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이제 막 허물벗기를 시작했을 뿐...

[총선후기] 낮은 곳에서 함께 비바람 맞는 진보신당을 위해

등록 2008.04.10 15:20수정 2008.04.10 15:32
0
원고료로 응원
a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은 기대했던 심상정, 노회찬 후보도 낙선하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은 기대했던 심상정, 노회찬 후보도 낙선하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 유성호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은 기대했던 심상정, 노회찬 후보도 낙선하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 유성호

원래 패전지졸(敗戰之卒)은 말이 없어야 하나, 약속했던 원고이기 때문에 뒤늦게라도 자리에 앉습니다. 선거 후일담이 주문 사항인데, 맞춤형 원고로 적당한 소재가 딱히 떠오르지 않아, 아니 사실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가만히 반나절을 보낸 뒤입니다.

 

진보신당은 이번 총선에서 패배했습니다. 기대했던 노회찬과 심상정 상임대표도 지역구에서 고배를 마셨고, 비례대표 또한 무위로 끝났습니다. 중앙당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로 나선 분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선거운동을 하셨던 분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신 분들께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특히, 이랜드 노조에는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진보신당은 앞으로 빚진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겁니다.

 

진보신당, 15번의 허물벗기를 시작하렵니다

 

잠자리 애벌레는 15번 허물벗기를 합니다. 두 번이나 세 번도 아니고, 열다섯 번이나 허물벗기를 해야 잠자리가 됩니다. 여섯 번이나 일곱 번 정도 하면 지칠 법도 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애벌레는 영원히 잠자리가 되지 못합니다.

 

잠자리의 은빛 날개는 마지막 15번째 허물을 벗으면서 세상과 만납니다. '날개돋이'라고 부르는 이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아이들과 함께 하늘을 수놓는 잠자리가 됩니다. 14번의 노력과 인고의 세월이 꼬맹이들의 손짓과 어우러지는 작은 날개짓으로 변하는 순간이랍니다.

 

진보신당은 이제 막 창당했습니다. 한 달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정신없이 달려왔습니다. 너무 빠르게 경주에 임하다 보니, 오솔길 주변의 나무와 제대로 대화도 못했습니다. 급하게 달리다 보니, 멈추면서 가쁜 숨을 내기도 버겁습니다.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진보신당은 이제 막 첫 번째 허물벗기를 했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열 번 이상 탈피를 해야 할지 모릅니다. 물론 지난 한 달여처럼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뜀박질이 아니라, 길가의 작은 잎사귀와 봄내음을 같이 맡으면서 한발한발 내디뎌야 할 겁니다.

 

기상청에서 폭풍우가 올 거라고 합니다. 지난 한 달 반 동안의 국지성 집중호우와는 비교가 안 될 거라고 말합니다. 강한 바람과 엄청난 양의 물풍선을 실은 구름이 다가온답니다. 나름 대비들을 하고 있겠지만, 여기저기 산천이 파헤쳐지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물론 언제나 그렇지만 피해를 입는 사람들 중에서 소위 사회지배층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을 겁니다. 하긴 폭풍우를 몰고 오는 무리가 사회지배층과 대통령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진보신당은 비바람을 함께 맞아야 할 겁니다. 비록 작은 힘이지만, 폭풍우에 피해를 입거나 폭풍우와 맞서는 사람들과 함께 들녘에 서있어야 할 겁니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허물을 벗어야 할 겁니다. 그게 이번 총선에서 진보신당에 표를 던져준 이들에 대한 도리겠지요. 그러다보면 진보신당의 등허리에서 날개가 돋지 않을까요. 사람들과 함께 청명한 가을하늘을 수놓는 용의 비행(Dragonfly, 잠자리)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는 용의 비행을 볼 수 있겠죠

 

a  진보신당은 앞으로 낮은 사람들과 함께 비바람을 맞을 겁니다.

진보신당은 앞으로 낮은 사람들과 함께 비바람을 맞을 겁니다. ⓒ 공숙영

진보신당은 앞으로 낮은 사람들과 함께 비바람을 맞을 겁니다. ⓒ 공숙영

선거운동 기간 중에 드디어 한소리 듣습니다. "도대체 당신이 요새 집안일 하는 게 뭐 있냐"고 어미가 아비를 쏘아붙입니다. 무심코 "집 좀 치우지"라며 먼저 말을 꺼냈던 아비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짜증만은 내지 말라고 했잖아"고 옹색하게 응수합니다.

 

하지만 아비야말로 참 이기적입니다. 아비나 어미나 돈벌이하는 건 매한가지인데, 선거라고 아이가 잠든 후에나 집에 들어가니 꼬맹이 둘의 등쌀에 어미가 오죽했을까요. 그래도 어미는 투표 당일 아비에게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럴 때 "고맙다"는 말을 쓴다고 합니다.

 

당분간 머슴이 되어야겠습니다. 사실 정치란 머슴이 되겠다는 건데, 어미와 꼬맹이들의 돌쇠부터 되어야겠습니다. 물론 당분간이 언제 끝날지는 어미와 꼬맹이들만 알겠지요.

덧붙이는 글 | 송경원은 명희 남편이자 다예와 은예 아빠다. 노회찬과 심상정의 진보신당에서 교육분야를 살피고 있다.

2008.04.10 15:20ⓒ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송경원은 명희 남편이자 다예와 은예 아빠다. 노회찬과 심상정의 진보신당에서 교육분야를 살피고 있다.
#진보신당 #총선후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러 교육기관에서 잠깐잠깐 일했습니다. 꼰대 되지 않으려 애쓴다는데, 글쎄요, 정말 어렵네요.


AD

AD

AD

인기기사

  1. 1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2. 2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3. 3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4. 4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5. 5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