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정선역에 정선아라리가 울려퍼집니다. 지난 해 11월 말 이후 4개월 만의 일입니다. 오전과 오후 하루 두 차례 꼬마열차가 다니기는 하지만 정선역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은 올 들어 처음입니다.
올해 들어 정선 5일장 열차가 첫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플랫폼에 모여있는 이유는 2008년 들어 처음으로 운행하는 '정선5일장 관광열차'를 환영하기 위함입니다. 지난 주말인 12일의 모습인데요, 그날은 닷새마다 돌아오는 정선 장날이기도 합니다. 장날 열차가 운행을 시작하는 것은 정선에도 봄이 왔다는 증거입니다. 4월 12일 기적을 울린 장날 열차는 11월 27일까지 총 60회 운행합니다.
열차가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12시 6분. 풍물패들은 오전 11시부터 흥겨운 가락을 플랫폼에 풀어 놓습니다. 봄이 왔다지만 바람은 아직 맴고 찹니다. 열차가 첫 운행된다는 소식을 취재하기 위해 방송사와 언론사들도 모였습니다. 산촌 마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정선아라리를 모태로 한 정선5일장은 전국에서 이름난 곳이 되었습니다. 장날열차가 운행을 시작한 지도 올해로 10년째를 맞았습니다. 장날열차와 정선장터는 꺼져가는 지역경제를 회복시킨 일등 공신이기도 합니다. 정선아라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조상들께서 물려준 정선아라리가 후손들에게 엄청난 이자를 만들어 주고 있는 셈입니다.
서울역에서 오전 7시 10분에 출발한 열차는 4분을 연착하여 12시 10분 경 정선역으로 들어섰습니다. 풍물패의 신명이 최고조에 달합니다. 객실문이 열려지며 가방을 멘 여행객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여행객들은 환영의 분위기에 놀란 듯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우와, 정선이 인심 좋은 고장이라더니 여행객 환영식까지?"
이날 열차를 타고 온 여행객은 총 384명. 만석입니다. 장날열차는 사람만 타고 있는 게 아닙니다. MTB를 적재할 수 있는 화물칸이 두 칸이나 있습니다. 그날 MTB를 싣고 온 이들은 35명이나 됩니다. 그들은 화려한 복장을 하고 정선역을 빠져나갑니다. 그들이 지나갈 때 환영의 분위기는 정점을 달했습니다.
이들은 MTB를 타고 곧장 동강으로 갑니다. 아름답게 펼쳐진 동강변은 왕복 200리 길이 넘습니다. 높은 고개를 넘어야 하는 것이 아니어서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코스입니다. 마침 동강할미꽃 축제도 시작되었으니 운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볼 것 많고 즐길 것 많은 정선 장터, 하루 종일 공연 이어져
보통의 여행객들은 역앞 광장에 마련된 관광버스를 타고 정선장터로 이동합니다. 정선 여행의 시작입니다. 그 시간이 되면 정선 장터는 인파로 출렁거립니다. 장날열차를 타고 온 여행객들뿐아니라 관광버스를 이용한 여행객들이 자리를 잡기 때문입니다.
장터 공연장에서는 마술 공연을 비롯해 정선아라리 공연 등이 하루 종일 펼쳐지고 있으니 점심 먹을 시간도 아까울 정도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장터 입구에서는 아리랑경음악단이 여행객들을 위해 신나는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보기 드문 풍경입니다.
실제로 장터를 둘러보다 보면 '이렇게 즐겁고 신나는 장터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곳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 해도 심심하지 않은 곳이 정선 장터이거든요. 남녀노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곳이 정선 장터인 터라 재미없다는 듯 불편한 표정을 짓는 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날 장터에는 아직은 이르다 싶지만 산나물이 제법 많이 나왔습니다. 고사리를 비롯해 곤드레나물, 개두릅, 곰취 등과 냉이, 달래, 쑥, 원추리, 민들레 등등. 이름을 거명하기도 숨찰 정도로 많습니다. 그날은 아직 귀한 관계로 가격이 조금 높습니다. 귀한 값을 하는 거지요.
장터의 매력은 흥정에 있습니다. 말만 잘하면 사는 것보다 덤이 더 많은 곳이 정선 장터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깍쟁이처럼 굴면 더 주고 싶어도 주지 않습니다. 시댁에 왔다가 어머니가 챙겨주는 것 받아가는 듯 애교를 부리면 덤이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 곳이 정선장터입니다.
말만 잘하면 덤이 더 많은 정선 장터, 산나물이 사태를 이룹니다
여행객과 난전 할머니가 흥정하는 걸 가까이서 지켜보았습니다. 무조건 깎기만 하려는 여행객과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난전 할머니나 조금도 밀리지 않으려는 태세입니다. 하지만 결국엔 할머니가 백기를 들고 맙니다.
