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달라졌어도 옛 맛이 자꾸 생각나네

추억의 시래기밥을 지어먹으며...

등록 2008.03.08 12:16수정 2008.03.0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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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만에 지어 먹어본 시래기밥. 예전 생각을 하며 맛있게 먹었다.
오랫만에 지어 먹어본 시래기밥. 예전 생각을 하며 맛있게 먹었다.전갑남

"여보, 그때도 이렇게 맛이 있었을까?"


아내가 자기가 끓인 토장국 간을 본다. 고개를 끄떡인다. 마음에 드는지 웃음꽃이 핀다. 그리고는 콧노래까지 흥얼흥얼. 아내 표정만으로도 맛난 저녁이 될 것 같다. 식탁 분위기가 확 살아난다.

따지고 보니 별로 값이 나가는 음식도 아니다. 음식재료는 무시래기가 주인공이다. 시래기로 된장국에 시래기밥을 지었다. 거기다 반찬으로는 김장김치, 순무김치, 갈치속젓이 전부이다. 

어렸을 때 가끔 보았던 어머니의 밥상을 재연해놓은 듯싶다. 궁핍한 시절, 먹을거리가 부족해 시래기로 양식을 늘려 먹었던 눈물겨운 추억의 음식이 별식으로 등장한 셈이다. 예전 생각이 많이 난다.

시래기 음식도 예전엔 참 귀한 음식이었다

며칠 전이다. 평소 살갑게 지내는 친구랑 부부모임을 가졌다. 오랜만에 맛나 회포나 풀 셈으로 맛난 고깃집을 찾았다. 소주나 한 잔 할 요량이었다. 생삼겹살에 싱싱한 야채가 푸짐하게 나왔다.


우리가 찾은 음식점은 음식이 깔끔하였다. 밑반찬 가지 수도 많지 않았다.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이 들어가 맛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좀 허름하지만 꽤 많은 손님들로 붐볐다.

어떤 음식점은 가짓수만 많았지 손이 안 가는 음식이 더러 있다. 구색만 갖췄다고나 할까. 이런 경우, 낭비도 그런 낭비가 없다. 대신 적당한 가짓수에 정갈하게 차린 음식을 싹싹 비우고 나오면 푸짐하게 먹은 느낌이다.


그날 음식점은 밑반찬으로 묵은 나물 종류가 많았다. 토란줄기, 고구마줄기, 아주까리잎 등을 데친 나물에다 시래기나물이 눈에 띄었다.

친구는 여러 나물 중 시래기나물에 연신 손이 갔다. 한 접시를 뚝딱 비우고 한 접시를 또 달라고 했다.

"이 사람, 고깃집에 와서 고기보다 시래기나물을 더 먹네!"
"난 말이야, 가난한 시절 먹었던 음식이 왜 그리 생각나는지 몰라!"
"시래기밥은 먹어 보았어?"
"그럼! 그땐 시래기밥은 양반이었지! 시래기죽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으니까!"

어떤 이는 예전 지겹게 먹었던 음식이 지금에 와서는 싫다고 한다. 꽁보리밥을 하도 먹어서 보리 섞인 밥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끼니로 고구마를 너무 먹어 고구마는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이도 있다. 신물 나게 먹은 구황식품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친구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맛도 모르고 먹었던 추억의 음식이 지금은 별미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내가 클 때만 해도 하얀 쌀밥에 기름진 음식을 먹고 사는 집이 많지 않았다. 식량이 귀하던 시절, 맛난 거 맛나지 않은 거 가리지 않고 먹지 않았던가! 배부르면 장땡이었던 것이다.

 지난 가을, 아내가 지푸라기로 시래기를 야무지게 엮었다. 능숙한 솜씨를 발휘하였다.
지난 가을, 아내가 지푸라기로 시래기를 야무지게 엮었다. 능숙한 솜씨를 발휘하였다.전갑남

 처마 끝에 매단 시래기는 우리 집 겨울철 먹을거리로 소중하게 쓰이고, 여러 집과 나눠먹고 있다.
처마 끝에 매단 시래기는 우리 집 겨울철 먹을거리로 소중하게 쓰이고, 여러 집과 나눠먹고 있다.전갑남

시래기! 친구가 예전 생각을 하며 달게 먹는 시래기도 사실 따지고 보면 귀한 식품이었다. 나물이 귀한 겨울 데쳐서 무쳐먹고, 토장국을 끓여 속을 달래고! 또 곡식을 아끼려고 죽을 끓여먹고, 밥 지을 때 섞어 짓지 않았던가!

