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8.04.21 11:40수정 2008.04.21 13:37
논산이 군사도시라는 편견은 버려라
충남 논산은 어떤 곳일까. 지금은 사정이 좀 다르지만, 좀 나이 든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충남 논산은 '논산훈련소가 있는 고장'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 삭막한 곳에 무슨 문화 혹은 문화재가 있겠느냐?'라고 생각했다.
몇 년 전부터 틈틈이 논산 지역을 답사하고 있다. 답사를 거듭할수록 "그동안의 내 인식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나?'를 새삼스럽게 깨닫곤 한다. 논산은 율곡 이이의 적통을 이어받아 예학을 정비한 예학의 종장 사계 김장생이 태어난 고장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쌍계사 등 고풍스러운 사찰과 숱한 문화재가 산재한 곳이기도 하다.
어제(20일), 황산성 답사를 위해 일찍 길을 나섰다. 황산성은 논산군 연산면에 있다. 충남 연산군 연산면. 우리에게 '연산 대추'로 잘 알려진 곳이다. 삼국시대엔 황산군이라 했다. 연산이란 지명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부터였다. 연산이란 지명은 연산의 주산인 천호산의 봉우리가 동서로 길게 연달아 뻗은 데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연산면은 동쪽은 벌곡면, 북동쪽은 계룡시 두마면, 북서쪽은 상월면, 남서쪽은 부적면, 남쪽은 양촌면과 이웃하고 있다.
연산면에서 가장 번화한 곳은 구 연산 사거리 서쪽으로 펼쳐진 연산리다. 황산성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연산리 관창길을 걸어간다. 이곳을 지나면 곧바로 백제의 계백 장군이 나라의 흥망을 놓고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였던 황산벌이다.
관창길 왼편에는 연산시장이 들어서 있다. 그런데 웬일로 길바닥이 꽤 북적이는 듯싶다.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물으니 오늘이 바로 연산 장날이라고 한다. 아마도 5일과 10일에 장이 서는 모양이다.
연산에 몇 차례 다녀가긴 했지만 장날에 온 건 처음이다. 애개개, 이게 장날이야? 한눈에 봐도 5일장치곤 규모가 너무 작다. 하도 작아 장이라고 하기에도 애처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연산의 대표적인 특산품 대추
장터 안을 기웃거리다 보니 여기저기 대추 판매 상회들이 들어서 있다. 역시 '대추의 고장' 답다. 한 대추 가게를 들여다보니, 아주머니들이 대추를 고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인에게 "사진 좀 찍어도 돼요?"라고 물었더니 흔쾌히 수락한다.
한참 기다렸다가 피사체인 아주머니들이 내 디카를 의식하지 않는 만큼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셔터를 누른다. 그러고 보니 똑딱이가 가진 장점도 아주 없는 건 아니다. 큰 카메라를 들이밀면 피사체인 사람이 의식하고 몸이 굳어지지만 소형은 거의 그런 의식 없이 찍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가.
이곳 연산리의 연산시장은 대추의 집산지로 전국 유통의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대추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바람아, 바람아 불어라, 대추야 대추야 떨어져라"라는 장난기 섞인 노래 한 토막이다. 탁발 나온 스님의 뒤를 졸졸 따라가면서 이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런데 왜 노래의 끝에다 꼭 " 중중 까까중, 대머리는 반짝"이라는 구절을 첨가했던 걸까. 대추의 이미지와 삭도한 스님의 머리가 일치해서였는지 모르겠다.
제사상에 빠져서는 안 되는 과일이 대추다. 이런 제사 과일에도 계급사회의 흔적이 살아 있다. 대추에는 씨가 한 개 들어 있다. 그래서 왕을 상징한다. 대추를 반드시 제사상에 반드시 올려야 하는 이유다. "대추를 보고도 먹지 않으면 늙는다"라는 말이 있어 요새는 대추가 노화방지에 효험이 있는 과일로도 각광받고 있다.