"에구, 이걸 뜯으려면 얼마나 힘든지 모르니 어찌 하겠수. 옛수, 3천원에 가져 가시우."
"아이고, 고맙습니다. 담에 오면 꼭 할머니를 찾겠습니다."
서울에서 온 여행객 넉살도 좋습니다. 5천원 하는 산나물을 기어코 3천원에 삽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여행객이 산 산나물을 뜯으려면 일반 사람들은 3천원을 고사하고 3만원을 들인다 해도 뜯기 힘듭니다.
정선에 산나물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는 4월 중순 이후부터입니다. 그때가 되면 가격도 내리고 정선장터는 '산나물 사태'를 이룹니다. 장터에 떠도는 산나물 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를 정도입니다.
정선 지역의 음식은 또 어떤지요. 이곳 사람들만 먹는 음식인 메밀국죽이나 봉글죽, 감자붕생이, 콩갱이, 콧등치기국수, 메밀전병, 올창이국수, 메밀적, 곤드레나물밥, 산초두부 등등. 음식 이름들도 독특하지요. 이러한 음식들은 정선에서 밖에 맛볼 수 없으니, 그것들을 한 가지씩 먹어보는 것만으로도 정선여행은 귀한 여행이 되고도 남습니다.
점심시간을 맞은 먹을거리 장터는 발디딜 틈도 없어 보입니다. 그들이 주로 찾는 것은 곤드레나물밥과 콧등치기국수, 올창이국수 등입니다. 아주머니들은 몰려드는 손님을 맞으랴 상 치우랴 손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여행객들은 장터를 둘러보다 오후 2시가 되면 선택 여행을 합니다. 열차 예약을 할 때 패키지 코스를 선택한 여행객들이 이용하는 선택 여행입니다. 정선소금강을 비롯 화암약수, 금을 캐다 발견한 화암동굴 등을 둘러보는 코스와 구절리 오장폭포와 정선아우라지를 둘러보는 코스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으니 선택한 코스로 가면 됩니다.
화암약수 한 모금 하러갈까? 레일바이크 타러갈까?
이도 저도 귀찮으면 정선장터만 꼼꼼하게 둘러보는 것도 좋습니다. 패키지가 아닌 자유 여행을 선택한 여행객들입니다. 삶은 옥수수 두어 통 사서는 하모니카를 불며 장터를 걷는 재미 또한 쏠쏠합니다. 가족이나 연인들은 관광 대신 레일바이크를 타러가기도 합니다. 레일바이크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탈 수 없을 정도로 큰 인기입니다.
오후 4시 40분이 되면 정선아리랑 창극 공연을 합니다. 이 또한 무료입니다. 정선장터에서 행해지는 모든 공연은 장터를 찾아주는 여행객들에게 덤으로 제공하는 겁니다. 정선 장터는 어느 장터에서도 볼 수 없는 넉넉함과 여유, 그리고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정선아라리 창극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공연입니다. 40분 동안 진행되는 공연인데, 공연 내내 정선아라리 가락을 듣게 됩니다. 기차에 내리면서부터 듣게 되는 정선아라리를 돌아갈 때까지 듣게 되는 겁니다.
그러하니 여행객들도 가사 하나쯤 익히게 되고 나중엔 저도 모르게 정선아라리 가락을 흥얼흥얼 거리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여행객은 정선아라리를 멀미가 날 정도로 들었다고도 표현합니다.
이른 아침 서울역을 출발해 청량리역, 양평역, 원주역, 제천역, 증산역을 경유하여 정선까지 오는 장날 열차는 오후 6시가 되면 왔던 길을 되짚어 서울로 돌아갑니다. 정선에 머무는 시간은 6시간 정도에 불과하지만 여행 떠난 지 며칠은 된 듯 본 것도 많고 먹은 것도 많은 곳이 정선 여행입니다.
하루 만에 끝내는 정선 여행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그런 것입니다.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여행을 만나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매월 끝자리가 2일과 7일인 정선 장날 열차. 다음 장날(17일)은 MTB 코스(잔여석 18석)와 자유 여행(잔여석 7석) 을 제외하고는 벌써 매진이라는군요.
서두르지 않으면 산나물은커녕 정선아라리를 듣는 일도 못하게 생겼습니다. 홀로 하는 여행이 아니라면 예약은 필수인 세상입니다. 예약은 인터넷으로 하는데, 코레일투어서비스(http://korailtours.com)로 하면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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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정선5일장, 이게 바로 '산나물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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