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들이 초호화판 유람선에 오른다. 물론 가난한 학생은 배를 탈 수 없다. 배 삯이 비싸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학원들이 즐비하다. 때론 벌떼처럼 때론 소수로 이 학원 저 학원 그 학원에 드나들며 좋다는 대학 진입을 시도한다. 학교는 여벌이다.
'경부교육운하' 곳곳에 뉴타운 교육도시가 있고, 자율형 사립고니 공립형 기숙고니 마이스터고니 지역마다 특성화된 학교가 널려 있다. 학교도 관광 상품이다.
꿈에 나타날까 두려운 판타지다. 영어에 몰입하여 표현하면 '크레이지 에듀케이션 블랙 코미디 시츄에이션'인가?
꿈에 나타날까 두려운 판타지
뉴스를 들으며 화들짝 놀랐다. 초중고 우열반 자율화, 0교시 수업 자율화, 학교 내 학원강사 수업 허용, 사설모의고사 허용 등 그 동안 금지 조항으로 묶였던 주요 교육 현안들을 모조리 풀어버린다는 뉴스가 포털마다 머릿기사로 실렸다.
수능 이후 교육과정 내실화 방안도 폐지하여 고3 학생들의 학원 수강까지 학교 출석으로 인정한단다. 한 마디로 초중등 교육을 전면 자율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실용 외교를 표방하며 미일 순방에 나선 사이, 교육과학기술부는 온통 자율화를 내세우며 실용교육을 선언했다.
실용신안·실용음악·실용미술·실용수학 등 실제로 사용한다는 의미로 '실용'이 들어간 단어를 들어보긴 했으나, 전면 자율화를 실용으로 착각하여 성장기 아이들을 동물 사육화할 기세다.
초중고 교육을 온통 입시화하여 일선 학교를 대학 가는 공장으로 만들겠다는 발상 아닌가. 그래서 공교육과 사교육을 혼합시켜 레미콘을 만들어서 뉴타운 교육도시라도 만들겠다는 속셈 아닌가.
이 나라 실용주의 실현을 위해 성장기 아이들을 학습 노동자로 둔갑시켜 국민교육헌장에 등장하는 민족중흥이라도 이루겠다는 것인가.
사교육비를 반으로 줄여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던 대통령의 의지가 이렇게 쉽게 증발해버린다면 우리 국민이 정부의 어떤 정책을 믿고 따라야 할까? 새 정부는 진정 교육 무정부 사태를 원하나?
서열·차별·등급이 난무하는 정글
현재 초등학교 성적표에 석차가 기재되지 않는다. 교과목별 서술형 기재로 소모적인 경쟁을 막고 창의성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전환된 지 오래다. 그나마 공들여 이룬 공교육탑을 비틀어진 실용교육탑으로 탈바꿈시킬 셈인가. 이 어린 아이들마저 학력을 잣대로 우열반을 편성하여 성적의 노예로 전락시키려는가. 학교 현장에 정글의 법칙만이 우글대는 게 최선인가.
담임을 맡아 한 학급 아이들을 지도하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 변수가 존재하는지 당신들은 아는가. 성적 아닌 다양한 기제들이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는 신성한 공간이 학교 아닌가. 학교의 존재 이유조차 망각한 어른들의 만행에 희생되는 쪽은 학생들이다. 우리 미래다.
자율화라는 미명 아래 파행으로 치닫게 될 교육현장의 황폐화를 교육과학부가 모를 리 없다. 이번 조치가 경제를 살린다는 실용정부의 오판이기를 바랄 뿐이다. 교육마저 경제 개념으로 보고 실용주의를 덧칠할 수는 없다. 어떻게 공교육 담장을 넘어 시장판 뉴타운이 교육현장에 건설될 수 있는가. 왜 '실용(實用)'을 논하면서 '실용(失用)' 정책을 남발하는가.
2008.04.16 14:19 | ⓒ 2008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