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손된 여순사건 안내판민간인 부역자 학살터로 추정되는 곳에 안내판을 세워두었는데, 누군가에 의해 훼손되었고, 대신 그 뒤로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경고문이 세워져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습니다.
서부원
엑스포가 삼켜버릴 맨 처음의 먹잇감(?)은 바로 기억하기조차 꺼려하는 가슴 아픈 역사가 될 것 같습니다.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았고, 세월이 많이 흘러 밝히기도 어려운 역사적 상처는 더욱 그렇습니다. '엑스포'라는 축제의 분위기에 여순사건은 분명 어울리지 않는, 모두가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60년 전 이 곳 사람들은 슬피 우는 것조차 죄가 되는 기막힌 세상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야 했고, 억울하게 죽은 가족이 불에 태워져 쓰레기 버려지듯 매장되는 현장을 먼발치에서 그저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반란군에게든, 진압군에게든 부역해야 했던 수백 수천명의 민간인들이 '빨갱이'라는, '우익 앞잡이'라는 이름으로 죽어가야 했던 피맺힌 현장이 바로 이 곳 여수였습니다.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할 만큼 시내와 외곽을 가리지 않고 여수 전역이 여순사건의 역사적 현장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순 사건의 현장이 엑스포 깃발이 화려하게 나부끼는 공사장 곳곳마다 구석에 천덕꾸러기마냥 나뒹굴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여순사건에 천착해 온 지역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곳곳에 안내판이 세워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행정 관청은 물론 주민들의 관심조차 끌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안내판이 훼손된 곳도 있고, 학살된 민간인이 매장된 터로 추정되는 곳에는 쓰레기가 수북이 쌓여있어 아쉬움을 넘어 참담할 지경입니다.
아예 안내판과 나란히 '쓰레기를 무단투기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세워진 곳도 있는데, 이는 여수에서 여순사건의 위상을 짐작하게 하는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