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웃음 주는 '일회용 정당', 친박연대

후진적 정치공학의 결정판, '정치 코미디' 대상은 떼논 당상

등록 2008.03.22 14:18수정 2008.03.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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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청원 전 대표 및 김무성 최고위원 등 친박계 공천탈락자가 14일 서울 여의도 한 일식당에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서청원 전 대표 및 김무성 최고위원 등 친박계 공천탈락자가 14일 서울 여의도 한 일식당에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 사진공동취재단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참으로 "이러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에 들어서 정치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소재로 본격 등장했다.

그간 유명 정치인의 성대모사와 특정 정치 사안에 대한 풍자 코미디는 많았지만, 이번 '친박연대'라는 당명은 정치와 권력에 대한 현실주의 사고를 인정하더라도 한국정치 코미디사에서 단연 최우수상 감이자 정치공학 사고의 결정판이다.

우리는 재미있는 코미디를 볼 때면 한참 배꼽이 빠지도록 웃곤 한다. 그러나 정작 코미디언 자신은 웃지 않는다. '친박연대'라는 당명은 우리에게 웃음을 주고 있지만, 정작 그 정치인들은 웃지 않는다. 정말 진지하다. 

'무소속'과 '연대'를 함께 쓰는 언어 전복

한나라당의 공천갈등이 결국 '무소속연대'와 '친박연대'라는 생각해내기 힘든 '특수목적형 일회성 정치집단'을 만들어냈다. 우선 두개의 용어는 심각한 언어 갈등과 함께 한국 정당정치의 후진적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분석해볼 만하다.

첫번째로, 우리가 통상 무소속이라 하면 자신과 마땅히 맞는 이념과 정책을 실현코자 하는 정당이 없거나, 또는 그런 정당이 있더라도 소속되기 싫은 경우, 그리고 한국적 특징인 보스중심의 정당에 소속되기 싫은 경우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무소속'+'연대'가 합성되어 무소속간의 연대를 한다는 것이다. 단어 그 자체로는 부자연스럽지는 않다. 무소속의 전통적 의미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이라고 해야 하나. 이제는 무소속연대가 있으니 '무소속개별'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무소속끼리 어떤 하나의 이념과 정책을 지향한다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어찌보면 이는 분명히 진정한 무소속을 능멸하는 언어의 전복이다. 그렇다면 진짜 무소속인 임종인 의원은 무엇이 되는가(좀 더 나가보자. 금번 '무소속연대'는 진짜 무소속인 임종인 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한 전술이 되는 것인가?).

금번 '무소속연대'는 박근혜를 지도자로 내세우고자 하다가 공천에서 배제된 세력이 주축이기 때문에 '친박연대'라는 말이 더 나을 법한데, 왜 '무소속 연대'라고 했는지 의문이다.


사람 이름을 당명에, 그것도 과감하게 넣은 '친박연대'

두번째로, '친박연대'는 '무소속연대'에 비해  더 노골적이며 더 직접적이다. 이들은 '무소속 연대'와 비교하면 언어적 갈등은 없으나, 사람의 이름을 당명에 넣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과감하게 하였다.

언론 보도대로 한국정당사에서 자연인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당명을 가진 최초의 사례인 것 같다.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대로 "특정인을 연상시키는 당명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정당법상 관련 조항이 없기 때문에" 친박연대라는 당명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한국정치가 이념과 정책보다는 인물중심의 계파정치이긴 하지만 '친박연대'는 지나치다 못해 웃음이 나온다. 가령, '동교동계(상도동계)의 연대움직임이 보인다', '친박근혜 계열 의원들이 연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등의 말은 귀에 익으나, 당명 자체가 '친박연대'라니 참으로 놀랄 따름이다.

이들은 이번 총선에서 당선이 되면 한나라당에 복당을 한다고 하는데, 정작 한나라당은 "복당 절대불가"를 외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수장인 박근혜 전 대표는 아직도 한나라당 당적을 갖고 있고 탈당할 의사가 없음을 내비치고 있다. 수장의 이름을 당명으로 내걸었는데 수장은 한나라당 소속이고, 수장을 따르는 사람들은 한나라당을 탈당해서 수장이 있는 한나라당을 비난한다.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인지 모르겠다.

'친박연대'는 박근혜 전 대표가 어느 당에 있는가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들의 관심사는 박근혜의 이미지와 지역주의의 적절한 배합을 통해 다시 국회에 입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이념과 정책차별성이 없다고 봤을 때 '친박연대'라는 일회성 정치집단의 탄생은 이념과 정책에 따라 정당이 분화·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인물과 지역주의에 기대어 이합집산을 되풀이 해온 정당사를 감안하면 오히려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정당이 일회성 프로젝트 그룹인가?

이들이 아무런 불편함과 거부감 없이 '친박연대'라는 당명을 지은 것도 이러한 자연스러움의 연장선상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한 정치학자의 말처럼 정당의 생성과 소멸이 프로젝트화되가고 있는 셈이다. 정당이 가수들처럼 잠시 모여서 음반내고 헤어졌다가 하는 '프로젝트그룹'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친박연대'와 '무소속연대'는 표면적으로는 한나라당 공천갈등의 결과로 나온 것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한국 정당정치의 전형적인 특징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이념과 정책으로 정당이 생멸(生滅)하거나 분화·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다양한 집단의 이해갈등을 민주적으로 반영하고 조직화하여 정책화하는 능력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대표성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과 지역정서에 기대는 것이 훨씬 손쉽고 빠르고, 아주 효과적임을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무소속연대'와 '친박연대'는 그들 나름대로는 '저비용 고효율'일지 모르겠으나, 한국 정당정치의 저발전의 단면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가 아닌가 싶다.
#친박연대 #한나라당 #정당정치 #박근혜 #18대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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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많이 읽고 때때로 좋은 글 많이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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