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미국 뉴욕에서 성매매 파문에 휩싸인 엘리엇 스피처 뉴욕주지사가 사임을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래서 궁금했다. 비밀스럽고 은밀한 성매매가 어떻게 적발됐을까. 게다가 검찰총장 때 스스로 성매매 조직을 단속까지 벌였던 그였다. 그만큼 철저히 자신의 신분을 숨겼을 것이고, 안전장치도 확실히 해뒀을 것이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실제로 스피처 주지사는 철두철미하게 일을 진행했다. 돈 거래는 철저히 현금이었다. 호텔방 계약부터 그 어디에도 '스피처'라는 이름이 나올 만한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수사당국은 어떻게 알았을까.
AP통신 등을 보면, 스피처의 이중행각이 드러나게 된 결정적인 단서는 수상한 자금 거래였다.
미 금융기관은 이상한 자금 거래에 대해 미 국세청(IRS)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돼 있다. 미 국세청은 수시로 올라오는 금융기관들의 자금거래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고, 스피처 주지사의 거래 내용도 포함됐다. 그런데 스피처가 수차례에 걸쳐 거액의 현금 거래를 했으며, 자금 출처와 돈을 보내는 쪽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하지 못한 것.
IRS는 이 점에 의문을 품었다. 조사 결과, 콜걸 클럽에 돈을 보낸 회사도 사실상 이름만 있는 유령회사로 밝혀졌다. 이어 미 연방수사국(FBI) 등 수사당국의 집중적인 자금흐름 추적이 진행됐고, 감춰질 수도 있었던 '스피처의 이중생활'이 드러나게 됐다.
이번 사건은 은행 등 금융기관의 수상한 금융거래 통보가 해결의 열쇠였다. 또 국세청 등 감독기관의 철저한 조사와 사정기관의 엄정한 법 집행이 뒤따랐다.
수천억원 이상한 돈 거래 나와도, 감독당국은 팔짱만이제 눈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멀리 갈 것도 없다. 삼성비자금 의혹 사건을 둘러싼 금융기관과 금융감독 당국의 처신은 미국과 사뭇 다르다.
작년 11월 이후 5개월여 동안 검찰과 특별검사팀은 국내 대형 시중은행과 증권사에 3800여개에 달하는 비자금 차명 의심 계좌가 개설된 사실을 밝혀냈다. 신용이 생명인 금융기관이 스스로 불법적인 차명계좌 개설에 동의했고, 투명하지 못한 돈의 창구 역할을 한 것이다.
특히 이들 의심 계좌를 통해 수천억원에 달하는 수상한 돈의 흐름이 사정당국에 의해 파악됐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이나 국세청 등 어느 금융감독당국도 적극적인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 이들 기관들은 법원의 영장이 없어도 자금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결국 지난 2월 21일 특별검사가 금감원에서 수사협조를 요청할 정도였다. 이 역시 곧바로 검사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일주일이 지난 후인 3월3일에 금융감독원은 삼성증권에 대한 특별검사를 나선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정도다. 특검은 국세청에 비자금 의혹을 받고 있는 삼성 임원의 재산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삼성특검법은 직무 수행의 필요한 경우에 관계기관에 자료 제출 등을 요청할수 있다고 해놨다. 또 이같은 요청을 받은 관계기관은 반드시 응해야 한다고까지 규정했다.
하지만 국세청은 납세자 정보보호 방침에 어긋난다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납세자의 정보보호 역시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법적인 자금 축척을 통한 이상한 재산 형성 과정을 추적하는 것은 국세청의 임무이기도 하다. 심지어 국가 사법기관이 법에 따라 요청한 자료까지 국세청이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스피처 주지사의 사건이 단순한 섹스 스캔들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뢰와 투명한 금융시스템과 철저한 사후 감독기능과 사법당국의 엄정한 법 집행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