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지? 갈치회가 천하일미라고

[맛객의 맛있는 이야기] 갓 잡아온 갈치를 회 쳐서 먹는 그 맛이란...

등록 2008.03.07 19:00수정 2008.03.0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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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싱한 갈치가 가득 담겨져 있다
싱싱한 갈치가 가득 담겨져 있다맛객

바다낚시를 좋아한 친구의 먹거리 이야기다. 생선회는 뭐니뭐니해도 갈치회가 일미란다. 바다에서 낚아 올린 갈치를 그 자리에서 회를 쳐 먹으면 천하일미라는 것이다. 갈치는 성질이 사납고 급하기 때문에 낚아 올리면 곧바로 죽는다. 회 치는 일을 서둘러야 하고, 고추냉이간장이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입안이 달기만 하다는 이야기다.(최승범 저 <풍미기행>에서)


지난달 16일 방송촬영차 제주도에 가게 되었다. 그날 밤. 성읍민속마을에 있는 흑돼지 전문점에서의 일이다. 주인과 조깐술(조 껍데기 깐 술)을 나누면서 고등어회 자랑을 했다. 제주도에서 먹는 고등어회는 육지에서 먹는 것과는 육질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고.(제주도니까 맛있는 활고등어초밥) 그러자 그것은 진짜 고등어 맛이 아니라면서 맛객의 기를 죽인다.

새벽에 항에 나가면 고등어배가 들어오는데, 선원들이 먹으려고 꼬리를 잘라 피를 뺀 고등어가 진짜 으뜸가는 맛이라는 것이다. 오~ 그런 맛이 있었단 말이지. 내 꼭 그 맛을 보고야 말리.

 성산항에서 멸치를 배에서 내리고 있다
성산항에서 멸치를 배에서 내리고 있다맛객

다음날 새벽 5시에 숙소를 나서려는데 하늘이 도와주질 않는다. 갑자기 웬 비람? 나도 옥PD도 난감 그 자체였다. 이깟 비야 맞으면 그만이지만 카메라가 문제였다. 다시 2층 식당으로 올라가 해녀에게 우산을 빌리려는데 그 흔한 우산하나 없는 게 아닌가? 할 수 없이 다시 현관으로 내려오는데 어라? 그새 비가 그쳐가고 있었다. 잘됐다 싶어 성산항으로 출발~.

아직 동이 트려면 멀었지만 성산항은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밤새 조업하고 돌아온 멸치잡이 배에서 통통하게 살이 오른 멸치를 상자로 옮기는 작업들로 선원들의 움짐임은 분주했다. 조심스럽게 고등어 잡는 배는 어딨냐고 물었다. 그러자 대뜸 버럭 소리를 지른다.

가!!!!


(깜딱이야~) 선원들이야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조업을 해야 하기에 예민함은 알고 있었지만 순간 사람 무안하게 만든다. 그래도 모든 어부들이 다 똑같지는 않는 법. 다른 선원이 수협 사무실에 가서 물어보라고 귀뜸해 준다. 수협 직원은 고등어 조업 나간 배는 없을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갈치배는 멸치배가 작업 끝나면 곧 들어온다고 덧붙인다. 아… 갑자기 갈치회가 땡긴다.

 갈치를 배에서 내리고 있다
갈치를 배에서 내리고 있다맛객

일이 순조롭게 풀리려나 보다. 수협직원이 바로 옆 사람을 가리키며 갈치배 선장이라고 소개한다. 이런 횡재가. 더군다나 대화중에 옥PD와 선장은 동향이라는 게 밝혀졌으니 이때부턴 일사천리로 풀려 나갔다. 선장님의 허락 하에 막 조업을 마치고 들어온 갈치배에 올라 촬영도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갈치회를 맛봐야 맛객다운 거 아니겠는가? 때마침 선장님의 지시가 나를 붕 뜨게 만든다.


