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운전하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18일 오후(현지시각) 워싱턴D.C 북쪽 메릴랜드주 미 대통령 공식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도착, 조지 부시 대통령을 옆자리에 태운 채 골프 카트를 운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못 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일부러 가지 않은 면이 있었다. '숙박료'가 비쌀 것이기 때문이다."노 대통령 시절 한 청와대 관계자가 한 말이다. 사실인지 아닌지 선뜻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하룻밤 숙박함으로써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확실히 증명됐다.
우선 합의문이나 공동성명 등이 없이 그냥 양국 정상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것으로 끝났다. 청와대 쪽은 이번에는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신뢰회복에 의미를 두고 구체적인 양국 현안에 대한 합의는 올 7월로 예상된 정상회담에서 한다는 '2단계 전략'으로 이해해달라고 한다.
올 미국 대통령 선거는 11월 4일. 7월에 한미정상회담 '본편'이 시작된다고 해도 이 때면 부시 대통령의 실질 임기는 4개월이 채 안 남는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나온 '21세기 한미전략동맹'이라는 거창한 단어의 내용을 얼마나 채울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그리고 다음 미국 대통령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한나라당 및 그 전신 정당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민주당 쪽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1970년대 말 미 민주당의 지미 카터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1990년대 초 김영삼 대통령과 미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 때 한미 관계는 역사상 최악이었다. 설사 미국의 후임 대통령이 존 매케인이 된다고 해도 그 역시 공화당의 주류 성향은 아니다.
합의문이나 공동성명 없이 치러진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역으로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한다는 것 자체가 '뉴스'가 됐다. 캠프 데이비드 '호텔'에 묵은 것 자체가 '뉴스'가 된 것부터 숙박료 상승의 한 요소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일단 숙박료의 상당 부분은 한국이 광우병 우려가 있는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한 것이다.
"협상이 아니라 조공"(18일 최재성 통합민주당 원내대표)이라는 비난도 나왔다.
7월이 본편?... 이때면 부시 임기 거의 끝나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한미FTA를 연내 처리하자고 강조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보면 한미FTA가 가장 부각된다.
그러나 한미FTA 처리 권한은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미 의회에 넘어가 있다. 부시의 손을 떠난 지 오래됐다. 무엇보다 민주당 대권 주자인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이 자신들의 주요 기반인 노조의 일자리 감소 우려를 의식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한미FTA 자체가 과연 한국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여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뒤 일본으로 떠나기 앞서 워싱턴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열고 "현재 주한미군 숫자 2만8500명을 올 연말까지 2만5000명으로 줄이기로 되어있었다, 3500명이 주로 미 공군 쪽"이라며 "그러나 오늘 부시 대통령과 2만8500명 현 숫자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전 세계 해외주둔 미군기지 재배치 차원에서 지난 2004년부터 당시 3만7500명이던 미군 숫자를 올해말까지 2만5000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현재까지 2만8500명으로 줄어들었다. 3500명은 주한미군 감축 마지막 단계다.
한 국방분야 전문가는 "이미 줄어든 주한미군 숫자를 원상복구한다면 모를까, 주한미군 감축 작업의 마지막 단계에서 3500명이 더 있느냐 없느냐는 군사 기술적으로 볼 때 별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3500명 남겼다는 것을 핑계로 방위비 분담금을 50 대 50으로 높여주고 미 2사단 이전에 전용가능하도록 하며, 아프가니스탄 추가 파병을 양해했을 가능성이 짙다"고 밝혔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지난 2006년 말 1만명도 되지 않았던 미군 병력수가 최근 3만2000명으로 늘었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인근 지역에서만 중앙정부의 통치력이 미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미군은 이라크에 16만명이 주둔중이다.
미군은 전투 병력 부족으로 고등학생까지 모병하는 상황이어서 한국 정부에 대한 추가 파병 압박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보수 쪽 인사들은 3500명 잔류를 한미동맹 복원의 중요한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보수적 의미에서 한미동맹 복원이라면 전시작전권 환수와 한미연합사 해체를 막았어야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도 이는 이미 포기한 상태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연 공동 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은 한국이 하는 비핵·개방 3000'을 포함해 한국의 대북정책을 지지했다"고 소개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토대로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북한이 미국과 통하면서 한국을 고립시키는 것) 전술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이 마련됐다고 분석한다.
부시, MB 대북 정책 지지... DJ-노무현 때도 마찬가지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났을 때도 예외없이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지지를 보냈다. 심지어 부시 대통령은 지난 2002년 2월 20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함께 도라산역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부시는 대북 강경책을 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자신의 필요에 따라 움직일 때는 우방을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다. 일본 정부는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난 17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북핵 검증이 완료되기 전에 북한을 테러지원국과 적성국교역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미국 정부는 일본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 정부가 남북 당국간 대화를 다시 열고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통미봉남에 대응할 수 있지, 미국의 몇 마디 말로 가능한 게 아니다.
이 대통령의 연락사무소 제안 등이 일회용이 아니라 진심이 담겨 있는 것이라면 구체적인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북한이 반응하면 자연스럽게 통미봉남은 해소되는 것이다.
이 대통령 방미 기간 중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미국을 찾아 현지 언론으로부터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사실 이전 정권들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낸 광고만 대서특필될 뿐 정작 한국 대통령의 방미 소식은 미 언론들에게 거의 취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국 대통령 최초의 정상회담이야말로 한미동맹 복원의 물증이라고 보수 진영이 워낙 자화자찬을 하는 바람에 미 언론들의 MB 무시는 더욱 더 도드라져 보였다.
미 언론의 관심은 온통 교황에게만 쏠렸다. 워싱턴포스트와 CNN 등 미 유력 언론들은 매일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을 헤드라인 뉴스로 상세하게 보도했다.
이 때문에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도 교황에게 미 언론의 시선을 빼았겼다. 단 그는 존 매케인·버락 오바마·힐러리 클린턴 등 미 대선 유력주자 3명과 면담하는 것으로 체면치레를 했다.
'미국의 푸들'인 영국의 총리도 이런 꼴을 당하는데 하물며 한국 대통령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영국 언론들은 '브라운의 굴욕'을 조롱할 정도로 보도했지만 한국 언론들은 'MB의 굴욕'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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