물물교환이 주를 이루던 옛 장터의 '원형'
장터 중간쯤에 이르자, 기러기·오리·거위·칠면조·오골계 등 각종 새 새끼를 파는 아주머니가 있다. 다 커버린 기러기나 칠면조는 봤지만, 기러기 새끼나 칠면조 새끼를 눈으로 본 건 처음이다.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더니 "뭐하러 찍느냐"라고 묻는다. "그냥 신기해서 찍었다"라고 했더니, 우스갯소리로 "그럼 모델료를 내라"고 한다. "그럼 모델료는 드릴 테니 내 출사비를 내라"고 되받아쳤다.
장날 구경에는 흥정하는 묘미만 있는 게 아니다. 장날의 흥청거림 속엔 이런 류의 실 없음도 한몫 단단히 하는 것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오골계의 고장 화악리가 멀지 않은 탓인지 연산장엔 유독 '날지 못하는 새' 장사가 많다. 채소 모종과 나무 묘목을 팔러 나온 사람도 있다. 후미진 곳에 판을 벌인 나무 파는 아저씨가 손님이 들지 않아 무료한지 이리저리 왔다 갔다 서성거리고 있다.
장이 펼쳐진 거리라야 총 20~30m 가량이나 될까. 장 구경이 금세 끝나버린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연산장이야말로 자급자족하던 시대, 물물교환이 주를 이루던 옛날 장터의 모습을 잃지 않은 드문 5일장인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못 본 사람들을 만나 회포를 푸는 장(場)
아까부터 길거리에 서서 장보기는 뒷전인 채 장사나온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누는 아주머니를 본다. 시골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기도 하지만 오래 못 본 사람들을 만나 회포를 푸는 곳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만난 아는 얼굴들과 선술집에 서서 대폿잔을 나눈 것. 물건 구매 못지않게 소중한 일이다. 나도 예전엔 장터에 들르면 꼬박꼬박 막걸리 한 잔씩 걸치곤 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면 그건 엄연히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그러나 요즘엔 참새도 예전 같지 않다.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박목월의 시 '기계장날'을 떠올리는 것으로 막걸릿잔을 대신한다.
아우 보래이.
사람 한 평생
이러쿵 살아도
저러쿵 살아도
시큰둥하구나.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렁저렁
그저 살믄
오늘같이 杞溪(기계)장도 서고.
허연 산뿌리 타고 내려와
아우님도
만나잖는가베.
안 그런가 잉
이 사람아.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저 살믄
오늘 같은 날
지게목발 받혀 놓고
어슬어슬한 산비알 바라보며
한잔 술로
소회도 풀잖는가.
그게 다
기막히는 기라
다 그게
유정한기라.
- 박목월 시 '기계장날' 전문
한 잔 술로 마음 속에 묵힌 유정함을 풀어내는 장날. 흥겨운 시골 장터 풍경을 담아낸 시 가운데 이만한 시가 드물다. 신경림 시인이 쓴 '파장'이라는 시도 좋긴 하지만.
장터 후미진 곳에는 연산현의 소재지였던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연산아문이 자리 잡고 있다. 옛날 연산현 청사의 정문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목조 2층 누각이다. 누가 들여다보건 말건, 오늘 이 연산아문은 연산장을 더욱 고풍스럽게 하는 조연을 맡고 있다.
어쩌다 대전에서 가까운 옥천장이나 신탄진장에 가보면 전문 장사꾼들이 태반이다. 상설시장이나 별다를 게 없는 것이다. 대량생산·대량판매는 장날이 가진 본래의 기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연산장이 오래갔으면 좋겠다. 아직도 면 단위에서 장날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니 얼마나 귀중한 열림터인가.
이쯤에서 장터와 결별한 채 다시 황산성으로 향한다. 언젠가 이곳 장날에 다시 와서 짜하게 소문난 연산 순대이나 보리밥을 먹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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