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학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날 난 '시와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시절 시집은 나의 진지하고 치열한 벗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그리 만만한 친구는 아니었다. 즉, 속편하게 주절주절 수다떨 수 있는 편한 상대는 아니었다.
시집을 대할 때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해야했다. 가끔 미치게 보고픈 친구였으나 미리 약속일정도 확인해야했고 옷매무새도 신경써야하는 그런 친구였다. 아무날 아무 때라도 들러 그저 얼굴 보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친구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시집과 마주했다. 시집을 읽은 것이 오랜만이라는 말은 아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편한 모습으로 시집과 만날 수 있었다. 아니 처음인지도 모른다. 대학을 졸업한지도 어언 십년. 그동안 쌓인 세월의 더께가 그만큼 녹록치 않았음인가, 아니면 시가 무릎을 좀 낮추고 눈높이를 마주했음인가. 시는 어느새 옷매무새, 경제적 여유 걱정하지 않고도 ‘쌩얼’로 만날 수 있는 부담없는 친구가 되어있었다.
사실,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는 바탕은 이미 갖춰져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이제야 발견했던 것뿐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발견하게 해준 고마운 그것은 <간절하게 참 철없이>라는 시집이었다. 안도현 시인의 아홉번째 시집이다. 생각해보니 대학교 1학년 그의 시집 <그대에게 가고싶다>를 만난때로부터 어연 10년이 훌쩍 지나있었다.
한 일간지에서 시집의 출판소식을 들었다. 흘려보았으나 이상하게 제목만이 계속 머릿속에 구름처럼 머물렀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라니...간절하게 참 철없이라니...간절한데 왜 철이 없을까... ‘간절’과 ‘철’이라는 두 단어의 애매한 조합에서 나는 참 ‘간절’하게 생각했다. 참으로 간절하게...너무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요근래 이렇게 간절한 적이 언제였던가.
시인의 간절함은 어릴 적, 힘겨울 적 그를 지탱해주었던 ‘먹을거리’로부터 시작되고 ‘먹을거리’로 완성된다. 이 시집은 총 3부로 구성되어있지만 먹을거리의 추억으로 이루어진 2부가 단연 이 시집의 백미다.
‘어릴적 예천 외갓집에서 겨울에만 먹던 태평추라는 음식이 있었다./객지를 떠돌면서 나는 태평추를 잊지 않았으나 때로 식당에서 메밀묵무침 같은 게 나오면 머리로 떠올려보기는 했으나 삼십년이 넘도록 입에 대보지 못하였다/...(중략)...그날밤 하느님이 고맙게도 채썰어 내려보내주시는 굵은 눈발을 툭툭 잘라 태평추나 한 그릇 먹었으면 하고 간절하게, 간절하게 참 철없이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예천 태평추’ 중 일부-
‘아하, 이것이었구나...’제목의 간절함의 정체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래, 누구에게나 그런 간절함은 있다. 돈이 많건 적건, 많이 배웠든 못배웠든간에 그런 사무치는 간절함은 누구에게나 다 있을터. 삼십년넘게 못먹은 태평추의 맛이 시인은 얼마나 간절했을까. 갓 삼십년을 살아온 나에게도 그런 간절함은 있다.
책을 읽다가 덮어버린 부분도 있다. 지겹거나 졸려서는 아니었다. 갑자기 더 이상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먹먹해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지난 명절 손윗 동서가 ‘매생이’를 구해와서 부침을 해주었다. 아주 귀한 것이라며 그녀가 생색비슷한 것을 냈던 이유를 잘 알고있다. 뭍에서만 산 까닭에 매생이를 잘 모르는 우리를 꼭 먹이기 위해서라는 걸. 머리를 풀어해친 듯 헝클어진듯 매생이를 보면서 선뜻 내키지 않았으나 그녀의 마음을 생각해서 한입 베어물었다. 손윗동서의 마음은 매생이의 향으로 기억되었다. 매생이를 떠올리면 손윗 동서 생각으로 마음이 촉촉이 젖었다.
