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인터넷 상에서 논쟁을 벌이다가 말문이 막히거나 '우기기 작전'에 들어갈 때 내세우는 표현 중 하나는 바로 '좌빨'이다. '좌익 빨갱이'라는 뜻이다. '좌익'을 치떨리는 범죄자나 간첩 정도로 생각한다는 근거다. 그네들이 상대방에게 할 수 있는 최고 수위의 욕이자 비판이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좌빨'이라는 말을 내뱉음으로써 오히려 본인의 오해(혹은 무식)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과연 아는지 모르는지 궁금하다. '좌익'과 '우익'의 개념을 상식적으로 잘 잡고 있는 사람이라면, '좌빨'이라는 말을 내뱉는 사람에게서 더이상 논쟁을 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어이없게도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과 같은 신자유주의 정권에 '좌빨'이라는 표현을 내세우는 촌극은, 더이상 '촌극'이라고만 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좌익'과 '우익'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잡지 못한 일부 어르신들이나 어린 학생들을 호도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네들이 늘상 내세우며 욕의 표현으로 삼는 '좌빨'은, 우리 근현대사가 얼마나 왜곡돼 국민들에게 전달됐는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다. 민족의 비극 6·25 전쟁의 상흔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악용한 집단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어떻게 국민들의 의식 속에 뿌리내렸는지도 잘 판단할 수 있는 근거다.
그렇다면, 대관절 그 '좌익' 혹은 '좌파'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념에 따라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의 역사로 인해 '좌파'라면 저 '좌빨'이라는 말에서 드러났듯이 북한의 공산주의, 혹은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로 협소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상식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논리에는 코웃음칠 뿐이다. 번번이 '좌빨' 운운하며 논쟁의 격을 떨어트리는 사람들은, <더 레프트 The Left >의 저자 제프 일리의 한마디를 새겨듣기를 바란다.
"좌파의 역사는 인간의 잠재력을 제한하고 왜곡하며, 공격하고 억압하고, 때로는 심지어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하는 불평등의 체제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란다면 한마디 더 첨부하도록 하겠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는지, 이념의 논쟁 잣대 자체가 얼마나 뒤쳐졌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한마디다. 장석준 전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의 서평 중 일부다.
"단순히 유럽 좌파의 여러 흐름들이 역사적 맥락과 상관없이 동시에 한국 사회에 쏟아져 들어온 게 문제가 아니다. 이념의 수용사가 사태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지금 한국 자본주의에는 유럽 자본주의의 여러 시대가 서로 공존하며 중첩돼 있다는 것. 19세기말의 사회민주주의, 1956년의 신좌파, 최근의 신사회운동 등이 맥락없이 수용된 게 문제가 아니라 실제 우리 자신이 19세기말의 시간대, 1956년의 시간대 그리고 신사회운동 등장의 시간대를 동시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
아직도 '좌파'가, '북한을 추종하며 퍼주는 무리' 쯤으로 보인다면 제프 일리의 다음과 같은 한마디를 더 참고해보도록 하자.
"아울러 좌파는 인민의 지배를 요구하면서 다른 권력, 즉 옛 체제나 사회경제적 지배계급, 또는 단순히 부패한 기존 통치집단을 끌어내리려고 했다. 단지 제한적이고 억압적인 정치체제만이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구조 역시 인민주권을 부인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좌파의 전통에서 사회정의라는 모종의 관념은 사실 민주주의의 추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양극화 현상 속에서 자녀의 등록금이 폭등하고 일자리가 없어 비정규직도 감지덕지인 시대다. 그 양극화 현상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극단적인 정글자본주의를 취급하면서 "돈 못버는 사람은 아예 사람 취급도 못받을" 시대를 만들어나갈 대통령을 당선시켰다는 아이러니를 연출한 대한민국.
그리고 본인의 처지는 분명히 서민인데 부자들을 위한 세금 감면이나 규제 완화를 본인들을 위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한마디가 아닐까.
대한민국에서의 '좌파'의 왜곡, 시작은 스탈린주의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면, 일부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극도로 미워하는 '좌빨'은 다양한 좌파의 스펙트럼 중에서, 아주 극단적인 일부를 가리키는 말에 불과하다. 그조차도, '좌파'를 본질적으로 왜곡시킨 원흉에서 비롯된 개념을 한반도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극단적인 세력 중 일부라는 의미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 왜곡의 시작이 스탈린주의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스탈린은 일명 '일국 사회주의'라는 것을 주창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의 국제연대와 활동역량까지 모두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국가의 이익에 종속시켜 극단적인 국가주의의 색채를 연출시켰다.
좌파가 더이상 좌파가 아니게 됐고, 그 이념의 왜곡이 수십년 넘게 세계를 주름잡아온 이유, 그리고 좁게는 대한민국에서의 '좌파'에 대한 총체적 오해의 첫 시작으로 자리잡는다.
