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수덕사 덕숭총림 방장 원담 큰스님 영결식

상좌인 법장스님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원담스님

등록 2008.03.23 13:34수정 2008.03.2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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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충남 예산 덕숭산 수덕사에서 덕숭총림 방장인 원담스님의 영결식이 봉행되었습니다.
22일, 충남 예산 덕숭산 수덕사에서 덕숭총림 방장인 원담스님의 영결식이 봉행되었습니다. 임윤수

밤새 통곡을 하였는지 달빛도 퉁퉁 부어 있습니다. 평소 같으면 차가움이 느껴질 만큼 또렷한 모양으로 덩그라니 밝아 있을 보름날 새벽의 달빛이지만 22일, 덕숭산에 자리하고 있는 수덕사의 방장이신 원담스님의 영결식이 있는 22일 새벽하늘에 걸린 달은 통곡이라도 해 눈두덩이가 퉁퉁 부은 사람마냥 달빛은 흐릿했고 테두리는 뭉그러져 있었습니다.  


보름달도 통곡하고, 햇살도 흐느끼는 듯

흐느낌 같은 달빛 때문인지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도 덩달아 흐릿해지는 기분입니다. 공주와 예산을 지나 찾아간 수덕사의 아침은 정중동입니다. 뿌옇게 밝아오는 여명만큼이나 영결식단을 준비하는 몇몇 스님들이 손길만 보일 뿐 아직까지는 조용한 분위기입니다.

가지런하게 정리된 조화가 꽃 숲을 이루었고, 반듯반듯하게 줄맞춰 놓여 있는 의자들에서 이미 엄청난 사람들이 다녀갔거나 준비를 하느라 종종걸음을 치고 수고하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수덕사의 새벽은 명상을 즐기고 싶을 만큼 조용했습니다.

 일찌감치 찾아간 수덕사의 새벽은 조용했습니다.
일찌감치 찾아간 수덕사의 새벽은 조용했습니다. 임윤수

이 맛에 서두르는지도 모릅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룰게 분명하지만 조금만 서둘러 일찍 도착하면 이렇듯 한적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으니 마음조차 여유로워 지는 그 넉넉함 때문에 어디를 갈 때마다 서두르게 되는 가 봅니다.

수덕사의 새벽을 즐기느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두리번거리고 있던 중 2006년 9월 ‘이게 수백 년 전 사람 손으로 한 게 맞아’라는 제목으로 올린 기사를 작성하느라 뵌 적이 있던 성보박물관장 정암스님을 만났습니다. 뵐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를 하였었지만 조용함에 취해 잠시나마 잊고 있던 순간에 뵙게 되니 구면에서 우러나는 달콤함이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안부를 여쭈니 발심은 금강산에서 하고, 성도는 묘향산, 지리산은 보림이며, 열반은 덕숭산이라고 하는 설명으로 덕숭산을 들려주십니다.

 행사장은 이미 깔끔하게 마련되어 있었으니 행사를 준비하는 수고 또한 이미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행사장은 이미 깔끔하게 마련되어 있었으니 행사를 준비하는 수고 또한 이미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임윤수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사월초파일(음력 4월 8일)과 부처님께서 중생구제를 위해 왕궁을 나와 히말라야산으로 들어가신 출가일(음력 2월 8일), 새벽에 동녘에 떠오르는 샛별을 보시고 진리의 대도를 깨우치셨다는 성도일(음력 12월 8일)에 이어 불가(佛家)의 4대 명절 중 하루인 열반일, 육신까지 모두 버리시고 영원한 진리의 세계로 돌아가신 열반일(음력 2월 15일)에 영결식과 다비를 하게 되니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큰스님의 법력이 남다르게 느껴진다는 말씀으로 큰스님을 예경하는 제자의 마음을 들려주십니다.


