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터스쿨을 다룬 지난해 11월 <뉴욕타임스> 기사. 오하이오의 차터스쿨 328곳 중 반 이상이 주교육청의 평가에서 D나 F를 받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뉴욕타임스>
이명박 정부의 새 내각이 출범하기도 전부터 의료보험에서 운전면허·수돗물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을 다 민영화하고 시장 논리에 맡기겠다고 하는 위험천만한 발상들이 슬슬 새어나오더니 초장부터 노동시장의 '유연화'만이 살길이고 '경쟁'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시장만능주의 언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의료보험을 비롯한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 등 중요한 문제가 아주 많지만 오늘은 교육 분야에 한정해서 시장 논리의 문제를 논하려 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자립형 사립고 육성 방안을 보면서, 평등하고 인간적이며 건강한 교육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노력조차도 포기하려 하는가 싶어 착잡한 마음입니다.
일부 국민들은 다른 국민보다 더 평등한가요?제가 잘 아는 한국의 중학교 학생은 이번 겨울방학 내내 학원에서 밤 11시까지 공부했다고 합니다. 외국어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랍니다.
아주 똑똑하고 쾌활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이 소녀는 자기가 낸 시험 문제도 잘 설명할 줄 모르는 영어 선생님이나, 한글 철자법과 문법이 너무 많이 잘못돼서 무슨 뜻인지도 모를 시험 문제를 내는 도덕 선생님, 수업 시간 내내 그냥 참고서를 내리 읽는 것으로 수업을 대신하는 과학 선생님 등에 질려서 고등학교는 좀 좋은 데에 가고 싶다고 마음먹었고, 외국어 고등학교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다니는 동안 시험을 단 한 번만 망쳐도 외고는 못 가게 된다면서 1학년 때부터 시험 기간이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앞으로 자립형 사립고가 100개 생겨난다면 중학생들의 입시 경쟁은 얼마나 치열해질지 명약관화하다고 봅니다.
이명박 정부는 모든 학생이 자립형 사립고에 입학 신청을 할 '권리'가 있으므로 교육 기회의 평등을 저해하지 않는다고 강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식의 평등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지만 일부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는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 농장>에 나오는 평등의 개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명박 정부는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덜 평등하게 관심이 있고 부자들에게는 아주 평등하게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이 기사에서 말씀드릴 미국판 시장주의 교육의 실패 사례인 '차터스쿨(Charter School)'의 경우를 보면, 시장 원리는 돈 가진 사람들에게만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차터스쿨은 자립형 사립고보다는 개방형 자율학교와 형태상 더 유사합니다. 한국 교육부에서 공교육의 문제점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의욕적으로 추진, 지난해 첫 신입생을 모집한 개방형 자율학교의 모델이 바로 차터스쿨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개방형 자율학교는 "민간 단체가 교육 당국과 협약을 맺고 학교 운영을 위탁받아 교육 과정·예산·인사 등을 자율적으로 하면 교육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미명 아래 도입됐습니다.
미국과 굳이 비교하자면 자립형 사립고는 1년 학비가 2000만~3000만 원 정도 하는 이른바 순수 사립학교들(미국 중등학교의 4~5% 정도를 차지하는 사실상 귀족학교이지요)과 형태상 더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개방형 자율학교의 모델인 차터스쿨과 자립형 사립고 모두 시장주의를 교육에 전면 도입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합니다.
개방형 자율학교 도입 당시 한국 교육계에서 '그렇게 하면 결국 자립형 사립고 형태의 학교만 늘리게 될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던 것도 이런 점과 관련이 있습니다. 시장주의 교육의 폐해를 잘 보여준 차터스쿨을 통해, 그와 마찬가지로 시장 논리를 교육에 전면 도입하려는 자립형 사립고의 위험성을 짚어볼 필요가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교육 민영화의 상징 '차터스쿨', 돈 많은 사람들에게만 유리했다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선 자본주의와 사회 이론에 대해서 조금 언급하겠습니다. ('사회 이론'이라면 하품이 나오는 분들은 한숨 주무세요. 끝나면 깨워드리지요.) 민영화를 부르짖는 이명박 정부는 어린이들의 교육마저도 자본주의 시장의 뜻과 변덕과 기획에 맡기려는 모양입니다. 미국의 차터스쿨들도 같은 의도로 시작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차터스쿨이란 정부 지원금을 받아 사적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학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미디어에 실린 기사들을 보면, 어떤 기사는 차터스쿨이 '공립학교'라 하고 어떤 글은 '사립학교'라고 하던데 사실상 공사립의 구분이 모호한 학교입니다.) 어떤 주에서는 정부 지원금이 학교로 직접 전달되고, 어떤 주에서는 학부모에게 수업료 증서를 지급하여 아무데나 원하는 학교에 가서 증서를 내고 등록하게 하기도 합니다.
'교육개혁센터(The Center for Education Reform)'라고 하는 민영 기관은 차터스쿨에 대해 "교사·학부모 및 시민사회 지도자들이 기획한 혁신적인 공립학교로서, 선택권을 보장하며 교육 결과에 책임을 지게 할 수 있고, 기존의 공립학교와 달리 각종 규제와 법률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고 적극 옹호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념형적인(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자본주의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자유로운 선택을 하며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고 오직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원리에 의해서만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돌아간다는 주장입니다. "결과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면 장사가 안 되어서 가게가 망하는 것처럼 학교도 제대로 못하면 망해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차터스쿨은 교육 과정, 교사 및 직원 임용, 학습 일자, 재원 운용 등에서 주정부의 교육 관련 규정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학교 운영상의 편의와 효율을 위해 어떠한 새로운 방식이든 도입할 자유가 있습니다. 공립학교의 경우 이와 달리 무엇을 하든 정부가 정한 규정 안에서 움직여야 하며 교육 결과에 대한 제재가 없습니다.
차터스쿨=효율·혁신·개방?... 현실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