“거 갈치 좋은 걸로 몇 마리 드려라.”
“네!”

 제주 은갈치가 나무상자에 담겨져 있다. 지난달 16일 기준으로 경매가는 10kg 한상자 기준으로 15만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제주 은갈치가 나무상자에 담겨져 있다. 지난달 16일 기준으로 경매가는 10kg 한상자 기준으로 15만원선에 거래되고 있다맛객

 선장의 지시로 구이와 횟감용 갈치 세마리를 챙겨주고 있다
선장의 지시로 구이와 횟감용 갈치 세마리를 챙겨주고 있다맛객

 빛이 날 정도로 까만 눈동자는 신선도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빛이 날 정도로 까만 눈동자는 신선도의 상징이나 다름없다맛객

이날 조업해온 갈치만 해도 10kg짜리 상자로 400상자나 된다. 그러나 갈치금이 예전만 못해져 큰 재미는 못 보고 있다. 한때 10kg에 40만원을 호가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15만원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가장 큰 원인은 수입 냉동 갈치가 대량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유가상승으로 인해 순수익은 더욱 적어진 셈이다.

해녀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주방은 활기가 넘친다. 양해를 구하고 주방 한쪽을 빌렸다. 비늘을 벗기고 포를 떴다. 나머지 한쪽은 해녀가 포를 뜬 다음 물로 씻어 버리는 게 아닌가? 난 처음부터 회를 물에 대지 않을 요량으로 포를 떳기에 바로 먹기좋게 썰었다. 그걸 본 해녀들은 물에도 안 씻는다고 한마디씩 한다. 아직 그분들은 회가 물에 닿는 순간 맛이 30%는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갈치회, 생쌀 씹는 고소함과 향이 느껴진다
갈치회, 생쌀 씹는 고소함과 향이 느껴진다맛객

맛의 차이를 느껴보기 위해 접시에다 물에 씻은 갈치회와 포를 떠 바로 썬 회를 구분해 담았다. 갈치회에 고치냉이 양념을 올린 다음 간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었다. 음… 갈치회에 향이 있구나. 첫맛은 담백하고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다. 참치처럼 지방이 풍부해 나는 고소함과는 뭔가 다른 고소함이다.

그대 혹, 생쌀을 꼭꼭 씹어 먹은 적 있는가? 마치 그 향과 고소함이다. 쌀을 오래오래 씹을 때의 그 고소함 말이다.

 윗쪽은 물에 씻은 갈치회 아래는 바로 썬 갈치회. 맛은 아랫쪽 갈치회의 압승
윗쪽은 물에 씻은 갈치회 아래는 바로 썬 갈치회. 맛은 아랫쪽 갈치회의 압승맛객

초장에 찍는 갈치회의 맛은 어떨까? 예상대로 초장맛이 우세해 갈치의 향과 고소함이 모두 가리고 만다. 이 정도의 특색없는 맛이라면 굳이 갈치회가 아니어도 되지 않겠는가. 촬영을 마치곤 전날 이곳에서 합석했던 남녀 한쌍도 함께 자리했다. 새벽에 횟감을 가지러 간다는 말을 듣고 오늘 아침 일찍부터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난생 처음으로 갈치회를 맛본다는 그들은 운이 좋은 셈이다. 그 어느 횟집에서도 못 먹어 볼 갈치회를 맛보고 있으니까. 아마 제주도 그 어느 식당엘 가도 이보다 더 신선한 갈치회는 맛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아, 접시에서 먼저 동난 건 물에 씻지 않고 바로 썰었던 갈치회였다.

어떤 사람이 맘에 들면 자꾸 생각나기 마련이다. 음식 역시 그렇다. 갈치회의 여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바다낚시를 좋아한 그분의 말마따나 갈치회는 일미였다.

 갈치 소금구이도 잊혀지지 않는 맛이다
갈치 소금구이도 잊혀지지 않는 맛이다맛객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갈치회 #고등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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