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은하씨는 네티즌들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도 "운하를 찬성한다"고 당당히 밝힌 뒤 무대에 올라가 대운하 노래를 불렀다. 보수단체도 나서서 운하를 추진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런데 정작 지난 1년여간 '이명박 운하' 찬가를 불렀던 한나라당은 총선을 앞둔 지금, 이를 숨기기에 여념이 없다. 비겁한 행태다.
어제(28일) 밤에는 정부가 그동안 꼭꼭 숨기고 싶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국토해양부가 운하 추진을 위한 전담팀까지 구성해 구체적인 일정과 전략을 세운 내부문건이 폭로된 것이다.
정부스케쥴이 없다더니...거짓말 드러나
이명박 대통령조차 나서서 "운하는 민자사업이기 때문에 정부 스케줄이 없으며, 국민 세금은 한 푼도 들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는 데, 이게 거짓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국토해양부는 문건이 공개된 뒤 "준비 차원에서 검토된 자료의 하나일뿐"이라고 오리발을 냈지만, 이 문건은 '지난 1월 10일부터 한국수자원공사, 산하 연구기관 관계자 등 17명이 참여하는 검토반을 구성해 각종 쟁점 및 관련 법령을 연구 중'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결국 이것도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부운하를 통해 "4만불 시대를 앞당기는 물류혁명을 이루겠다"면서 경제성이 있는 사업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 문건에는 운하건설에 참여하는 "민간사업자의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면서 업체들이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미끼'까지 마련되어 있다. 대통령의 공언과는 달리 혈세를 과감하게 투여하겠다는 것이다.
현 정권의 '임기내 완공'이라는 지상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기존 법체계를 뒤집는 특별법도 구체적으로 검토한 흔적도 역력하다. 소위 '불도저 운하'를 위해, 건설업자와 부동산 투기꾼들을 위한 각별한 배려다. 결국 총선이 끝난 직후 엄청난 반대여론을 뚫고 각 분야에서 벌떼처럼 달려들어 속사포처럼 운하를 완공하겠다는 계획이 뼈대를 갖춘 것이다.
'같기도 공약'은 결국 국민 심판 받을 것
이러한 상황을 뻔히 알만한 집권 여당의 태도 역시 기만적이다. 한나라당은 '이명박 운하'를 뺀 총선 공약을 26일 발표했다.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총선 공약에서 빠진다고 안 한다는 것은 아니다"면서 "그렇다고 한다는 것도 아니라는 말을 수차례 했다"고 보충설명했다. 이같은 소위 '같기도 공약'은 한국 정치사상 처음있는 일인듯 싶다.
강재섭 대표도 나서서 "운하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운하 전도사인 이재오 의원도 "미친 놈 소리를 들어도 추진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기존의 태도를 180도 바꿔 국민투표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런 퇴행적 정치행태는 예견된 일이었다. 대선이 끝난 뒤에는 운하 찬성 여론이 반대여론을 앞질렀으나, 이런 양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인수위는 대운하TF팀을 만들고 국민 여론은 도외시한 채 무조건 밀어부치려 했으나, 그 '오만'은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심지어 최근 문화일보가 디오피니언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 운하 찬성여론은 20.9%에 불과했다. 반대여론은 이보다 3배 이상 많은 63.9%였다.
따라서 총선을 코 앞에 둔 한나라당의 절박한 처지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또 한나라당 스스로도 유권자의 표를 먹고사는 정치집단으로서 당연한 결정이라고 자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민의 눈을 가리는 이런 '꼼수 정치'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은 책임있는 공당의 태도가 아니다.
게다가 이는 정책정당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경부운하는 지난 대선에서 대표공약이었고, 현 정부가 적극적으로 밀어붙일 태세를 갖추고 있다. 특히 이 사업은 건국 이래 최대의 투자비가 들어가는 대역사이고, 대한민국의 수자원 관리체계와 법 체계를 뜯어고쳐야 하는 막대한 사업이다. 이를 뒷구멍에 숨겨놓고 대체 무슨 정책으로 유권자들에게 표를 구하겠다는 것인가.
국민들은 대선 뒤의 '악몽' 되살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가수 이은하씨는 지난 22일 여의도에서 열린 '친환경 물길잇기 전국연대 출정식'에 참석해 당당하게 무대에 서서 자신의 소신을 노래로 불렀다. 이 단체의 김대희 창립준비상임위원장도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총선에서 운하를 공약으로 채택하지 않은 것에 항의하기 위해 한나라당사를 방문해 규탄대회를 하려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왜, 우리의 집권 여당은 이들처럼 당당하지 못한가. 인수위 시절, "총선이 끝난 뒤인 6월에 특별법을 만들어 추진하겠다" "내년 2월에 착공 가능하다" "100% 준비되어 있다"고 큰소리를 친 게 누군데, 지금은 꿀먹은 벙어리 모양새인가. 총선을 앞두고 모든 야당이 나서서 한나라당이 죽인 운하 공약의 불씨를 대신 되살리려는 정당 사상 유래없는 황당극이 연출되고 있는 데도 무조건 숨기려 하는 것인가.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이제라도 대운하를 포기하든, 아니면 총선 공약으로 당당히 내걸든,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이것이 신뢰가 추락한 정치, 퇴행적 정치 행태를 종식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국민은 지난 대선에서 여론이 악화되자 "선거가 끝난 뒤에 재검토하겠다"고 말을 바꾼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인수위의 대운하 TF팀을 앞세워 불과 한달 전 대통령의 약속조차 손바닥 뒤집듯 했던 오만스런 행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국민들은 총선이 끝난 뒤 그 악몽을 되살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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