세상이 많이 달라졌어도 옛맛을 잊지 못하는 것은 뭘까? 아마 어려웠던 시절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시래기 엮어 겨울 채소를 준비하다

 지난 가을 우리 채마밭에서 자란 무. 김장 재료로 쓰고, 잎은 죄다 시래기로 엮었다.
지난 가을 우리 채마밭에서 자란 무. 김장 재료로 쓰고, 잎은 죄다 시래기로 엮었다.전갑남
지난 가을, 우리는 김장 무를 많이 심었다. 많은 양이라 나눠먹고, 시래기는 허실 없이 고스란히 엮었다. 서까래 밑에는 시래기 엮은 게 주렁주렁 걸렸다.

시래기를 엮는 날, 아내는 유감없이 솜씨를 발휘하였다. 나도 따라 엮어보았지만 야무지게 엮어지지가 않았다. 내가 엮은 것을 걸어놓자 빙그르 돌아 풀릴 것만 같았다. 나는 신통방통 잘 엮는 아내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신, 시래기 엮어보았나 봐?"
"시래기만 엮었나? 마늘도 이렇게 엮었죠! 아버지 일하실 때 옆에서 보며 배운 거예요."

아내는 눈썰미가 좋아서일까? 지푸라기를 이용하여 딴딴하게 시래기 엮는 솜씨가 능숙하였다. 나도 한 수 배운 셈이었다. 시래기는 삶아 말리기도 하지만, 푸성귀로 엮어두면 영양소도 파괴되지 않아 더 좋다고 한다.

말려놓은 시래기는 겨우내 우리 집 소중한 먹을거리였다. 채소가 귀한 겨울철, 시래기만한 좋은 식품이 있을까 싶다. 더구나 시래기는 비타민과 철분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겨울철 비타민과 무기질을 공급해주는 대표적인 식품이다. 식이섬유소가 많아 대장의 연동운동을 도와주어 변비에 탁월하다고 한다.

소박한 시래기 음식... 참 괜찮네!

아내는 친구 내외랑 예전 먹었던 음식이야기를 나눈 생각이 나서 오늘 시래기밥을 만들어본 것 같다. 토장국도 함께 끓이고.

겨우내 찬 바람에 꼬득꼬득 말린 시래기는 푹 삶아야 한다. 적당히 데쳐서는 질겨서 맛이 떨어진다. 삶은 시래기는 하루 이틀 물에 담가놓고 껍질을 벗기면 부드러워진다.

 들깨를 갈아 넣어 끓인 시래기된장국이다. 그 맛이 구수하였다.
들깨를 갈아 넣어 끓인 시래기된장국이다. 그 맛이 구수하였다.전갑남

시래기토장국을 끓일 때 들깨를 갈아 넣으면 국물이 걸쭉해진다. 잔 멸치는 화학조미료 대신 쓴다. 처음 선을 보인 시래기밥은 어떻게 하는 걸까? 평소 해 먹는 밥 위에 시래기를 깨끗하게 씻어 올려서 밥을 지으면 끝이다. 너무 간단하다. 양념장만 만들어 비며 먹으면 된다. 양념장은 집 간장에 파, 마늘을 다진 것을 넣고, 참기름에 고춧가루 풀어 넣는다.

 밥을 안칠 때 깨끗이 손질한 시래기를 넣어 끓이면 추억의 시래기밥이 된다.
밥을 안칠 때 깨끗이 손질한 시래기를 넣어 끓이면 추억의 시래기밥이 된다.전갑남

고슬고슬하게 지은 시래기밥에 아내가 계란프라이를 하나 올려놓는다. 양념장을 끼얹어 쓱쓱 비비니 군침이 돈다. 아내도 잽싸게 비빈다. 한입을 먹고, 내 얼굴을 살핀다.

"된장국 맛이 괜찮죠?"
"구수해서 아주 좋아! 최고야!"
"시래기밥맛은 어때요?"
"무덤덤해도 씹히는 맛이 있네. 양념 맛은 고소하고!"

시래기 된장국에서 구수함이 풀풀 풍겨난다. 시래기밥에 참기름이 들어간 간장을 넣어 쓱싹 비며 먹는 맛이 별미이다. 아내는 달래장으로 비며 먹으면 봄 내음을 느낄 수 있을 거라며 또 한 번 해먹자고 한다.

소박한 밥상이지만, 예전 생각을 하며 지어먹은 시래기음식으로 참 즐거운 저녁이 되었다.
#시래기 #시래기밥 #시리개국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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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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