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월성1510년 제주목사 장림이 외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목성을 쌓았다.
장태욱
1510년(중종 5년)에 제주목사 장림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나무로 성을 쌓았다. 그 후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선조 25년)에 제주목사 이경록이 돌로 다시 성을 쌓았는데, 그 규모가 둘레 3200척 높이 8척이었다고 한다. 성의 내부에는 신사 객사 사령방 무기고 별고(식량보관창고)등이 갖춰져 있었다.
그 후 1764년(영조 40년)에 어사 이수봉의 건의에 의해 성의 책임자를 만호로 격상시켰다. 복원된 명월진성 입구에는 역대 만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한편 명월성은 이재수의 난이 일어났을 때, 천주교도들이 민군을 공격했던 현장이기도 하다.
봉세관(세금 거두는 자)과 천주교도들의 만행이 거세지자 유생들을 중심으로 자위단이 결성되었는데, 그 이름을 상무사(商務社)라 하였다. 비밀단체를 구성했다가 들통 났을 경우에 당할 봉변을 우려하여, 영리단체인 것처럼 꾸몄다. 사람을 쉽게 불러 모으려는 의도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대정 상무사는 각종 민폐의 시정을 요구하는 민회를 종종 개최하였다. 1901년 5월에 대정 좌수 오대현의 이름으로 삼읍에 급주를 뛰었다. 제주성에서 동남쪽 10리 떨어진 황사평 벌판에서 5월 17일에 봉세관들과 천주교도들의 폐단을 시정해 줄 것을 진정하는 민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