다비장으로 가는 흙길엔 밤새 우러난 솔향이 수북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영결식이 치러질 대웅전 주변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다비장을 찾았습니다. 수덕사의 다비장은 대웅전 앞마당에서 800여 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다비장으로 가는 길 역시 밤새 우러난 솔향이 흐트러지지 않았을 만큼 조용합니다. 자박자박 내딛는 필자의 발놀림에 흙길에 깔려있던 조용함도 부스스한 모습으로 깨어납니다.

뭉툭뭉툭 솔향이 떨어지는 소나무길 끝에 다비장이 있습니다. 이미 다녀간 적이 있고, 연화대에서 피어올랐던 적멸의 불꽃도 본적이 있는 다비장이지만 다시 찾아도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분위기입니다. 해가 솟는 것으로 봐 다비장 앞쪽이 동쪽인가 봅니다. 달빛이 그렇더니 솟아오르는 햇살도 흐느낌 같은 햇살입니다. 안개도 아니고 구름도 아닌 뭔가에 가려 흐릿하기만 한 광명이니 흐느낌처럼 느껴집니다.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전국 방방곡곡. 샅샅 골골에서 모여든 사부대중으로 영결식장이 빼곡합니다.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전국 방방곡곡. 샅샅 골골에서 모여든 사부대중으로 영결식장이 빼곡합니다. 임윤수

새로 보수된 다비장을 둘러보고, 다비가 끝나면 습골 한 유골을 쇄골하는 돌절구가 있는 북쪽 바위 쪽으로 가니 생강나무 꽃이 노랗게 피었습니다. 생강나무 꽃이야 원래 노란색이지만 스님을 다비하는 다비장에 피어있어서 그런지 노란 상복을 입고 핀 덕숭산의 상주 꽃으로 느껴집니다.    

카메라를 걸머멘 두 남자가 부지런한 아침 새처럼 일찌감치 다비장을 찾았다간 황당해 하는 눈빛입니다. 여느 스님의 영결식 때처럼 다비장엘 찾아가면 당연히 연화대가 마련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였을 테니 수덕사의 다비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로서는 상당히 의아했을 겁니다.

코끝이 싸 할 정도로 상쾌한 아침향기에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빵조각으로 때운 아침끼니조차 진수성찬으로 느껴 질 만큼 마음부자가 되니 다비장에서는 맞는 아침은 남다릅니다. 미소처럼 다가오는 다비장 분위기를 즐기며 다시 소나무 길을 걸어 행사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상좌인 법장스님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원담스님

2005년 9월, 시신기증이라는 아름다움으로 삶을 회향한 총무원장 법장스님의 영결식이 있던 조계사에서 여러 사람들이 법장스님의 은사되시는 원담스님을 말씀하시는 걸 들었었습니다. 영결식장에 왔거나 오지 못 했거나에 상관없이 법장스님의 자애함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스님의 갑작스런 입적에 경망이 없고 비통해 했겠지만 어떤 누구보다 가슴 아플 사람은 원담스님이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추모하는 원담스님은 ‘덕숭산의 천진불’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추모하는 원담스님은 ‘덕숭산의 천진불’이었습니다. 임윤수

다른 사람들이야 영결식에 참석하고, 아름다운 회향에 합장 삼배를 올리며 구도자의 진면목을 깨닫는 것으로 스님에 대한 추모를 대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효가 지극하기로 소문난 상좌를 먼저 보내야 하는 원담스님께서는 출가수행자일지라도 자식을 앞세운 박복한 속인의 심정처럼 법장스님의 입적을 가슴에 묻게 될 거라며 걱정하는 걸 들었었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감당하기 힘들만큼 커다란 슬픔이기에 당장은 법장스님의 입적을 알리지 않았을지라도 언젠가는 상좌인 법장스님의 입적을 알게 되셨을 스님의 노후는 가슴에 묻은 자식을 돌보는 시묘살이의 회한이 서린 아픔이며 수행이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헐렁한 잿빛 법복을 입은 할머니가 구부정한 허리를 펴가며 계단을 올라서고, 맵시 나게 정장을 차려입은 신사도 일주문을 들어서 행사장으로 몰려옵니다. 영결식이 시작되려면 아직 두 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하는데 더 이상 한적함은 찾을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스님의 영결식장은 사부대중이 모여드는 대하의 도도함이며 법력의 바다

