생긴 사내아이였어요. 집에 찾아갔을 때, 어른들은 없고 누나 둘과 함께 있었어요. 성윤이 부모님은 구미 인동에서 떡방앗간을 꾸리고 계신대요.
그래서 떡방앗간에 전화해 성윤이 아버지께 여기에 오게 된 이야기를 했더니, 얘기를 듣다 말고 전화가 뚝 끊어졌어요. 나중에 알게 됐지만, 요즘 이상한 사기전화가 많이 온다면서 내 전화도 그런 건 줄 알았다고 하며 미안해하시네요.
성윤이 위로는 누나가 둘 있어요. 서효빈(12), 서유빈(10). 누나들은 성윤이와 달리, 이 마을에서 조금 떨어졌지만 생긴 지 얼마 안된 '천생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지요. 성윤이만 구평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된 거죠. 그것도 나홀로 입학생으로…….
성윤이 아버지 서용득(43)씨도 지난날 구평초등학교를 다녔다고 해요. 작은 학교이지만 한때는 학년마다 두 학급씩 나뉠 만큼 학생들이 꽤 있었는데, 갈수록 농촌에 사람이 줄어들다 보니, 지금처럼 많이 줄었다고 하네요(2008년 학생 수: 38명). 올해는 아들 성윤이가 혼자서 입학을 해야 하는데, 입학을 앞두고 걱정이 많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아버지 생각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아니, 매우 뜻밖이었답니다.
- 성윤이가 올해 혼자 입학하는데 걱정되지는 않으세요?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친구들이 더 많다면 좋겠지만 우리 성윤이가 혼자 가더라도 선생님과 1:1로 공부할 수 있으니 오히려 더 좋지요."
- 성윤이 누나들은 다른 학교에 다닌다고 하던데….
"네. 맞아요. 우리 큰 애들이 입학할 때에는 이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아이들을 새로 생긴 학교에 많이 보냈어요. 그때는 저도 어쩌다 보니 우리 얘들도 거기로 보냈지요."
- 이번에 성윤이를 입학시키면서는 아버님 마음이 남달랐나 봐요?
"네. 사실 내가 이 마을에 살고 있으면서 아이들을 다른 학교에 보내는 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답니다. 저도 이 학교를 나왔거든요. 갈수록 학생 수가 줄어들고, 또 몇 해 앞서 저 옆 동네에 새 학교가 들어서자 폐교를 시킨다는 얘기도 나왔어요. 그때 여러 동문들이 나서서 말렸지요. 작은 학교이지만 나름대로 역사도 깊고 사회에 이름난 사람들도 많이 난 곳이거든요. 제가 배우고 자란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성윤이를 이 학교에 보내려고 마음먹었어요."
말하는 내내 자기가 자라고 공부한 배움터를 사랑하는 마음이 엿보였어요. 이 자랑스러운 학교가 오랫동안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짙게 배어나왔지요. 얘기를 듣는 우리도 성윤이 아버지가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퍽 남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작은딸 유빈이도 올해에는 이 학교로 전학시킬 마음이 있다고도 했어요.
나 홀로 입학생, 꼭 나쁘지는 않아요
정기철(52) 교감 선생님에 따르면, 구평초등학교는 지난 1949년 10월 20일에 개교한 이래, 지금까지 1500명 남짓 되는 졸업생을 내보냈답니다. 그만큼 오랜 역사를 지녀왔고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나온 학교라서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난날에는 250명 남짓 되는 많은 학생들이 있었지만 올해(2008년) 기준으로 38명이 함께 배운다고 합니다. 학생 수는 적지만 나름대로 아이들한테는 더욱 알차게 배우고 오순도순 정겹게 지낼 수 있으니 참 좋은 일이지요.
성윤이가 입학을 하면 어떻게 공부하는지도 궁금했는데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어요. 지금도 1학년에서 6학년까지 학생 수가 그리 많지 않아서 따로따로 '개별화 교육'을 하고 있다고 했어요.
성윤이도 '전담 선생님'이 따로 계셔서 가르칠 계획이라고 하네요. 선생님 한 분이 맡아서 아이를 가르치니 선생님 사랑이야 말할 것도 없고, 때론 동무도 되어주실 테니 교실 분위기가 매우 정겨울 듯합니다.
또 교감 선생님께 매우 반가운 소식을 들었는데, 지금은 학생 수가 적어 5학급밖에 없지만, 앞으로 학교를 더 넓힐 계획이 있다고 합니다. 학교 바로 곁에 지금 아파트 공사가 한창인데, 2010년이면 1600세대가 들어선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24학급으로 늘어날 거라고 해요.
"학교 가는데 기분이 어때?"라고 묻자 성윤이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수줍어하면서 그저 웃기만 했어요. 처음 보는 사람이라 그런지 말 붙이기가 무척 어려웠답니다. 지금은 홀로 입학하여 서먹하기도 하겠지만, 선생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공부할 걸 생각하니 혼자라서 쓸쓸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건 괜한 걱정이었구나 싶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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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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