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하게 텅 빈 풍경과 고운 노을 속에 숨어든 봄

[사진] 석양의 하늘공원과 은밀히 찾아온 봄

등록 2008.03.07 16:13수정 2008.03.0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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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늘공원 마른 갈대꽃 사이로 지는 태양

하늘공원 마른 갈대꽃 사이로 지는 태양 ⓒ 이승철

하늘공원 마른 갈대꽃 사이로 지는 태양 ⓒ 이승철

 

“아! 저 노을, 너무 쓸쓸하고 황량하네.”

 

하늘공원에 들어서자마자 아내의 첫마디는 쓸쓸하다는 것이었다. 엊그제 서울 목동에 사는 친지의 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하늘공원은 정말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성산대교를 건너 월드컵공원에 이르자 아내가 갑자기 하늘공원에 한 번 올라가 보자는 것이었다. 해는 많이 기울어 한강 하류 하늘의 두 뼘쯤에 걸려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찾은 난지도 하늘공원은 지난 가을 동안 화려했던 억새도 대부분 베어내어 텅 빈 풍경이었다.

 

더구나 아직도 싸늘한 기온에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우리부부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유로 입구 강변북로 도로변에는 앙상한 모습으로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서 있는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이 여전히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이었다.

 

언덕길을 올라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왼편 언덕 위에 있는 억새를 엮어 지붕을 얹은 초가 형태 쉼터 정자들도 텅 비어 있었다. 오른편 이정표 앞에 있는, 나뭇가지에 앉아 두 손을 하늘로 쳐든 남녀 두 명의 어린이 상이 앙증스럽고 귀엽다.

 

a  억새를 베어내 텅 빈 하늘공원 풍경

억새를 베어내 텅 빈 하늘공원 풍경 ⓒ 이승철

억새를 베어내 텅 빈 하늘공원 풍경 ⓒ 이승철
a  베어내 산책로변에 쌓아 놓은 억새

베어내 산책로변에 쌓아 놓은 억새 ⓒ 이승철

베어내 산책로변에 쌓아 놓은 억새 ⓒ 이승철

 

“우선 저 앞쪽으로 가볼까? 한강 하류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내가 아내를 안내했다. 나는 전에도 몇 번 와보았었기 때문에 이곳 지리에 익숙한 편이었다. 공원 한 복판을 가로질러 가는 양편에는 산책로 길을 따라 뒤덮였던, 지난 가을의 그 화려했던 억새들을 모두 베어내 곳곳에 그냥 쌓아 놓아 쓸쓸해 보였다.

 

“공원이 완전히 텅 빈 느낌이네. 억새들을 모두 베어내서 그런가?”

 

그럴 것이다. 가을에 왔을 때는 하얀 꽃으로 뒤덮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고 있었던가. 그런데 그 억새들이 모두 베어지고 바닥 흙이 드러난 모습은 텅 비고 마냥 쓸쓸하기만 했던 것이다.

 

“히야! 저 노을 좀 봐! 너무 아름답다, 그치 여보!”

 

공원을 가로질러 맞은편 산책로에 이르자 앞으로 뛰어나간 아내가 갑자기 감탄사를 터뜨린다.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한강 위로 비치는 태양빛이 은빛으로 출렁이며 반짝이는 풍경과 그 사이 더욱 기울어진 석양풍경이 아내를 감동시킨 것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풍경도 잠깐이었다. 싸늘하게 품속을 파고드는 강바람을 피해 다시 공원 안 길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난지 골프장이 있는 쪽은 갈대와 억새들이 더러 남아 있었다. 겨우내 눈비를 맞아 색도 바래고 시들해진 갈대꽃과 억새꽃들이 초봄의 싸늘한 바람에 휩쓸리고 있는 모습도 역시 쓸쓸한 풍경이었다.

 

a  석양빛에 물든 억새숲

석양빛에 물든 억새숲 ⓒ 이승철

석양빛에 물든 억새숲 ⓒ 이승철
a  자유로 입구 강변북로변의 나목풍경

자유로 입구 강변북로변의 나목풍경 ⓒ 이승철

자유로 입구 강변북로변의 나목풍경 ⓒ 이승철

 

“저쪽 골프장으로 쓰였던 곳을 시민공원으로 개방한다는 것 같던데.”