전국에 산재한 산사(山寺)에서 오로지 수행자로서의 삶만을 갈구하던 스님들께서도 속속 도착합니다. 운수행각, 떠다니는 구름이나, 흘러가는 물처럼 머무름 없이 깨우침을 찾아다니는 게 스님들의 삶이기에 도반이면서도 만나지 못했던 도반을 큰스님의 영결식장에서 만나고 있으니 원담 방장스님의 입적은 사부대중을 한 곳으로 모여들게 하는 대하의 도도함이며 법력의 바다r 되었습니다.

 추녀 끝에 달린 풍경도 큰스님의 입적을 추모하는 듯 다소곳하게 있었습니다.
추녀 끝에 달린 풍경도 큰스님의 입적을 추모하는 듯 다소곳하게 있었습니다. 임윤수

부처님을 참배하려는 사람들로 대웅전뿐 아니라 명부전과 관음전 법당도 혼잡합니다. 가지런하게 놓인 의자에서 일찌감치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앉아계시는 노보살님들도 계십니다. 텅 비었던 대웅전 앞마당, 층을 이루고 있어 그 넓이가 꽤나 되는 수덕사 대웅전 앞마당이 사람들로 빼곡합니다. 사진이라도 찍으려 자리를 옮기려면 ‘이리 좀 지나가겠습니다’하고 연실 부탁을 하고 양해를 받아야 하니 더 이상 조용하지도 넉넉하지도 않은 분이기가 되었습니다. 

덕숭산 자락에 5번의 범종소리가 울리며 영결식이 시작됩니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스님들께 귀의함을 고하는 삼귀의에 이어 큰스님께서 살아오신 일생을 소개하고 추모합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인 종사스님께서는 영결사를 통해 ‘하늘을 끌어내리고 땅을 뽑아 올리며, 산꼭대기에서 파도가 일게 하고, 우물에서 먼지가 솟게 하는 헌헌 출격장부 이였다’고 원담 스님을 말씀하셨고, 총무원장 지관스님께서는 ‘도인이란 껍데기 이름에 만족하지 말고 진실한 수행자가 되라’고 하셨다는 큰스님의 가르침으로 추도합니다.

경허 만공 선사의 선풍을 이어받은 원담스님이기에 영결사와 추도사는 물론 조사와 조의 메시지 곳곳에 큰스님의 삶과 법력이 비춰집니다. 보기 드물게 대통령이라는 신분으로 스님의 입적에 직접 조문을 하였던 이명박 대통령도 청와대불자회장인 김병국 외교안보수석이 대독한 조의 메시지에서 법장스님을 통한 인연과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선농일여의 삶으로 큰스님을 말씀하였습니다.

 스님의 영결식장은 사부대중이 모여드는 대하의 도도함이며 법력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스님의 영결식장은 사부대중이 모여드는 대하의 도도함이며 법력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임윤수

 대웅전 앞마당이 빼곡합니다
대웅전 앞마당이 빼곡합니다임윤수

여러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원담스님은 덕숭산의 천진불이었습니다. 도를 도로 말하지 않고, 일필휘지의 선서에는 선승 특유의 선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고 하니 평생을 참구한 당신의 본래면목을 묵향으로 담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헌화를 올리고 사홍서원을 하는 것으로 영결식을 마치니 스님의 법구를 다비장으로 이운하는 발인식으로 이어집니다. 덕숭산 자락을 감싸고도 남을 만큼의 만장이 펄럭이는 이운행렬입니다. 스님의 법구를 모신 상여는 소박했습니다. 천진불의 미소와 일필휘지의 선서를 담아 낼 수 있을 것만큼 하얀 종이로 접은 연꽃잎으로 장식한 게 전부입니다.