‘저 남도의 해안에서 왔다는 맑은 국물도 아니고 건더기도 아닌 푸른 것, 다만 푸르기만 한 것 바다의 자궁이 오글오글 새끼들을 낳을 때 터뜨린 양수라고 해야 하나? 숙취의 입술에 닿는 이 끈적이는 서러움의 정체를 바다의 키스라고 해야하나? 뜨거운 울음이라고 해야하나? 입에서 오장육부까지 이어지는 푸른 물줄기의 폭포여 아무리 생각해도 아, 나는 사랑의 수심을 몰랐어라’ -‘매생이국’ 전문-
매생이... 손윗동서... 백석...
손윗동서가 뜨뜻하게 지져준 매생이전을 먹지 않았더라면 이 시는 그저 훌훌 넘기는 한 페이지에 불과했을 지 모른다. 손윗동서 덕분에 매생이를 알게되었고 그 매생이 덕분에 이 시는 나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통영 바다는 두런두런 섬들을 모아 하숙을 치고 있었다. 밥주러 하루에 두 번도 가고 세 번도 가는 통통배/ 볼이 오목한 별, 눈 푹 꺼진 별들이 글썽이다 샛눈 뜨는 저녁/ 충렬사 층계에 주저앉아 여자 생각하던 평안도 출신이 있었다’ -‘백석(白石) 생각’ 전문-
3부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이 시를 보고나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마침내,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라는 생각이었다. 사실, 2부를 읽으며 난 줄곧 백석의 시를 떠올렸다. 나로 하여금 같은 시집을 몇권이나 소장하게 만든 유일한 시인. 처음으로 ‘좋은 친구’가 되고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시인, 백석. 그의 시에 등장하는 음식에 담겨있는 미학은 단지 음식만이 아니었다. 그리움과 쓸쓸함, 추억, 서러움으로 막 버무린 생생한 날것이었다. 아니면 더 이상 곰삭을 대로 곰삭은 젓갈의 맛이든지. 그 맛은 칼칼했다. 메마른 입맛을 돋우워주는.
시리게 추운 어느날, 몸과 마음이 모두 꽁꽁 얼었을 때 누군가 정성스레 끓여준 커피 한잔, 오뎅국 한 사발에 그만 가슴이 ‘훅’ 뜨거워진 적이 있는가. 가슴이 훌컥 뜨거워져 차마 먹지 못하고 그렁그렁 보았던 적이 있는지. <간절하게 참 철없이>는 꼭 그런 오뎅국같은 책이다.
시는 예전에 그랬듯, 봄날에 다시 내게 와주었다. 그 친구는 더 이상 어렵지도, 부담스럽지도 않다. 물론 예전에 비해서다. 모든 시가 다 마냥 쉽다면 그것도 서글픈 일일 것이다. 더이상은 욕심부리지 않으련다. 그 친구가 갖는 고유의 깊이를 천천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 묵을수록 좋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여 연두빛 봄날에 우린 비로소 친구가 되었다. 봄을 기다리며 <간절하게 참 철없이> 를 참 맛있게도 읽었다. 시는 참 맛있는 친구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향기로운 매생이같은 친구. 이제 다른 친구들도 만나볼 차례다. 그들이 억울해하지 않도록.
"안도현 시인 사인 받아줄까요?"
참! 이 책을 사러 서점에 들렀던 얘기를 빠뜨릴 뻔 했다. 계산대에 올려놓고 계산을 하려는 참이었는데 옆에 있던 한 중년의 여성이 이 책을 빤히 보는 것이었다. 왜 그럴까 하고 그녀를 보니 그녀도 이 책을 구입했더란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좀 있다 안도현 시인 만나려 가는데 이 책에 사인 받아줄까요?” 그러는거다. 순간, 당황했다. “사인받아서 다시 여기다 가져다 놓을게 며칠후에 찾으러 와요” 그러질않는가. 그러나 나는 당시, 시인의 친필사인보다 시인의 시가 더 고팠던지라 최대한 공손하게 그녀가 기분 상하지 않도록 사양했다. 그러나 서점을 나와 곰곰 생각해보니 그녀야말로 시의 친구가 될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어디 사시는 누구냐고 물어나볼 걸.
2008.03.06 11:27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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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게 참 철없이 -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안도현 지음,
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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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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