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우리 나라에서 '정식으로' <인간가족>이 나온 적은 없습니다. 헌책방에 때때로 '영어판 원본(?)'이 들어올 뿐입니다. 해적판은, 영어판으로 나온 원본과 견주면 1/6 크기밖에 안 되는 조그마한 판짜임입니다.최종규
▲ 겉그림 우리 나라에서 '정식으로' <인간가족>이 나온 적은 없습니다. 헌책방에 때때로 '영어판 원본(?)'이 들어올 뿐입니다. 해적판은, 영어판으로 나온 원본과 견주면 1/6 크기밖에 안 되는 조그마한 판짜임입니다.
ⓒ 최종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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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인간가족>(the Family of Man)
- 엮은이 : 에드워드 스타이겐(Edward Steuchen)
- 펴낸곳 : 월간사진사(1986. 4. 15.)
달마다 15일에 도서관 달삯을 냅니다. 이맘때가 되면 마음이 바빠집니다. 마땅한 벌이가 없으니 겨우겨우 달삯을 내기는 하는데, 하늘에서 돈이 뚝 하고 떨어져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참말로 뚝 하고 돈이 떨어진다면? 그때 제 마음이며 몸가짐이며 예전과 똑같을 수 있을는지?
새벽에 일어나서 원고 갈무리를 해 볼 생각이었습니다. 이 원고를 얼른 마무리 지어서 출판사로 보내 주면 몇 푼이나마 살림에 보탬이 되기도 해서.
그런데 새벽 날씨가 꽤 싸늘합니다. 옷을 세 벌 껴입고 이불도 여러 겹으로 뒤집어쓰고 누웠으나 오들오들 떨립니다. 이런 판에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을까? 마침 옆지기가 이불 속으로 손을 쑥 내밀며 제 오른손을 쥡니다. 안 되겠구나, 더 누워야겠구나, 생각하며 옆지기 손을 꼬옥 쥔 채로 더 눕습니다.
아침 일곱 시 반에 일어납니다. 작은 노트북을 켭니다. 한 사람이라도 이부자리에 몸을 비비고 있어야 누워서 쉬는 사람도 따뜻할 테지요. 옆지기 몸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새 목숨은, 그닥 따뜻하지 않은 집에서 살아가는 어버이를 어떻게 바라볼는지. 다섯 시부터 자정을 넘어서까지 타탕타탕 소리를 내며 전철 오가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오기까지 하는 이 집을 어떻게 느낄는지. 미안하다고 뉘우치는 한편으로, 앞으로 네가 태어나서 살아갈 세상이 이렇단다 하고 핑계 같은 말을 건넵니다.
옆지기 동생이 선물로 준 ‘제주백년초초콜릿’ 하나를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창문을 올려다봅니다. 창가에는 옷걸이가 여덟 걸려 있습니다. 빨래입니다. 마루에만 내다 놓아도 얼어붙는 빨래라, 잠자는 방 창가에 빙 둘러 널어 놓습니다. 방바닥에는 겨우내 이불이 깔렸고, 이 책 저 책 아무렇게나 쌓여 있으며, 바깥나들이 할 때 입는 옷이 한쪽에 얼크러져 있습니다. 누가 와서 보면 쑥스러운 집안살림입니다. 그러나, 뭐, 우리는 이렇게 삽니다. 이런 집이 우리 집이고, 이런 모습이 우리 모습입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헌책방 나들이를 좋아하고 헌책방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까닭도, 제가 사는 모습과 그다지 다를 바 없기 때문이 아니랴 싶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도 빛이 바래지 않는 알뜰한 책을 만나서 반갑기도 한 헌책방입니다. 쌓이면 쌓이는 대로, 먼지가 덮이면 덮이는 대로, 알아보는 이가 있으면 그러한 대로, 알아보는 이가 없으면 그러한 대로 책시렁 한켠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책이 있는 헌책방입니다. 새책방처럼 반품을 할 수 없으니, 열 해고 스무 해고 꽂힌 채 어느덧 그 헌책방을 수놓는 ‘장식품’이 되어 버리는 책도 있어요.
한 마디로 자연스러움입니다. 덧대거나 덧붙이지 않은 수수함입니다. 곱다시 꾸며야만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꾸밈없는 모습도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헌책방 아저씨 아주머니 들은 때때로 이렇게 말합니다. “저기, 쓰레기들은 안 찍었지요?”, “구멍 난 장갑을 찍으면 어떡해?”, “에그, 뵈기 싫은 데까지 찍으면 안 돼?”
당신 님들 말씀처럼 당신들이 사람들 앞에 내보이고프지 않은 모습, 또는 사진이라는 기록으로 남지 않기를 바라는 모습은 함부로 찍을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런 모습도 우리 삶입니다. 자랑할 대목이 없을지 모르나 부끄러울 대목도 없는 우리 삶입니다.
두 살배기는 두 살배기여서 좋고, 열 살짜리는 열 살짜리라서 좋고, 스무 살 젊은이는 스무 살 싱그러워서 좋으며, 서른다섯 사내는 그만한 주름살이 있어서 좋고, 마흔둘 아주머니는 세월 박힌 굳은살이 있어 좋습니다. 번들번들 화장품을 얼굴에 바른다고 더 예뻐지지 않습니다. 값나가는 옷을 몸뚱이에 걸쳐야 멋스럽지 않습니다. 저마다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며 어깨동무를 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 함께 웃고 울 수 있다면 예쁘고 멋스럽다고 느껴요.
에드워드 스타이겐 님이 엮어낸 사진잔치 <the Family of Man>은 이렇게 해서 태어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 살아가는 모습을 조촐하게 느끼도록 담아낸 사진을 한 자리에 모아 우리 굳거나 메마른 마음에 샘물 한 잔 바치면서.
‘월간사진사’는 1957년에 나온 이 사진도록을 해적판으로 묶어서 1986년에 냅니다. 해적판이긴 합니다만, 그때나 이제나 스타이겐 <우리 식구(인간가족)> 한국판은 이 책 하나만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책 + 헌책방 +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2008.03.03 14:55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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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가족
에드워드 스타이컨 지음, 정진국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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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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