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선생의 <나의 북한 문화유산 답사기>에 그런 얘기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분단 이후 거의 50년 만에 공식 허용된 루트로 북녘에 들어가 보니, 그토록 곤궁하게 살고 있다는 사람들이 어찌된 일인지 일반 서민들까지도 누구나 시 한 수쯤은 즉석에서 읊어내더랍니다.
마치 우리 남쪽 사람들 누구나 노래방에 데려다 놓으면 전부 가수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꼭 서정시가 아니라도, 붉은 혁명을 찬양하고 선동하는 혁명시일지라도 그저 시를 읽고 암송하는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도 인상적이고 부럽더라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첫 떨림, 처음처럼>이라는 시집을 펼치기 전에 이 책의 부제 '신경림의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시'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소리를 내서 읽으라고? 하기야 시든 소설이든 소리를 내서 책을 읽어본 지가 언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지명으로 교과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날 배워야 할 부분을 목청껏 읽었던 게 아마도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바삐 사는 세상, 시를 읽을 시간이 얼마나 있을 것이며, 더더군다나 소리 내서 책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담 너머 옆집 총각의 글 읽는 소리에 이웃 젊은 처녀들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뛰었더라는 사극 드라마의 한 장면은 이제 현실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환상입니다. 아무도 소리 내어 책을 읽지 않는 '묵독'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저는 오늘 신경림 시인의 조언대로 혼자서 조용히 소리를 내서 시를 읽어 보았습니다.
쉽지 않더군요. 글자수와 운율이 어느 정도 일정한 시조라면 모를까, 성우들의 시낭송 테이프에서 들어봤음직한 그런 자연스러운 낭송의 경지는 아예 처음부터 꿈도 꾸지 않았지만 대체 어디서 끊고 숨을 쉬어야할지 조차도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고, 짧은 시 한 수 나마 좀 더 자연스럽게 읽기 위해 몇 번이나 반복해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계속 반복해 연습을 하고나니 그제야 좀 여유가 생기더군요.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하니 말입니다. 백 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나타난다는 말은 아마도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봅니다.
테이프에 녹음된 시낭송에서 배경음악이 담당하는 역할은 분위기메이커입니다. 잡음을 차단함으로써 시에 집중하게 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시가 주는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지요. 하지만 이 책에서 그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그림인 것 같습니다. 원색 톤의 밝고 화려한 그림이 바로 그런 분위기메이커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씀이지요.
시에 맞게 새로 그림을 그린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그림 중에서 분위기에 맞게 잘 고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잘 어울리는 배치인 듯싶습니다. 통상의 시집이나 시모음집같은 책들의 생김새가 대부분 건조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반해 이 책만큼은 화사하고 산뜻한 그림들 덕분에 밝고 상쾌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도 큰 매력이군요.
신경림 시인은 서문에서 '잘 외워지는 시'를 주로 골랐다면서 은근히 독자들에게도 암송을 권하는 것 같습니다만 너무 지나친 기대일 것입니다. 북녘 사람들이 물질적 빈곤 때문에 오히려 시와 문학에서 위안을 얻고 있다고 추측해 본다면, 상대적으로 남쪽은 경제적 풍요와 여유 덕분에 사람들이 시를 더욱더 멀리하게 되었다는 말도 일리가 있지 않을까요?
암송은커녕 소리 내서 읽기도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 시는 점점 더 소수의 사람들에게, 점점 더 깊은 밤중에만 읽혀지는 존재가 되고 말았으니까요. 하지만 시가 스스로 밥과 빵을 만들어낼 수는 없어도 그 밥과 빵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만큼은 여전히 진리라 믿으며 오늘도 큰 소리로 시 한 수를 읽어보렵니다.
2008.03.24 14:59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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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 신경림의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시
신경림 엮음,
다산책방,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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