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가 놀라 튀어나온다는 경칩(驚蟄)을 하루 앞둔 4일, 서울과 경기·강원·충북·경북 일부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렸습니다. 동짓날 개울에서 수영하던 ‘경칩’이 익사했다는 소식을 듣는 기분이네요.
갑작스럽게 내린 눈으로 출근길 차들이 정체와 혼란이 빚어지자, 눈이 내리지 않을 것으로 예보했던 기상청은 대설경보와 대설주의보가 발효되었던 지역에 눈이 더 내리겠다고 예보를 바꿨다고 합니다. 물건값 흥정하는 것도 아니고 씁쓸하군요.
기상청은 지난 1월에도 이번처럼 오보를 해놓고, “온난화와 라니냐 현상의 영향으로 올해 겨울은 기상예보가 한층 어렵게 됐다”라는 궁색한 변명을 했다가 시민들로부터 거센 항의와 질타를 받은 적이 있지요.
사흘 후면 봄이 시작되는 2월(음력)이고, 우수(雨水)와 경칩(驚蟄)이 지나면 얼었던 대동강 물도 풀린다고 하는데, 폭설이 내리고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장난이 아닌 걸 보면 꽃샘추위도 아닌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눈 오는 날도 있고, 비 오는 날도 있고, 바람 부는 날도 있다고 하지만, 자연의 순리도 때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원유와 곡물가가 폭등한데다 국내 정세까지 어지러우니까 날씨도 멀미하는 모양입니다.
해삼장수 아저씨와 경칩
24절기에서 세 번째인 경칩(驚蟄)은 땅속에서 동면하던 동물들이 깨어나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절기입니다. 이때쯤이면 개구리들이 냇가에 알을 까놓았는데, 사람들은 ‘경칩’이라고 불렀지요.
옛날에는 개구리 알(경칩)이 몸을 보하고 허리 아픈 데도 좋다고 해서 고로쇠 약수와 함께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경칩이 가득 담긴 물동이를 자전거에 싣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한 사발씩 퍼주며 몸에 좋으니 마셔보라고 권하던 ‘해삼장수 아저씨’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합니다. 설연휴 때 뵈었는데 노인이 다 되셨더라고요.
경칩에는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기도 합니다. 경칩 때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부러 흙벽을 바르기도 하지요.
목수들이 황토에 볏짚과 물을 부어놓고 우리에게 반죽을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맨발로 들어가 밟았는데, 발바닥에 닿는 미끈미끈한 촉감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습니다.
가장 좋은 퇴비였던 ‘똥’ 이야기
경칩과 함께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겨우내 쌓인 인분을 퍼냅니다. 인분은 직접 논밭에 뿌리기도 하지만, 퇴비 더미에 묻어두었다가 몇 달간 잘 썩혀 뿌리기도 했거든요.
질소 성분이 들어 있는 비료를 양약이라 한다면 퇴비는 한약이라고 하겠습니다. 논밭의 보약인 퇴비는 지력을 높이는 성질이 있지요. 비료가 생산되지 않았던 50년대 농촌에서 퇴비 만들기에 열을 올린 것도 지력 증진을 통한 생산량 증가가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똥’ 이야기가 나오면 건너 동네에 살던 ‘준태네 할아버지’가 생각납니다. 하얀 수염이 목까지 내려와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도사를 연상시켰는데, 사각모형의 큰 통을 소달구지에 싣고 똥을 푸러 다녔습니다.
변소가 어느 정도 차면 어머니는 ‘준태네 할아버지’를 모셔오라며 심부름을 시키지요. 그러나 아무 때나 그냥 퍼가는 게 아니었습니다. 인분이 필요 없는 여름이나 겨울에는 한 지게에 얼마씩 돈을 주어야했으니까요.
논밭에 퇴비와 외양간에 두엄 주는 철에는 똥을 푸라며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는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성적이 좋지 않거나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부모가 “너는 커서 똥지게나 지어라”, “너는 똥구루마나 끌면 딱 맞겠다”라고 했는데, 꾸짖는 말도 세월에 따라 바뀌는 모양입니다.
지금이야 분뇨처리에 신경 쓸 일이 없지만, 도시에도 대부분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했던 70년대까지만 해도 돈을 주고 지게로 퍼내야했습니다. 인심이 야박해지면서 횟수를 속이는 사람들이 나타나자 옆에서 지키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음력 2월1일은 ‘콩 볶아 먹는 날’
경칩이 지나고 8일(음력 2월1)은 ‘콩 볶아 먹는 날’입니다. 옛날에는 아무리 가난한 집도 이날에는 콩을 볶아 아이들에게 먹였지요. 어른들도 먹었는데, 1년 내내 생콩을 먹는 아저씨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콩이 몸에 좋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주로 검은 콩을 볶아먹었는데, 검은 콩이 신장에 좋다는 것은 오행학설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겠습니다. 볶은 콩은 건강하게 자라야 할 아이들에게 좋은 군것질거리이자 보약이기도 했습니다. 새우깡 하나 없던 시절이었으니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가난했고 배고프던 시절이었으니. ‘콩 볶아 먹는 날’도 작은 행사 날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통 풍습은 거의 빼놓지 않으셨든 어머니는 무엇이든 뜨거운 불에 볶아먹으면 병이 생기지 않고, 힘도 좋아진다며 콩을 볶아주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겨우내 사용해서 부족해진 에너지를 보충하려는 조상들의 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2008.03.05 08:37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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