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에서 보내는 꽃 편지 - 홍매화
서종규
봄은 어느덧 남도의 섬 진도 접도에 가득하였다. 접도 수품항에서 출발한 접도 등산은 봄을 찾아 떠난 산행이 되었다. 산행에서 느낄 수 있는 봄의 의미는 봄꽃들이다. 봄꽃은 매화와 같이 나무에 주렁주렁 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랑의 눈길을 주지 않으면 아무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땅에 딱 붙어서 피어나는 꽃도 많다.
특히 봄소식을 알려주는 복수초, 산자고, 노루귀, 변산바람꽃, 개불알풀꽃 등은 땅에 딱 붙어 있어서 일부러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꽃들이다. 그래서 이러한 꽃들은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 찍은 꽃이 된 지도 오래다.
접도 남망산 정상(164m)에서 쉬고 있는데 따뜻한 양지 바위 근처에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리며 무더기로 눈에 들어오는 꽃이 있다. ‘산자고(山慈姑)’다. 이른 봄이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이 꽃을 찾으려 온 산을 뒤지고 다니다가 한두 송이 발견하면 그 기쁨에 땅에 엎드려 별처럼 밝게 빛나는 이 꽃 한 송이를 정성스럽게 카메라에 담는다.
꼭 별처럼 생겼다. 하늘의 별이 아니라 우리의 관념 속에 들어 있는 오각형의 별처럼 생겼다. 아니다. 오각형이 아니라 육각형의 별이다. 땅에서 약 10cm 정도 올라온 꽃대 끝에 섯 개의 하얀 꽃잎이 하늘을 향하여 손을 벌린다. 꽃잎 안쪽에는 노랗게 또 작은 별을 그리고 있고, 그 위에 여섯 개의 수술이 노란 방망이처럼 뭉쳐 있다. 백 원짜리 동전보다도 작을 것 같은 앙증맞은 꽃이다.
잎은 땅에서 솟아나와 땅을 파랗게 가로지르고 있다. 약간 도톰하고 좁은 보리잎처럼 생겼는데 그 길이가 한 뼘 정도 길쭉하게 자라 있다. 땅은 아직 작년 가을에 말라버린 각종 풀과 나뭇잎으로 가득한데, 그것을 뚫고 올라와 하얀 별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산자고’를 흔히 ‘까치무릇’ 또는 ‘까추리’, ‘물구’ 등의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단다. '산자고'라는 한자이름보다는 ‘까치무릇’이라는 우리 이름이 더 정감이 있다. 이른 봄 우리나라의 남쪽 섬 산에 소리 없이 피어나서 아무도 받아보지 못할 것 같은 봄 편지를 쓰고 있는 꽃이 너무 사랑스럽다.
산자고를 발견하자 모두 즐거운 비명을 올린다. 산에 온 즐거움이다. 동전보다 더 작은 꽃 한 송이에 느끼는 생명력이랄까. 그 아름다움이랄까. 봄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증표라고나 할까. 유난히 땅이 붙어서 피어나는 작은 꽃들에게서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 그래서 ‘풀꽃산행’이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