'일국 사회주의'란 쉽게 말해, "잘 키운 소련 하나가 전세계의 사회주의를 책임진다"는 논리다. <더 레프트>에도 소개된 스탈린의 한마디를 들어보자.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른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먼저 승리하지 않고서도 다른 나라 프롤레타리아의 동조와 지지를 받는 가운데 우리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잡고 그 권력을 이용하여 완벽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나타나게 된 '스탈린식 사회주의'는 동유럽 각국과 그 집권 공산당의 주권 및 내정에까지 참견하며 사회주의 및 좌파들의 이미지 자체를 잿빛으로 전락시킨 '우울한 사회주의'이며, 당이 지나치게 독점권력기구로 자리잡으면서 오히려 당이 빠른 속도로 관료화돼 '좌파'의 근본 취지마저 오해시킨다.
북한의 사회주의는 이 스탈린주의가 내비친 '당의 권력 독점'의 폐해와, '개인 숭배'라는 극단적인 종교적 요소에 6·25 전쟁에서 '미 제국주의'라는 사회주의의 가장 커다란 적과 싸웠다는 그 기억 속에서 '민족공산주의'의 요소를 띠고 있다.
게다가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자주'를 내세우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폐쇄'를 전제할 수 밖에 없는 '주체사상'의 창조로 인해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내세울 수 있는 가장 우울한 사회로 변모해버린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인간의 잠재력을 제한하고 왜곡하며, 공격하고 억압하고, 때로는 심지어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하는 불평등의 체제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라는 구절을 생각해보자. 넓게는 좌파의 본질적인 취지마저 왜곡시켜버렸다는 이야기가 통할 수 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이라는 소수정당, 그 소수정당의 넓은 스펙트럼을 감안할 때, 소위 '평등파'라는 사람들이 그 틀을 이탈해 '진보신당'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주목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민주노동당이 '북한'에 대해 자유롭지 않은 틀임을 감안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라는 아주 극단적인 정글 자본주의를 추진하는 세력들이 정권을 잡았다면, 좌파는 그 존재 근거 자체에 대한 고민과 함께 기본으로 돌아가보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민주주의, 지금이야말로 '쟁취'가 중요한 때다. 그 '쟁취'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가기 위한 첫단계는 '좌파'에 대한 대중의 광범위한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 '북한'과 '주체사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할 때다.
<더 레프트>에서 길을 물어보라
<더 레프트>는 사진 한 장 없이 1천페이지에 달하는 책이다. 고백하자면, 필자 스스로도 필요하다 싶은 부분부터 읽었다. 분명 방대한 책이다. 하지만 방대하기에 잘 찾아보면 길이 나와 있다.
제프 일리는 그 길에 대한 간접적인 제시를 드러낸다. "1960~1990년대 사이에 사회민주주의자든 공산주의자든, 어쨌든 좌파는 충분한 관용적 태도와 상상력을 갖고서 새로운 정치공간 형성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남긴다.
눈에 번쩍 띄는 단어가 하나 나왔다. '상상력'이다. 당이든 뭐든, 독점적 세력이 국가와 사회의 총체적인 권력을 틀어쥐며 자리잡은 곳에서는 '상상력'이 꿈틀거릴 수 없다. 상상력이 떨어지면 새로움에 대한 대처가 떨어지며 주도할 수도, 기존의 낡은 관습과 오류에 저항할 수도 없다.
제프 일리는 지금이 전세계적으로 어떤 시대인지도 잘 말해준다.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잘 맞아떨어져 눈길을 끈다.
"자본주의의 재구조화와 세계화된 시장질서라는 작금의 극심한 보수적 상황 속에서 '사회주의', '민주주의', '자유'같은 단어들은 그것들이 유래한 역사 자체를 몰수당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왜곡되고 있다."
좌파, 혹은 사회주의가 민주주의를 견인했다는 이야기 자체가, '사회주의'를 민주주의의 적대적 개념으로 호도한 극우 세력들의 선동을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는 다소 의외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좌파'란 제프 일리의 지적대로 광범위한 표현이다. "사회주의의 역사 전체에 걸쳐 사회주의자들의 민주주의 옹호는 유감스럽게도 성별과 인종을 필두로 한 일련의 중요한 전선들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 속에서 길이 보인다.
우리나라 같은 우경화된 사회에서 성소수자를 의회민주주의 속의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내세운 진보신당, 그리고 보수정당까지도 여론을 의식해 장애인이나 여성을 비례대표 후보 상위순번에 내걸었다는 것은 나름대로 주목해볼 만한 일이다.
문제는, 거기에 어떤 상상력과 어떤 설득력을 갖춰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느냐는 것이다. 보수정당의 '보여주기식 행보'에 맞설 수 있는 수단은 결국 상상력과 설득력, 그리고 과거 좌파들이 반파시즘 연대 차원에서 레지스탕스로 나서면서 보였던 그 끈질긴 집념일 것이다.
'좌파'는 조금이라도 닫힌 세계로 어긋나면 그 즉시 '스탈린주의'나 '주체사상'과 같은 오류를 반복할 수 있다는 그 위험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아마 <더 레프트>의 저자 제프 일리가 '상상력'을 강조한 이유일 듯하다.
2008.03.22 13:48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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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eft 1848-2000 - 미완의 기획, 유럽 좌파의 역사
제프 일리 지음, 유강은 옮김,
뿌리와이파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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