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 스님대금 '여음적'을 연주하고 있는 이삼 스님
박태신
우리 가락 우리 소리지은이는 우리 악기를 세세히 설명했습니다. 거문고를 중국의 ‘금’과 다른 우리 고유의 악기라 말하면서, 거문고를 즐기며 덕을 쌓는 선비들의 모습을 인용했는데 저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지만 정말 공감하고 싶은 말입니다. “한 선비가 독서를 하면 혜택이 온 세상에 미치고, 보람이 만세에 드리워진다”, “선비는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겨 지키는 것인데 이것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기쁘게 함이다”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이 시대 지식인의 모습도 이래야 하겠지요.
대금을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법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출판기념회 날 대금 산조와 대금 독주를 들었는데, 지짓대를 이용해 한 손으로 대금을 연주하신 스님의 대금이 ‘여음적’임을 이 책을 통해 알았습니다. 순수 한쪽 팔로 만드셨다 합니다. 이삼 스님은 교통사고로 한쪽 팔을 못 쓰십니다.
판소리의 미학을 빼놓을 수 없지요. 판소리는 서양 성악과 달리 소리꾼 혼자서 성부의 구분 없이 혼자 다 해야 하는 고된 작업입니다. 고수의 북반주에 따라 창과 아니리를 반복하며 거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소리 모험입니다. ‘득음’은 그래서 저 너머의 소리를 얻는 일입니다.
판소리로 제가 아는 것은 영화로도 유명한 구슬픈 가락의 ‘서편제’뿐입니다. 영화 <서편제> 중 가족 셋이 기다란 굽이굽이 동네 어귀를 거닐며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은 잊지 못할 명장면입니다. 나중에 소리꾼 유봉은 말합니다.
“
한에 파묻히지 말고 그 한을 넘어서는 소리를 해라…동편제는 무겁고 맺음새가 분명하다면 서편제는 애절하고 정한이 많다고들 하지. 하지만 한을 넘어서게 되면 동편제도 서편제도 없고 득음의 경지만 있을 뿐이다.” 그 <진도아리랑>을 다시 듣습니다. “춥냐 덥냐 내품 안으로 들어라…” 문화의 가치유기농 방식도 하나 새롭게 알았습니다. 배밭 가꿀 때 배나무 밑에 있는 잡풀을 뽑지 않는 것이 그것입니다. 벌레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어 배나무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게 하는 것입니다 벌레도 살 공간을 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의 답변을 지은이는 듣습니다. "풀도 먹고 살아야죠" 조금은 불편하게 조금은 더럽게 사는 것이 사실은 속 편한 일인데 우리는 멸균, 청결, 적자생존 이념을 머릿속 골수에 패이도록 지니고 삽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말끔할 수 있는 시간은 적은 양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온갖 세균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더러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반복해 말하지만 차라리 우리가 나쁘다고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약간씩 허용하는 넉넉함이 우리 건강에도 좋습니다. 우리 몸에 항체를 지니고 살 듯 벌레도, 퇴비도, 약간의 불편도 허용하는 삶이 건강한 삶입니다.
우리 문화를 전하는 방식은 여럿 있겠으나, 김영조 기자는 날카로운 비판보다는 논리와 현실성, 실행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우리 문화를 소개합니다. 서양화된 현대의 삶에서 올곧게 우리 문화만을 강권하는 것은 선각자 몇 분이나 하실 일입니다.
다수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설득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저 서양문화를 비판만 하지 않습니다. 그저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할 뿐입니다. 그리고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이들도 선택할 여유를 갖습니다. 이 책에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문화의 차원에서도 그렇습니다. 내가 좋다고 누린 문화를 남들도 누리게 권하고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마음이 동하면 행동도 달라진다고 봅니다. 요즈음 많이 발생하는 가슴 아픈 사건들도 윤리의식보다는 넓은 문화의 누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싶습니다.
사람과 자연을 살리게 하는 문화를 자주 누렸다면, 명화 같은 아름다운 예술품을 자주 접해 인간은 악하지만 예술성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알았다면, 돈보다 더 가치있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교감 속에서 알 기회가 많았다면, 자신이 소중하듯 남들도 소중하고 남들이 소중하듯 자신도 소중하다는 글귀를 책을 통해 가끔씩이라도 읽었다면, 가난하게 살더라도 아름다운 풍광 넓은 세상 보는 여행을 조금 더 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책 속에 언급한 한 스님의 말에 눈길이 꽂힙니다.
"우리 겨레는 숙우(熟盂 : 끓인 물을 식히는 대접)에 찻잎이 천천히 퍼지면서 향기와 맛을 남기는 가운데 자신을 돌아보아 밝음과 어두움을 보고 자신의 분에 맞는 푸근한 삶의 지름길을 터득하였다."힘든 길이지만 맛깔스럽게 살아볼 일입니다.
맛깔스런 우리문화 속풀이 31가지
김영조 지음,
이지출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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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번역은 지금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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