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어르신들이 이처럼 애쓰고 악쓰고 몸쓰는 모습을, 당신들 딸아들한테, 손주들한테 보여줄 수 있으면 더욱 좋겠구나 싶습니다. 손주들이 이런 데 오면 위험하다지만,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도록 어르신들이 몸으로 지켜주고, 우리 삶터를 지키자면 이렇게 몸으로 부대껴야 함을 가르쳐 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산업도로가 그예 뚫리고 나면, 아이들 앞날이 위험해집니다. 지금으로도 골목집과 아파트 바로 옆에 울타리 하나 사이로 마주하고 있는 온갖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하고 자동차 배기가스는 아이들 건강을 다치게 하고 위협합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말합니다. “걱정이 되어서 어떡해. 그래서 이렇게 나와서 지켜야지.”
건설업체 사람들은 항의하는 주민들한테 말합니다. 당신들도 이 산업도로 공사가 잘못인 줄은 알고 있다고. 그러나 당신들은 ‘봉급쟁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그렇다면, 봉급쟁이인 공무원은, 자기들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서 주민들 삶터가 엉망이 되든 망가지게 되든 마음을 안 기울여도 된다는 소리일까요. 당신들이 받는 봉급은, 시에서 주는 용역비인데, 시에서 주는 용역비는 바로 이곳 인천시민이 낸 세금인데, 그러니 이들 건설업체는 이곳 주민들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이곳 주민들 삶터를 망가뜨리고 파헤치는 일을 하는 셈인데.
한편, 건설업체 사람들 스스로도 이 공사가 잘못인 줄 안다면, 이와 같은 공사를 따내어 월급받고 살아가고자 하기보다는, 잘못이 없는 공사를 따내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곳 산업도로 공사가 잘못이지만 먹고살자면 어찌할 수 없다고 말하며 밀어붙이면, 이 잘못된 공사 때문에 피해를 입을 사람들하고 당신들은 그저 남남, 아랑곳하지 않아도 될까요. 오히려 건설업체 사람들이 인천시장한테 ‘왜 우리한테 잘못된 공사를 맡겨서 주민들하고 몸싸움을 하게 만들고, 우리들 공사도 못하게 하는 상황을 만드는가?’ 하고 따지며, 인천시청에 손해배상을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야기를 들어 보면, 건설업체 사람들은 ‘자기들이 따낸 공사가 잘못된 공사라고 해도 그냥 해야지, 손해배상을 올릴 수 없다’고 합니다. 잘못된 공사임을 따져서 손해배상을 걸면, 그때 한 번은 배상을 받을지 모르나, 그때부터는 다른 공사를 따낼 수 없는 미운털이 박힌다고.
자전거를 타고 공사예정터를 여기저기 왔다갔다 합니다. ‘1구간 고가도로 교각’에 머물다가 ‘3-B 문화사우나 옆’에서 함께 지키고 있다가 ‘4구간 신흥동 경남아파트 앞’을 찾아가 봅니다. 4구간에는 공사강행을 막아서는 주민이 보이지 않습니다. 30층이 넘는 높직한 아파트 창문은 굳게 닫혀 있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아파트 창문은 여름에도 겨울에도 닫혀 있습니다. 여름에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아닌 에어컨 바람을 쐽니다. 겨울이야 추우니 문을 닫겠지만, 난방기를 돌리고 집안에서 반소매 차림으로들 지냅니다. 빨래를 해도 햇볕이 아닌 세탁기로 물을 짜서 집안에 걸어 놓을 뿐입니다.
꽃그릇을 키워도 툇마루 안쪽이나 마루에 놓을 뿐, 이웃집하고 자기네 꽃그릇 구경을 함께 나누지 않습니다. 아파트 이웃집은 단단한 쇠문과 도어록뿐입니다. 4구간 공사를 하고 있는 건설업체 일꾼한테 묻습니다. “여기 공사 다시 하시는 거예요?” “도로 넓히는 거여, 확장하는 거여.”
‘3-B 구간’으로 돌아옵니다. 포크레인이 와 있습니다. 그러나 멈춰 있습니다. 주민은 포크레인 앞에 서서 앞으로 못 가게 막고 있습니다. 둘레에서 사진을 찍고 이것저것 취재수첩에 글을 끄적이고 있으니, 현장 일꾼 한 사람이 다가와서 묻습니다. “기자님!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사이비 기자가 많아서 그런데, 기자 신분증을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주민들한테도 높임말을 써 주시면 한결 나을 텐데. 서로서로 고운 말로 부드러이 이야기를 나누며 문제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으면 좀더 좋을 텐데.
1구간으로 다시 갑니다. 한판 실랑이가 거세게 몰아치고 지나간 듯. 주민들은 공사터 자재에 올라가서 버티고 있습니다. 건설업체 사람들이 공사를 다시 하려고 하지만 주민들은 꼼짝 않고 버팁니다. 공사터 위쪽에 자전거를 세우고 내려갑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난 뒤 송현동성당 김덕원 신부님이 매일미사를 이곳, 산업도로 공사예정터에서 치르기로 합니다. 사십 분 즈음 매일미사를 올리고 나니, 송림동성당 신자 분들이 낮밥을 챙겨서 공사터로 찾아옵니다.
김밥 한 줄, 컵라면 하나 함께 먹으면서, 공사예정터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는 제철소와 제강소에서 쉴새없이 뿜어져 나오는 허연 연기를 봅니다. 저 연기, 아니 저 매연 때문에 이 동네 사람들은 숨쉬기가 어렵습니다.
