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라진 걸 알았을 때 아이들 반응은 어떨까

기간제 교사 6년차 생활을 마감하다

등록 2008.03.03 08:36수정 2008.03.0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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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깬지 오래다. 전전반측하다가 냉수 마시러 거실로 나와 시계를 보니 4시 5분이다.

'아~ 이제 아침잠을 실컷 자도 되는데….'

 

도로 누워봐도 천리만리 달아났는지 잠이 돌아와주지 않는다. 요즘은 서너 시간 자고나면 저절로 깬다. 분명히 학교 꿈을 꾸었던 듯 한데 생각이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오늘 개학이지만 나는 학교에 갈 일이 없어졌다. 고 3  첫날인 작은 딸만 배웅하면 되는 것이다. 다시 잠들지는 못하고 정돈되지 않은 잡생각들만 제멋대로 머리 속을 휘저어 놓는다. 

 

1년간 내게서 배웠던 아이들은 내가 사라진 것을 알았을 때 어떤 마음일까. 1년밖에 안됐는데 왜 간 거야? 어디로 간 걸까? 궁금해하는 아이가 있기는 할 것인가. 왠지 자신이 서지 않는다. 지난 번에도 2년 만에 왜 다른 학교로 갔느냐고 섭섭해하는 제자들에게 언제든지 놀러오라며 오히려 내가 위로해주었다. 

 

그 때 담임했던 중1생들이 벌써 고교진학한다고 자랑하며 놀러오겠다고 했었다. 오늘 입학했다고 자랑하러 들를 텐데, 싸이홈피도 닫아버렸으니 황당하겠지. 이제 놀러오라고 할 수도 없다. 내 위치를 설명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들이다. 기간제를 주제로 쓴 좋은 시가 있다. 나는 전일제(미발령 자리에 임시로 있는 걸 이렇게 부른다고 했다)였기에 1년 내내 정규직 교사들처럼 담당업무도 하고 담임도 맡고 해서 (  )인은 아니었으나 내용들은 이해하고도 남을만하다. 특히 아이들 이야기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저 ( )인, / 박수현

 

나는 기간제 교사다 육아 휴직한 어느 젊은 여교사의 그림자인 나는 교사명단란에도 그녀의 이름 옆 ( ) 속에 갇혀있다 괄호인 나는 십 년을 일해도 백년을 일해도 근무연한 5년차까지만 인정받는다 성과급 지급은 물론 공무원증도 발급되지 않는다 전자문서 결재란에도 급여 명세서에도 따라 붙는 기간제라는 말 교무회의에서도 ( )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내 목소리는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눈도, 귀도 없는, 가슴도 없는 나, 그저 괄호인

 

비온 뒤 여름철 나무마냥 쑥쑥 커가는 아이들, 입학할 때 헐렁했던 교복이 어느 새 터질 것 같다 그 아이들이 내게 달려와 내년에는 몇학년 맡을거냐고 내년에도 우리를 맡을거냐고 엉겨 붙는다 ( )를 이해 못하는 그들에게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나는 너희처럼 애먹이는 놈들 안 맡을거라며 으름장 놓는다 제 분수 모르고 날뛰던 지난 날들이 돌팔매질로 날아온다                 

                                                               (2006년 시인시각 겨울호)

 

보름 전까지만 해도 이번 학교에 1년간 더 근무할 거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갑자기 '1년이면 해임'으로 바뀌었다는 연락을 지인을 만나 점심 먹고 있을 때 받았다. 안타깝다는 교장, 교감 선생님의 전화를 연달아 받으면서도 막막하기만 할 뿐 아무 생각도 없었다. 일시적 사고마비 증세랄까 그저 멍하니 앉아있었다. 근처 다른 학교로 가라고 추천 받았는데 알았다고만 답변하고는 다음날 아침 그 학교에 전화해서는 이력서 넣지 않겠다고 알렸다.

 

내 나이 오십. 작년 가을 종양제거 수술 이후,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고 마취 후유증으로 기억력도 감퇴되었다. 담임 업무를 수행하기에는 벅차다. 그렇다고 담임 안하겠다고 튕길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결국 그만 두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열심히 했다. 43살에 시작한 기간제 생활, 중간에 두 해 쉰 것 빼면 6년차인데 늘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으로 더 열성적이었다.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었다. 때론 얼토당토 않은 학부모를 만나기도 하고 개념없는 아이를 맡아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내게도 보람으로 돌아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놓았고 남의 아이들도 예뻐 보이는 나이이기에 학교일 하기 딱 좋은 황금나이라는 생각조차 했다. 

 

공립학교 교사들은 비정규직 몇 년이면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줄로 안다.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려울성 싶은 임용시험에 합격해야 채용되는 당연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보호법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 나와 같이 근무한 선생님도 다른 학교로 갔다.

 

몇 달 전엔가 읽은 기사 생각도 났다. 최저임금제 적용으로 아파트 경비원들이 쫓겨나야 하는 실정인데 월급 적게 받아도 좋으니 일하게 해달라고 탄원했다던가.

 

이제 식구들을 깨워야겠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식구들 몽땅 내보내고 맘껏 뒹굴거려 봤으면'을 실천해야겠다. 며칠간은 마음이 하자는대로 그저 따라다닐 작정이다. 

2008.03.03 08:36ⓒ 2008 OhmyNews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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