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의병 후손들이 만나다(오른쪽 기노웅, 왼쪽 김갑제씨).
박도
마침내 기노웅씨가 사는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하리(사창마을)가 표지판에 나왔다. 기 전교는 이 마을은 오지 중의 오지지만,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선생이 태어나셨다고 했다. 부지런히 달려왔지만 약속 시간을 30여 분 넘겼다. 마침 기노웅(65)씨는 밭에서 일을 하다가 우리 일행을 맞았다.
"길도 멀고, 아는 것도 없고, 집도 누추하고…."기노웅씨는 말을 몹시 아끼는 분으로 우리 일행을 거실로 안내하고서도 묻는 말 외에는 입을 닫았다. 그러면서 "교육을 못 받아(초등학교 졸업) 아는 게 없다"면서 소장하고 있는 '성재 기삼연 선생전'이라는 책을 꺼내 놓았다.
증조 할아버지 기삼연 의병장은 나라에서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지만 그동안 보훈 혜택은 전혀 받지 못하였다고 했다. 의병이나 독립운동하신 분이 해방 전에 돌아가신 경우는 후손이 2대까지 보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기노웅씨 아버지가 6·25 한국전쟁 때 돌아가셨기에 1962년부터 시행된 보훈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동석한 김갑제씨는 이를 보훈법의 맹점이라고 했다. 손자가 일찍 사망할 경우는 손부가 대신 받게 한다든지, 2대 후손이 일찍 사망했을 경우 3대에게까지 다소 혜택을 주는 게 독립운동가 후손을 돕는 본래의 취지에 맞을 거라면서, 보훈법의 탄력적인 운용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기노웅씨 어머니는 여태 살아계신다고 했다. 요즘은 광주 아우 집에서 기거하고 있는데 건강 악화로 부인이 간병하러 갔기에 차 한 잔 대접 못한다고 하면서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히 쏟았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