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동안 매달 장학금 전달하는 사연

류제언씨의 작지만 큰 선행

등록 2008.03.31 21:37수정 2008.04.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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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제언 할아버지. 매달 아이들을 만나 장학금을 주고 대화를 나누다 집에 들어가면 그렇게 마음이 훈훈하고 좋다고 한다.
류제언 할아버지. 매달 아이들을 만나 장학금을 주고 대화를 나누다 집에 들어가면 그렇게 마음이 훈훈하고 좋다고 한다.김현
류제언 할아버지. 매달 아이들을 만나 장학금을 주고 대화를 나누다 집에 들어가면 그렇게 마음이 훈훈하고 좋다고 한다. ⓒ 김현

"허허, 이게 무슨 좋은 일이라고…."

 

인터뷰 좀 하자는 말에 류제언(73) 할아버지는 쑥스러운 듯 허허 하고 웃는다. 할아버지 웃음에 장학금을 받은 아이들도 덩달아 따라 웃는다. 일이년도 아니고 10년이 넘은 세월을 한 번도 빠짐없이 매달 장학금을 아이들에게 준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넉넉하지도 않은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류제언 할아버지는 16년째 그 일을 하고 있다. 매년 3명(학년별로 1명씩)을 선정하여 많지 않은 액수지만 매달 아이들을 직접 찾아와 작지만 큰 봉투를 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간다. 그런 류제언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가장 큰 바람은 뭘까.

 

"학교 생활하면서 아이들이 점차 밝아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고 졸업 후 사회에 나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지."

 

할아버지가 전주 완산여고와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은 이렇다. 91년 소년소녀 수기공모로 금상을 받은 당시 서희윤(현재 하이닉스반도체 근무) 학생을 방송을 통해 알게 되면서부터다. 방송을 본 류 할아버지는 서희윤 학생에게 장학금을 매달 전달하게 됐고 지금까지 그 일이 이어지고 있다.

 

"결혼 후 희윤이가 남편과 함께 시골 모정에 찾아왔었지. 그때 남편이랑 와서 큰절을 하더라구. 노인들이 많은 데서 말이지. 그때 큰절을 하면서 어려울 때 도와준 것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하는데 마음이 훈훈하더라구."

 

아이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주로 할까. 그리고 어떤 마음일까. 의외로 소박하다.

 

"사회에 나가면 자신보다 못 살고 있는 이들과 동행하는 삶을 살라고 하지."

 

사실 류제언 할아버지는 현재 수입이 없다. 자식들이 이따금 보내주는 용돈과 노령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이 해주지 못하는 것을 가슴 아파한다. 그러면서 예전 축산업을 할 땐 좀 여유가 있어 아이들 데리고 옷이나 책도 사주고, 수학여행 땐 수학여행비와 용돈을 주곤 그랬는데 요즘은 그렇지 못한다며 아쉬워한다. 어떤 때는 한 달 생활비가 없을 때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하는 데까진 계속 할 생각이라 한다.

 

"내가 아이들 만나고 가는 날엔 흐뭇하고 행복해요. 주는 내 마음이 위로가 되지. 그래서 없어도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니까 기분이 좋아."

 

이런 장학 사업을 가족들도 아느냐 물었다. 몰랐었는데 3년 전에 들켰다며 허허 웃는다.

 

"가끔 집에 이상한 꽃 편지가 오는 거야. 여자한테 편지가 오니까 할머니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자세히는 말 안하고 대충 이야기해줬지."

 

가족들한테 장학금을 전달하는 걸 숨긴 건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라 한다. 자식들이 학교 다닐 때 학용품을 제대로 사주지도 못하고 라면도 제대로 못 먹였다고 한다. 할머니나 자식들이 그걸 알기 때문에 숨겼는데 들켰다며 웃는다. 혼나지 않았느냐는 말에 다행히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이 이해해준다며 고맙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생일을 기억하고 연락을 할 때나 가끔 잊지 않고 인사를 하러 올 때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는 류제언 할아버지, 아이들에게 큰돈은 아니지만 매달 아이들을 찾아와 장학금을 줄 땐 늘 조심스럽단다.

 

"돈도 잘못 주면 역효과가 날 수 있어 항상 조심스러워요. 그리고 혹 아이들이 자존심 상하진 않을까 염려도 되구."

 

해서 장학금을 줄 때도 조용히 아이들을 불러 다른 아이들 모르게 준다. 그리고 친할아버지가 손녀들에게 용돈을 주는 것처럼 편안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류 할아버지를 친할아버지 마냥 편하게 대한다. 이야기하며 함께 웃고 떠들기도 한다.

 

그리고 류 할아버지가 매달 아이들을 직접 찾아와 봉투를 전달하는 것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이다. 장학금만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따스한 사람의 마음을 주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만나면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건강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로 주고받는다.

 

아이들과 헤어져 자리를 떠나면서 류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고 아이들은 "할아버지 안녕히 가세요"하고 인사한다. 그런 아이들을 향해 웃어주는 류 할아버지의 꿈은 딱 하나라고 말한다. 자신의 기력이 있을 때까지 형편이 안 돼도 힘닿는 데까지 아이들에게 작은 마음이나마 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 어른이 되면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동행하는 삶을 살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2008.03.31 21:37ⓒ 2008 OhmyNews
#장학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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