딸그락 거리는 목탁소리와 딸랑거리는 요령소리에 맞춰 이운되던 스님의 법구가 수덕사 대웅전 앞을 멈췄습니다. 큰스님 생전에 수행자로 예를 올리던 대웅전에 하직인사를 드립니다.

스님 생전에 걸어 다니던 다비장 가는 길 꽃상여타고 휘적휘적

노구일지언정 당신의 발걸음으로 넘나들고 걸어 다녔던 다비장 가는 길이 이제는 다시 못 올 적멸의 길이 되어 꽃상여를 타고 찾아갑니다.

 스님의 법구를 다비장으로 이운하려 만장자락이 펄럭입니다.
스님의 법구를 다비장으로 이운하려 만장자락이 펄럭입니다. 임윤수

솔가지의 푸른빛만 돌던 산자락에 알록달록한 만장이 펄럭거리고, 은은하게 소나무 향만 풍겨 나오던 다비장 가는 길에 법향이 풍겨 나오고, 스님을 추모하는 애틋한 마음들이 담긴 만사로 우러납니다. 다비장 가는 길을 지난 상여가 스님들의 어깨에 메어 다비장에 도착합니다.

꽃상여에서 바닥만 준비 된 연화대로 스님의 법구를 옮긴 후, 장작을 쌓고 생소나무 기둥을 세우고,  마른 솔가지와 생솔가지를 척척 올려 쌓으니 연화대가 마련됩니다.

한 송이의 커다란 연꽃이 된 솔가지 더미에 불을 붙이는 거화를 하니 스님의 흔적은 불이되고 스님의 가르침은 솔향으로 피어납니다. 풀썩 거렸던 사람들 발자국에 덕숭산 자락의 솔향이 흩어지는 가 했더니 스님의 법구를 다비하는 연화의 불꽃으로 다시금 모아집니다.

수북하였던 솔가지는 솔향으로 사라지고, 벽을 이뤘던 생나무기둥은 송진의 열기로 사라집니다. 구름처럼 모여들어 연화대를 감싸고 있던 사람들도 빗방울이 되어 떨어진 듯 대부분이 떠났습니다.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만큼 연화대의 크기도 줄어들었고, 치솟아 오르던 화염도 사그라집니다. 

세세천년의 고승으로 탄생하는 열반의 순간

허상이었을지언정 누구에게나 원담스님으로 상징되었던 스님이 법구 대부분이 지수화풍, 뼈와 살은 흙으로 돌아가고, 피와 땀은 물로 돌아가고, 가슴을 뜨겁게 하던 체온은 열이 되고, 코끝을 들락거리던 들숨 날숨은 바람이 되어 돌아갔으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노구일지언정 걸어 다니셨던 다비장 가는 길이지만 스님께서는 꽃상여타고 적멸의 길로 가셨습니다.
노구일지언정 걸어 다니셨던 다비장 가는 길이지만 스님께서는 꽃상여타고 적멸의 길로 가셨습니다. 임윤수

상좌를 가슴에 묻어야 했던 큰스님의 아픔 때문인지 다른 부분은 이미 재가 되거나 조각이 되어 돌아갈 곳으로 다 돌아갔는데 법구의 가슴은 한참이나 더 육신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1932년에 출가를 하셨으니 76년이란 세월을 오롯한 수행자의 삶으로 살았을지라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속세에서의 인연은 이렇듯 보는 사람을 숙연케 한다는 걸 또 다른 가르침으로 보이셨습니다. 

사그라진 불덩이에서 습골(拾骨)을 하고, 습골한 유골을 바람에 날릴 수 있는 가루로 쇄골해 동서남북 사방으로 산골을 하니 세수 83세인 큰스님의 일생이 세세천년의 고승으로 탄생하는 적멸과 열반의 순간이어라.

덧붙이는 글 | 수덕사만의 독특한 다비, 연화대 만들기에서 산골까지 기사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수덕사만의 독특한 다비, 연화대 만들기에서 산골까지 기사 이어집니다.
#수덕사 #덕숭산 #원담스님 #다비장 #연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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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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