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가기 싫어지는 그 곳, 대전동부터미널

행운권 당첨 가장한 2인조 시계 판매상 버젓이 활동

등록 2008.04.11 11:01수정 2008.04.1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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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행 버스 안.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데 40~50대로 보이는 남성 2명이 차에 오른다.

"오늘도 여러분 가정에 평화가 깃들기 바라며 행운권 추첨을 통해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말 끝나기 무섭게 두 사람이 승객들에게 행운권을 나눠준다.

이 두 사람을 전에도 만나 본 일이 있던 나는 행운권을 몰래 숨겨 넣는다. 숨겨둔 행운권을 귀신같이 찾아낸 남자는 나에게 시계 상자를 건넨다. 동시에 상품권 비슷한 것을 두 장 쥐어주더니 갑자기 2만원을 요구한다. "네?" 내가 놀란 듯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자 요구금액을 1만원으로 정정한다. 낌새를 알아차린 나는 시계를 돌려주었고 그들은 서로 속닥거리며 버스에서 내렸다.

대전동부터미널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위의 두 사람을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지난 2년간 동부터미널을 6번 정도 이용한 나도 그들을 3번이나 만났다. 고향으로 가는 막차시간이 대전 내 터미널 중 가장 늦어 자주 이용하지만 웬만해서는 가기 싫은 곳이다. 출발하기 직전 차에 올라타 행운권 당첨을 가장해 가짜 시계를 파는 2명의 불청객. 이 두 사람이 동부터미널로 향하는 이용객들의 발길을 머뭇거리게 한다.

 대전동부터미널 버스 승강장. 언제 그들이 차에 오를지 모른다.
대전동부터미널 버스 승강장. 언제 그들이 차에 오를지 모른다.강동주

터미널에서 내가 자주 이용하는 군산 행 버스를 기다려봤다. 선거가 있던 그 날은 시계 판매상이 보이지 않았다. 2시 30분 출발을 앞두고 있는 군산 행 호남고속 버스에 올라 잠시 운전기사와 얘기를 나눴다. 열흘에 한 번 동부터미널에 온다는 호남고속 기사도 이들을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승객들을 가장 가까이서 마주하는 운전기사는 왜 이들의 탑승을 제지하지 않았을까? 대답은 의외였다.


"나한테 직접적으로 피해주는 건 아니니 그냥 놔둔다."

그들에게 시계값을 지불한 승객을 본 적이 있던 나는 배신감이 들었다.


대전동부터미널 박로수 이사는 "승객들의 불만사항이 계속 들어오고 있지만 단속이 어렵다"고 말했다. 터미널측에서 순찰을 돌거나 용전지구대의 협조를 얻어 정기적으로 단속을 해 본 적도 있다. 사기 사건을 근절시키기 위한 노력은 이미 지칠 대로 해 본 후였다.

 터미널 측에서는 위와 같은 경고문을 내보내고 있다.
터미널 측에서는 위와 같은 경고문을 내보내고 있다. 강동주

박 이사는 "사기꾼들이 경찰에 발각돼 잡혀 들어가도 다시 나와 버젓이 활동한다"고 말했다. 현재 터미널은 시계 판매 사기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매표소 위에 설치된 전광판을 통해 관련 경고문을 내보내고 있다. 이날 만나본 터미널 관계자 모두 "지금으로서는 단속도 어렵고 승객들 스스로 주의를 기울이는 방법밖에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웠던 사람들을 볼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출발을 기다린다. 오랜만의 여행으로 설레는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른다. 혹은 지친 몸을 등받이에 기대고 휴식을 청해보기도 한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출발을 기다리는 승객들 앞에 행운으로 위장된 시계 판매 사기가 닥친다. 그래서 가기 싫어지는 그 곳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아하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넷 아하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대전동부 #시계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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