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고요한 아침, 투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길을 나섰다. 어제(26일)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고 그대로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덕유산으로 차를 몰았다.
덕유산은 덕이 많고 너그러운 모산(母山)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곳을 향해 가속 폐달을 깊게 밟았다. 유성톨게이트로 들어서 대진 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 여 쯤 달려가자 무주리조트로 안내하는 이정표가 반긴다.
덕유산의 설천봉을 올라가기 위해 곤도라 탑승장으로 향하였다. 이곳은 덕유산 설천봉까지 곤도라가 운행되고 있어 누구나 쉽게 산에 오를 수 있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을 바라보니 덕유산은 온통 힌 눈으로 덮여 있고 곤도라 줄이 길게 이어져 있는 설천봉은 먹구름에 휩쌓여 있다. 작년 여름에도 이곳을 찾아 푸른 설천봉을 보기 위해 하루를 묵어가며 기다렸는데 끝내 보지 못했다. 오늘도 산 정상을 보니 파란 하늘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리 저리 나는 먹구름은 스키장에 쏟아지는 맑은 햇살의 눈총을 맞고 금 새 어디론가 달아날 것 같지만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산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 스키장은 하늘로 쭉 뻗어 있고 그 위를 많은 사람들이 밝은 햇살을 받으며 스키를 타고 내려온다.
이리저리 나는 먹구름 사이로 간간이 쏟아지는 햇빛은 눈밭에 나뒹굴며 스키를 타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밝게 비춘다. 그들은 마치 선남선녀처럼 눈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산위의 먹구름이 오늘은 비켜 주리라 기대를 하고 곤도라 탑승장에 섰다. 비교적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스키를 타기 위해 서있는 사람도 간간이 있지만 대부분 덕유산의 아름다운 설경을 감상하기 위해 온 중년의 아주머니들이다.
잠시 후 꼬마들과 함께 곤도라에 올랐다. 그들은 스키를 두 팔로 꼭 안고 있었는데 눈망울을 보니 참으로 귀엽고 예쁘다. 곤도라는 출발지에서 조심스레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내 넓이 뛰기를 하듯 힘차게 출발한다.
점점 산위로 오를수록 내려다보는 산 아래 설경이 아름답다. 특히 곤도라 바로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곳은 누구도 건드려 놓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모습으로 멋진 풍경이다. 나뭇가지에는 눈이 쌓여 아름다운 눈꽃나무가 가득하고, 산속은 바람이 휩쓸고 간 그대로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것 같다. 노루나 토끼가 금방이라도 뛰쳐나와 눈밭을 마구 달릴 것 같은 느낌이다.
설천봉에 오르자 이곳은 아래서 본 그대로 구름에 휩쌓여 있다. 바람은 더 매서워 옷깃 속으로 사정없이 파고들고 손끝은 깨질듯이 아프다. 모두들 추워 몸을 웅크리고 신발 끈을 다시 고쳐 맨다. 이곳은 생각대로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다. 바람이 시시각각으로 방향을 바꾸며 야단을 떤다.
카메라를 가슴 쪽으로 고쳐 메고 덕유산의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기었다. 푹푹 빠지는 산길을 걸어 올라가자 눈으로 덮여 있는 산길은 꿈속 같이 아름답다. 이따금씩 쏟아지는 햇빛은 천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빛이 쏟아지는 시간이 너무 짧아 카메라 셔터를 누를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쌓여 있는 눈은 무릎까지 차오르고 나뭇가지에는 눈이 가득 쌓여 있다. 산속의 눈꽃이 너무나 아름다워 어디를 보아야 할지 그저 마음만 바쁘다.
바람이 스쳐지나간 흔적은 눈밭에 고스란히 남아 신비함을 더해 준다. 온통 새하얀 산속에서 고고하게 푸른 옷을 입고 앉아 있는 산죽은 기죽지 않고 당당한 모습이다. 산속의 구름들은 비상이 걸렸는지 이산 저산을 바삐 날며 등산객들의 걸음을 재촉한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그들을 자꾸 딴전을 피우게 한다.
▲눈꽃1향적봉의 눈꽃이 아름답다임재만
▲ 눈꽃1 향적봉의 눈꽃이 아름답다
ⓒ 임재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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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하얀 새 옷으로 갈아입고 패션쇼를 하는 이곳 향적봉은, 바위들 까지 눈으로 분칠을 하고 그림같이 서있다. 게다가 바람이 그려 낸 눈 무늬는 신이 만들어 낸 작품처럼 아름답다. 저 아래의 설천봉은 가끔씩 햇살을 받으며 온몸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곳 향적봉은 조금 더 높아서 인지 끝내 구름을 껴안고 있다. 모두들 나와 같은 심정으로 향적봉에서 햇살을 기다리지만 매서운 바람에 하나둘 발길을 돌리고 만다.
향적봉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한참을 기다렸다. 설천봉 쪽에서 먹구름이 밀치며 햇빛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동안 추위에 떨며 고민했던 시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고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뿔싸! 세상에 이런 일이...... 카메라 밧데리가......
아침에 가방에 밧데리를 하나 더 넣는 다는 것이 충전기에 꽃아 두고 그냥 나온 것이다... 이 허탈감이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아쉬운 마음에 마음은 비상사태에 빠지고 만다.
푸른 하늘이 뚫려지며 맑은 햇살이 산속에 가득 부서진다. 그 햇살에 새롭게 피어난 눈꽃나무, 조금 전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그들은 천상의 세계를 펼쳐 놓은 듯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언젠가는 오늘의 아름다운 덕유산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아쉬움을 달래며 덕유산을 내려왔다. 덕유산이 점점 멀어져 간다.
2008.02.27 20:12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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