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지어 먹어본 시래기밥. 예전 생각을 하며 맛있게 먹었다.
전갑남
"여보, 그때도 이렇게 맛이 있었을까?"
아내가 자기가 끓인 토장국 간을 본다. 고개를 끄떡인다. 마음에 드는지 웃음꽃이 핀다. 그리고는 콧노래까지 흥얼흥얼. 아내 표정만으로도 맛난 저녁이 될 것 같다. 식탁 분위기가 확 살아난다.
따지고 보니 별로 값이 나가는 음식도 아니다. 음식재료는 무시래기가 주인공이다. 시래기로 된장국에 시래기밥을 지었다. 거기다 반찬으로는 김장김치, 순무김치, 갈치속젓이 전부이다.
어렸을 때 가끔 보았던 어머니의 밥상을 재연해놓은 듯싶다. 궁핍한 시절, 먹을거리가 부족해 시래기로 양식을 늘려 먹었던 눈물겨운 추억의 음식이 별식으로 등장한 셈이다. 예전 생각이 많이 난다.
시래기 음식도 예전엔 참 귀한 음식이었다 며칠 전이다. 평소 살갑게 지내는 친구랑 부부모임을 가졌다. 오랜만에 맛나 회포나 풀 셈으로 맛난 고깃집을 찾았다. 소주나 한 잔 할 요량이었다. 생삼겹살에 싱싱한 야채가 푸짐하게 나왔다.
우리가 찾은 음식점은 음식이 깔끔하였다. 밑반찬 가지 수도 많지 않았다.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이 들어가 맛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좀 허름하지만 꽤 많은 손님들로 붐볐다.
어떤 음식점은 가짓수만 많았지 손이 안 가는 음식이 더러 있다. 구색만 갖췄다고나 할까. 이런 경우, 낭비도 그런 낭비가 없다. 대신 적당한 가짓수에 정갈하게 차린 음식을 싹싹 비우고 나오면 푸짐하게 먹은 느낌이다.
그날 음식점은 밑반찬으로 묵은 나물 종류가 많았다. 토란줄기, 고구마줄기, 아주까리잎 등을 데친 나물에다 시래기나물이 눈에 띄었다.
친구는 여러 나물 중 시래기나물에 연신 손이 갔다. 한 접시를 뚝딱 비우고 한 접시를 또 달라고 했다.
"이 사람, 고깃집에 와서 고기보다 시래기나물을 더 먹네!" "난 말이야, 가난한 시절 먹었던 음식이 왜 그리 생각나는지 몰라!" "시래기밥은 먹어 보았어?" "그럼! 그땐 시래기밥은 양반이었지! 시래기죽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으니까!" 어떤 이는 예전 지겹게 먹었던 음식이 지금에 와서는 싫다고 한다. 꽁보리밥을 하도 먹어서 보리 섞인 밥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끼니로 고구마를 너무 먹어 고구마는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이도 있다. 신물 나게 먹은 구황식품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친구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맛도 모르고 먹었던 추억의 음식이 지금은 별미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내가 클 때만 해도 하얀 쌀밥에 기름진 음식을 먹고 사는 집이 많지 않았다. 식량이 귀하던 시절, 맛난 거 맛나지 않은 거 가리지 않고 먹지 않았던가! 배부르면 장땡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