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라지는 연화대를 뒤로하고 있는 스님의 모습에서 애별이고의 고뇌가 느껴집니다.
임윤수
하늘이라도 녹여낼 듯 치솟아 오르던 불꽃이 잦아들고, 숯덩이가 되어 얼기설기 얽혀있던 장작들도 점점 사그라지니 스님의 법구를 괴고 있던 아름드리 굵기의 생나무들도 한참이나 가늘어 졌습니다. 나무가 가늘어지며 조금씩 사이가 벌어지면 조심스럽게 나무를 밀어 촘촘하게 되도록 붙여줍니다.
슬픈 사람의 표정처럼 흐렸지만 그때까지는 멀쩡했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통곡이라도 한 듯 퉁퉁 부어있던 보름달빛, 흐느끼기라도 한 듯 흐릿하기만 했던 아침 햇살에 담겨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추모지정이 꾹꾹 참았던 눈물이라도 된 듯 빗방울로 떨어집니다. 한 쪽에 마련되어 있던 비 가림 시설로 연화대를 가립니다.
땅을 파고 만든 공간, 아름드리 생나무가 놓여 진 아래쪽으로 타버린 불덩이들이 뚝뚝 떨어집니다. 처음에야 재들만 떨어졌겠지만 나무사이가 조금씩 벌어지고, 타버린 장작들이 자잘한 숯덩이가 될 때쯤이니 별똥별이 떨어지듯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텅 비어 있던 공간이 재와 숯덩이들이로 쌓여갑니다. 아름드리 생나무위에서 스님의 법구와 한바탕 화염잔치를 벌인 나무들이 재가 되고 숯덩이가 되어 아래쪽으로 떨어집니다. 쌓여가는 숯덩이 위로 스님의 유골도 희끗희끗하게 떨어집니다. 연화의 불꽃과 춤이라도 추듯 한바탕 어울렸던 스님의 법구니 육신이거나 나무이거나를 가리지 않는 환원의 순간입니다.
잔불처럼 남아있던 불덩이조차 다 타버리니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반쯤은 가늘어진 통나무, 연화대 제일 아래쪽에 깔았던 아름드리 생나무를 한쪽으로 밀어냅니다. 연화대도, 연화대 위에서 어깨춤을 추듯 바람결을 따라 어우러지던 불꽃도 더 이상 보이지 않으니 텅 비어있던 아래 공간이 탔거나 타다 남은 숯들로 가득합니다.
일말의 다비가 끝났습니다. 여느 다비식이라면 하룻밤을 지내야 하지만 거화를 하고 너덧 시간 만에 다 끝났으니 화끈할 수밖에 없는 방식입니다.
곱게 접은 한지고깔에 유골을 주워 담는 습골스님들에게 한지로 접어 만든 고깔과 대나무를 다듬어 만든 젓가락이 하나씩 나눠집니다. 연화대 아래 쌓여있던 숯 더미를 한 삽 푹 퍼서 빙 둘러선 스님들 앞으로 휙 펼칩니다. 재와 숯불사이로 희끗희끗한 뭔가가 드러나니 아름드리생나무등걸위에 있던 이승의 법구가 온 곳으로 돌아가던 중 숯들과 도반이 되느라 남게 된 스님의 유골입니다.
수덕사 다비방식이 원초적이라서 아름다운 것은 사리를 수습하지 않는 이 습골과정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조심스런 표현이지만 사리는 형이상학적인 대상이기에 법력이니 뭐니 하며 혹세무민의 수단이 되거나 수행의 결정체니 뭐니 하며 세속인들의 입방아 꺼리가 될 수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수덕사 다비에서는 사리를 수습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니 꾸밈도 남김도 없는 원초적 환원과정이기에 아름답다는 생각입니다.
보물찾기라도 하듯 샅샅이 살피며 흩어진 유골들을 주워 담습니다. 모래 한 톨에 가려진 유골, 흙 사이로 스며든 작은 유골조차도 빠트리지 않을 만큼 조심스레 주워 담은 유골들은 한곳에 마련된 백자항아리로 모아집니다. 여느 때 같으면 연화대가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만들어져 있는 돌절구에서 쇄골, 아직은 덩어리로 남아 있는 유골을 가루로 만드는 쇄골이 이루어지겠지만 빗방울이 떨어지는 우중이니 예비로 준비한 돌절구에서 천막 안에서 쇄골을 합니다.
스님의 영정 앞에 돌절구와 유골이 담긴 항아리가 놓여있습니다. 항아리에 담겨있던 유골을 꺼내 돌절구에 넣고 돌로 된 절굿공이를 몇 번 돌리고 나니 고운 가루만 남습니다. 덕숭산을 넘어 한국 불교계의 승풍을 이어가던 큰스님의 법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다비와 쇄골이라는 과정을 거쳐 이제는 한 줌도 되지 않을 만큼의 재만 남았습니다.
한줌의 재가 된 유골을 네 개의 고깔에 나눠 담고, 유골이 담긴 고깔을 하나씩 든 스님 네 분이 동서남북으로 걸어갑니다. 다비장에서 조금 벗어난 숲으로 들어간 스님들은 솔바람에 실어 고깔에 담아온 유골을 흩뿌리는 산골(散骨)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