 

아내도 신문보도를 보았던 모양이었다. 골프를 좋아하지도 않고 취미도 없는 아내는 산을 깎아 골프장을 만들며 자연을 훼손하는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난지 공원 일부를 골프장으로 사용하는 것도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난지도 하늘공원이 드디어 모두 시민들 품으로 돌아오게 된 셈이지.”

 

건너편의 골프장 지역을 바라보며 우리부부는 똑같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쪽의 순환 산책로는 양쪽이 숲으로 가려져 있었다.

 

“이곳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그만이겠는 걸.”

 

유난히 이런 숲속 길을 좋아하는 아내다. 그러니 이런 호젓한 숲속 산책로를 걸으며 어찌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오늘은 늙은 연인들이 멋진 산책로를 독점한 셈이네. 허허허.”

 

아내의 마음을 알고 있는 내가 맞장구를 쳐주었다.

 

a  하늘공원에서 바라본 한강의 석양

하늘공원에서 바라본 한강의 석양 ⓒ 이승철

하늘공원에서 바라본 한강의 석양 ⓒ 이승철
a  하늘공원 입구 초가정자형 쉼터

하늘공원 입구 초가정자형 쉼터 ⓒ 이승철

하늘공원 입구 초가정자형 쉼터 ⓒ 이승철
a  텅 빈 공원 위로 지는 태양과 노을

텅 빈 공원 위로 지는 태양과 노을 ⓒ 이승철

텅 빈 공원 위로 지는 태양과 노을 ⓒ 이승철

 

“정말 그러네, 그럼 오늘은 연인들처럼 산책을 해볼까?”

 

아내가 내게 다가와 다정하게 팔짱을 낀다. 싸늘하고 쓸쓸한 공원 산책로를 늙은 부부가 단둘이 팔짱을 끼고 걷는 기분이 매우 상큼하다. 아내나 나나 모처럼 젊은 시절의 한 때가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 잠깐 앉아서 쉴까?”

 

아내가 잠깐 앉아서 쉬자고 한다. 산책로 숲속에 몇 개의 벤치가 놓여 있었다. 한 시간여를 걸었으니 다리가 아팠을 것이다.

 

“어! 저기 낙엽 사이로 파란 싹이 보이는데.”

 

벤치에 앉자마자 아내가 일어나 나무 밑으로 다가간다. 약간 경사진 남향의 낙엽 사이로 콩알만큼 작고 앙증맞은 새싹 몇 개가 빠꼼히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새싹들은 분명 겨우살이풀은 아니었다.

 

“정말 새싹들이네, 아직 개나리도 피지 않았는데 얘들이 먼저 봄소식을 알리네.“

 

아내가 신기한 듯 주변 낙엽들을 조금 헤치자 역시 작은 새싹들이 보인다. 남향의 낙엽 속은 상대적으로 따뜻하여 엊그제 내린 봄눈을 무릅쓰고 새싹들이 피어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난겨울 유난스레 심했던 늦추위와 폭설로 내린 봄눈 속에서도 봄은 은밀하게 우리들 곁에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a  추위와 폭설을 뚫고 은밀하게 찾아든 봄

추위와 폭설을 뚫고 은밀하게 찾아든 봄 ⓒ 이승철

추위와 폭설을 뚫고 은밀하게 찾아든 봄 ⓒ 이승철
a  하늘공원 입구 소년과 소녀상

하늘공원 입구 소년과 소녀상 ⓒ 이승철

하늘공원 입구 소년과 소녀상 ⓒ 이승철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하늘공원은 특별한 행사가 없는 평상시에는 야간개방을 하지 않는 곳이었다. 해는 어느새 하늘공원 언덕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저 노을 좀 봐? 저 갈대꽃 사이로 지는 노을!”

 

아내가 걷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하는 말이었다. 아내를 따라 나도 뒤돌아섰다. 아름다운 노을이었다. 언덕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태양과 하늘의 노을이 정말 고왔다. 더구나 베어내지 않고 남겨 놓은 초라한 갈대꽃 사이로 붉게 지고 있는 태양과 그 위의 하늘에 피워놓은 붉은 노을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이제 그만 가자구요. 어두워지려고 하는데.”

 

노을과 갈대를 카메라로 잡기에 바쁜 나를 아내가 재촉하고 있었다. 해가 지자 텅 빈 하늘공원에 서서히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3.07 16:13ⓒ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승철 #하늘공원 #억새 #새싹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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