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별검사수사팀이 1차 수사 기한 종료(3월 9일)를 1주일 여 남겨놓고 연일 강행군이다.
지난 28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를 소환한 데 이어 29일 오후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을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이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에게도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과 관련해 다음주 초 출석할 것을 통보한 상태이기도 하다.
사실 전략기획실 핵심 임원들과 이 회장 일가에 대한 소환은 모두가 예상했던 일이다. 비자금 조성, 경영권 불법 승계, 정관계 로비 등 모든 의혹의 핵심에는 전략기획실과 이 회장 일가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도 출범과 함께 이들을 출국금지 조치하면서 소환 조사를 피할 수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문제는 '시기'였다. 지난 1월 10일 출범한 특검팀은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나아가는 수사를 지향했다. 조준웅 특별검사는 지난 1월 24일 참여연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경제개혁연대·민주노총 등 4개 시민단체 대표자와의 면담에서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김인주씨를 비롯한 핵심 관련자의 경우 아무 준비 없이 소환하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주변부'의 실무자들에게서 확실한 증거를 확보해 '중심부'의 핵심 관련자들이 꼼짝할 수 없겠다는 뜻이었다.
조 특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특검팀은 핵심 관련자들이 꼼짝할 수 없는 증거를 확보한 셈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수사 상황을 지켜볼 때 의문이 든다.
지금까지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 전·현직 임원 60여명을 소환했지만 정작 차명계좌임을 시인한 임원은 4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 임원들도 계좌 개설 전표 및 거래 내역 등을 들이대고 압박한 후에야 자신의 계좌가 아님을 시인했다.
승지원·삼성본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도 삼성의 철저한 대비로 인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김상조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최장 105일이라는 수사기한, 한정된 인력으로 된 특검은 일반 검찰과 다른데 검찰의 수사 기법을 택하는 오류를 범했다"며 "핵심관련자 소환을 미뤄 삼성 임직원들이 증거인멸에 나서는 등 새로운 범죄자들을 나오게 했고 뒤이어 소환된 임직원들이 지록위마(指鹿爲馬) 같은 행동을 하게 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이 같은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특검팀이 이 전무를 비롯해 핵심 관련자들을 줄소환해 '성과가 미진한 수사 국면을 돌파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회장 일가와 전략기획실의 수장격인 인사를 소환해 특검의 수사를 방해하는 삼성에 대한 강한 경고를 하기 위한 조치일 수도 있다.
이와 대해 윤 특검보는 이날 오전 "이재용 전무 소환을 두고 특검 수사가 지지부진해 국면 타결을 위한 강수라는 추측 보도는 오해를 살 수 있다"며 "수사계획에 따라 소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의심 받는 삼성 특검... '명분쌓기용' 소환?
반면, 1차 수사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핵심 관련자들을 줄줄이 소환하는 것은 특검팀의 '명분쌓기'라는 지적도 있다.
적어도 1차 수사 기한 내에 이재용·이학수·김인주 등 핵심 관련자들을 소환해 모양을 갖추는 한편, 이미 정황 증거가 명백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에 대해서 일정 정도 성과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같은 분석의 배경에는 특검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이미 특검팀은 이학수 부회장을 지난 14일 첫 소환했다. 그러나 특검팀은 이날 이 부회장을 상대로 조서를 작성하기는커녕 4시간 동안 대화만 나눈 것으로 알려져 구설수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가 진척이 안 보이는 점도 불신의 이유가 됐다.
지난 27일 조 특검과의 면담을 거부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역시 이를 문제 삼았다.
특히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를 맡은 제갈복성 특검보가 임채정·이종백·이귀남 등 뇌물 검사들이 혐의가 없는데 어떻게 소환하냐고 말했고 김 변호사에게 진술서를 팩스로 보내라 했다"며 "이렇게 지지부진한 특검이라면 차라리 전문수사기관인 검찰에 사건을 넘기라"며 특검의 수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소환 소식은 이와 같은 사제단의 혹독한 비판 뒤에 전해졌다. 이를 두고 특검팀이 비판 여론을 '물타기'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특검팀 관계자는 "이 전무에게 수일 전 소환 통보를 했다"며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한 상태다.
그러나 특검팀을 향한 의심의 눈길을 거둬지지 않았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오늘(29일)도 삼성의 로비를 받은 검사 수십 명과 새 정부 관료의 명단을 추가 공개 여부를 논의하는 등 특검에 대한 압박을 늦추지 않고 있다.
성과는 아직 미지수, "계속 주시하겠다"
한편, 이날 소환된 이 부회장과 김 사장은 "특검에서 성실하게 답변하겠다"는 말만 남긴 채 조사실로 향했다.
삼성 측의 변호인인 이완수 변호사는 "조사가 끝나는 시간은 수사관들이 알지 않겠냐"며 "오래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어제 14시간 동안 특검의 조사를 받은 이 전무는 피의자 조서를 포함해 2~3개 정도의 조서를 작성했었다.
그러나 특검팀 관계자는 "이 전무가 알면 안다 모르면 모른다고 성실하게 답변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불만족스럽다"며 "필요하면 추가 소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부회장과 김 사장의 답변도 특검에게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들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를 여러번 받은 바 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통해 "비록 뒤늦은 감이 없진 않으나 이재용씨에 대한 최초의 소환수사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재용씨에 대한 소환 수사만으로 특검의 수사의지를 과시했다면 큰 오산"이라며 "참여연대는 특검수사를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도 이날 논평을 내고 "삼성특검의 성과물이나 수사의지에 대해서는 최종적으로 1차 수사 결과 발표를 보고 판단할 일이지만 그동안의 진행상황으로 보건대 삼성특검에 대해 전폭적인 신뢰를 보낼 수 없는 것도 사실"이라며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물론 삼성그룹의 조직적 수사 방해로 인해 수사가 쉽지 않다는 특검의 고충도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특검의 강력한 수사의지가 중요하며, 국민들은 특검이 삼성그룹의 조직적 수사방해를 뚫고 대한민국의 거대권력이 저지른 전대미문의 조직적 부패행위에 대해 엄정한 심판을 내림으로써 한국사회가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2008.02.29 21:52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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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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