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서는 친구도 죽이고, 쓰러뜨려야 한다.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출발선이 다를 수 있으며, 경쟁의 결과가 다를 수 있다. 세상에서는 이것을 '수준'으로 인식하는데, 상당수의 학부모들은 이 '수준 차이'에 따른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갈 것을 아이들에게 주문한다.
동아수출공사
이상은 후카사쿠 킨지 감독의 영화 <배틀로얄>의 장면들이다. '교육'에 관한 언론의 보도를 접할 때마다 저 장면들이 떠올라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교육도 종류가 다양하다고 알고 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교육은 단 하나 '대학입시'뿐이다. 여기서, 인간의 도리나 시민의 도리 따위를 이야기한다면 나는 돌연변이일 것이다.
이해한다. '입시'라는 것 자체가 경쟁이며, 경쟁은 기본적으로 '배틀로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게다가, 상식이니 원칙이니 기본이니 하는 것을 떠들 여지도 없고, 필요도 없다. 모로 가든 명문대만 가면 되는 사회 아니던가. 자식을 출세 시키고 싶은 부모들, 출세 시켜 그에 걸맞은 집안에서 자라난 배우자를 골라 결혼시키는 것이 '꿈'인 우리의 부모들, '대학입시'가 교육의 전부인양 인식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는 권력의 부패를 비난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부패한 권력을 못 누려 안달이 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이해할 수밖에 없다.
세상을 보라. 수능 만점을 맞은 뒤에 자신의 노트를 '만점비결'이라며 출판해 팔던 어느 명문대 진학자,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주장하던 어느 늦깍이 명문대 합격자, 어떤 가치관으로 세상을 살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해외 명문대를 나와 돈을 많이 벌어 자서전을 출판하면서 '존경'한다는 목소리에 둘러싸인 사람, 이것은 뭘 말하는 것일까?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것은 관심 밖이라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그들의 '입시 대처 방법'과 '명문대 진학'이라는 결과일 뿐이다. 이것이 세상의 눈초리다. 물론, 집안이 가난해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노력 끝에 명문대에 갔다던 그 '끈기'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공부가 가장 쉬웠다"던 그 한마디가 세상의 진리인 양 책의 제목으로 출판됐다. 왜일까? 영화 <배틀로얄>에서 학생들이 저마다 다른 무기를 제공 받았다는 것을 돌아보자. "출발선이 달랐다"는 의미도 되지만, 개개인마다 재능도 적성도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면서도 외면한다. 누군가는 "공부가 가장 쉬웠을지"는 몰라도, 누군가는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그 '입시'에 대처하지 못하면 무능력자로 낙인찍혀 소외되는 사회, 우리의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는 일종의 '부채질'을 시도할 것이다. '수준별 이동학습'을 넘어선 '우열반'이 제도화될 것이며, 사설학원이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면서 정규수업화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교육체제에 학생들이 적응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첫번째로 판단할 수 있는 척도로는 0교시 수업과 심야보충수업의 제도화가 기다리고 있다.
세상은 이미 배틀로얄, 하지만 저런 제도 속에서 배틀로얄은 더 확고한 시스템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집안의 경제적 수준이나 '교과서 공부'에 대한 학생들의 차이 따위의 '다름'은 핑계로 치부될 일이 남았다. 여기서 소외되면, '공부 못하는 놈'이라는 손가락질 속에서 세상의 편견 대상으로 자리잡혀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이다.
대학입시가 교육의 전부인 양 인식되는 사회에서, 그네들은 단순히 패배자이자 공부 못하는 놈이지, 실업계 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제기하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나듯 돌출될 뿐이다. 그게 우리 사회,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뉴타운'이라는 말 한마디에 파블로프의 개로 전락하는 우리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사회다.
이명박 정부가 원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당신은 힘들게, 그것도 아주 힘들게 산을 올라가고 있다. 당신은 산을 올라가는 동안 혹시 어떤 이유에서인지 죽어가는 동료가 발견돼도 무시하고 올라가는 것만을 중요시하라고 교육받았다. 혹시 낙오된 사람들이 어떻게 낙오됐으며 그들의 안전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따위의 일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런 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당신은 어렵게 산의 정상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먼저 산의 정상에 도달했거나 헬리콥터를 타고 이미 올라선 사람들, 그리고 부모가 먼저 산에 올라갔다는 이유로 따라서 산에 올라갔던 사람들이 또 하나의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당신은 박수를 받는다. 당신은 이제 정상의 일원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 '정상'을 그리워하며 원할 뿐, 그 정상에서 어떤 부정부패가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두지 않는 사람들, 관심두지 않더라도 금새 돌아서서 '존경'을 던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사회에서 '초딩'이 욕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초딩'은 결국 어른의 거울이다. 어른이 이룩한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돌아볼 수 있는 척도다. 소문대로 아이답지 않은 행동을 태연스럽게 저지르는 '초딩'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은 부모들의 결과물일 가능성도 돌아봐야 한다. '뉴타운'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하는 기성세대가 교육시킨 아이들이 '초딩'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명박 정부는, 교육과 의료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산 정상 위의 사회'가 도전받지 않을 사회를 위한 정책만을 쏟아내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저서로도 유명한데, 이명박 정부는 결국 그 '사다리 걷어차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약소국이 경제적 강대국으로 도약할 수 없도록 '무역 개방'이라는 수단을 통해 그들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기존 경제 강대국, '산 정상 위의 사회'를 아무리 그리워해도 쉽사리 올라가지 못하는 '사다리 걷어차기'를 유발할 정책만 쏟아내는 이명박 정부, 결국 이명박 정부는 '사다리 걷어차기' 정부인 셈이다.
걷어차이는 사다리, 소년은 그 속에서 아버지를 잃었고 무인도에서 사투를 벌여야만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