인천지역 신문에서 해마다 끊임없이 나오는 보도를 살피면, 인천은 전국에서도 몇 손가락에(거의 첫 손가락) 꼽히는 공해도시이며, 인천 가운데에서도 동구가 가장 공해가 끔찍하답니다. 이리하여 이 동네에 호흡기ㆍ기관지 환자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어찌 이곳 인천뿐이겠습니까. 공장 굴뚝은 안산에도 있고 충주에도 있고 울산에도 있습니다. 서울 구로에도 있고 대구에도 있습니다.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릅니다만, 울산에서 솟아오르는 매연과 인천에서 솟아오르는 매연이 날마다 ‘잘 지냈니?’ 하고 인사하며 만나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이 공장 매연과 자동차 배기가스는 어찌해야 할까요. 공장을 아예 안 돌릴 수는 없을 테지만, 우리는 지금, 꼭 있어야 하는 공장을 알맞춤하게 돌리고 있는가요. 지금 우리들은 꼭 타야 하는 자동차를 알맞춤하게 몰고 다니고 있는지요.
너무 많은 물건을 돈 걱정 없이 펑펑 써대며 버리고 있지 않습니까. 1회용품을 너무 가볍게 써 버리고 있지 않나요. 가까운 거리를 걷지 않고 자가용으로 다니고 있지 않은가 돌아볼 수 있을까요. 대중교통으로 다녀도 될 일터를 자가용으로 다니고, 자전거로도 괜찮을 텐데 귀찮다고 덥다고 춥다고 자가용을 끌고 다니지 않으신지요. 이런 우리 모습을 바꾸지 않으면서 무엇을 바꾸어낼 수 있을까요. 지금 이곳 인천땅에서 끊이지 않는 ‘잘못된 행정 결과물’ 가운데 하나인 산업도로만이 아닙니다.
공사터 둘레를 걸어서 지나가며 학교로, 일터로 가는 발걸음을 봅니다. 이들은 이런 공사가 일어나는 줄 알까요. 알아도 몸으로 느끼고 있을까요. 어쩌면, ‘동네 한복판 꿰뚫는 산업도로’ 문제만이 아니라, 자기가 사는 집과 일터와 학교 둘레에서 일어나는 온갖 잘잘못에서도 팔짱을 끼거나 나 몰라라 하지는 않는지. 다른 사람이 다 해 주겠지 하는 마음은 아닐는지. 이런 일이 있어야 경제가 발돋움한다는 생각은 아닐는지.
건설업체 사람들은 오늘 하루 어쩔 수 없는가 보다 하고 멀거니 지켜보기만 합니다. 주민들도 조금 숨을 돌리며 해바라기를 하며 앉거나 서 있습니다. 건설업체와 주민들은 애꿎은 힘을 빼고 있습니다. 애먼 시간을 버리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잘못을 인천시장 안상수씨 한 사람한테만 돌릴 수 없습니다. 주민들이 좀더 똘똘 뭉치지 못한 탓이 있고, 지역언론에서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탓도 있으며, 중앙언론에서 ‘너네 동네 일이니까 너네가 알아서 해’ 하면서 구경조차 안 한는 탓도 있습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보면, 이 동네 주민한테는 이 고단한 싸움은 좋은 배움마당입니다. 여태껏, 인천 중구와 동구 사람들은 나라나 지역정부에서 하는 일에 한 번도 반대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서서 ‘이건 잘못되었는데요?’ 하고 따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나라님이 하시는 일인데’ 하면서, 또 ‘우리 같은 무지렁이가 어떻게 반대를 해’ 하면서.
그렇지만, 이렇게 밀리고 밀리면서 산동네 달동네 쪽방살이를 하는 지금에 와서도 또 말없이 있는다면, 이 삶터에서마저 쫓겨날 수밖에 없어요. 앞으로는 고향이고 뭐고 있을 수 없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분들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먼저, 아파트는 산업도로 같은 길이 나면 집값이 쭉 떨어질 테지요. 아파트사람이 가장 걱정하는 집값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 집값이 대수입니까? 집값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사라지는데. 사람이 한 사람으로서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보람을 잃는데. 소중한 이웃을 잃는데.
그리고 그 아파트에서 잘산다고 해도, 아이들이 다닐 학교가, 아이들이 어린 날 신나게 웃고 떠들며 놀 수 있는 터전이 사라져 버리는데. 매연과 폐수와 배기가스로 찌든 이 동네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자랄까요. 풀숲도 흙 한 줌도 시원한 바람도 없는 이 땅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크면서 어떤 어른이 되어 이 나라 이 땅 이 마을에서 부대끼며 살아갈까요.
“이번주는 양반처럼 합니다만, 다음주부터는 얼굴에 철판 깔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는, 건설업체 사람들 말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갈기갈기 찢어발깁니다. 자기 스스로 망가뜨리고 있는 건설업체 사람 마음이 슬픕니다. 아니, 건설업체 사람들이 이렇게 자기를 망가뜨리도록 명령과 지시를 내리고 있는 ‘윗분’들이 불쌍하고 딱합니다.
덧붙이는 글 |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 시민모임 인터넷방(http://cafe.naver.com/vaedari)이 있습니다.
2008.03.06 14:52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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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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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 지키고자 ‘산업도로’ 막는 몸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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