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과 한국의 대화>
열린길
'팔레스타인'이란 고유명사가 지니고 있는 무게에 비해 <대화>는 의외로(?) 쉽게 읽혔다. 특히, 팔레스타인에서 보내온 글들은 그 곳의 현실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듯 생생했다. 또한 행간에 피와 화약 냄새가 배어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인간 냄새가 훨씬 더 강하게 풍겼다.
<대화>에는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빗속을 우산 없이 걷고, "그래, 또 봐!"라고 헤어지면서도 또 볼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고, 그렇기에 다시 만났을 때 잘 지냈느냐는 인사 대신에 "아직 살아있었구나!"라고 말하며, 콘크리트 장벽에 갇혀 인생의 3분의 1을 이스라엘 군인이 지키는 검문소 앞에서 줄을 선 채 보내야 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아슬아슬한 삶이 펼쳐져 있었다. 거기에는 또, 그럼에도 예술과 자연을 사랑하고,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들의 꿋꿋한 삶도 그려져 있었다.
책 속에서 소설가 김남일이 얘기했듯이 '팔레스타인' '아랍'하면, "폭도, 테러리스트, 원리주의자, 광신도, 악의 축, 이교도, 악마, 인질, 무지, 야만, 무질서, 폭력, 공포, 그리고 길바닥과 강과 사막에 널린 시체들!"을 먼저 머리에 떠올렸던 나로선,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면서 선입견이 깨져나가는 아픔이 오히려, 팔레스타인인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달콤하게까지 느껴졌다.
<대화>를 기획한 오수연을 직접 만나보고 싶어졌다. 전화를 하자 마침 그녀는 지난 12월부터 2월말까지 팔레스타인을 다녀왔다고 했다. 최근 팔레스타인 현지 사정도 귀동냥할 수 있을 듯싶었다. 4월 햇살이 따스한 어느 날 서울 홍대 앞 '창밖을 봐…'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마흔 중반의 나이에도 미소년 같은 얼굴에 목소리 역시 씩씩했다.
팔레스타인의 분리장벽은 한반도의 분단장벽으로 이어진다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란? |
한국과 팔레스타인의 예술가, 평화활동가, 시민들이 서로 문화와 예술을 교류함으로써 아름다운 세계로 함께 나아가기 위해 만든 모임. 국내에선 매월 모임을 열어 팔레스타인 영화·음악·문학 등을 소개하고 있다.
2005년 말 만들어졌으며 현재 회원수는 약 200명. 지난 4월 6일 총회를 열고, 비영리민간단체로서 공식적인 틀을 갖추기 위해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내년 '아랍문화제'를 열 계획도 세워나가고 있다. 홈페이지는 www.palbrid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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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표지에는 기획·번역자 자리에 오수연이 참여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이하 '다리')'란 모임 이름이 올라있다. 물론 '다리' 회원들이 여러 도움을 줬다. 하지만 '대화'를 실제로 기획하고 청탁하고 번역하고, 자료를 찾고 설명을 다는 일의 대부분은 그녀가 맡았다. 기획을 위해 팔레스타인 문인들과 계속 이메일을 주고받았으며, 팔레스타인에서 글이 도착하면 그에 맞춰 한국 작가들에게 답글을 부탁했다. 21명의 작가가 그녀의 청탁에 흔쾌히 응했다.
"한국 작가들이나 팔레스타인 작가들이나 참 적극적이었어요. 제가 전화를 걸었을 때 바쁘니까 못하겠다는 둥,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둥 이런 사람이 한 분도 없었어요. 제가 이번 겨울에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도 그 곳 문화계 사람들이 다 알고 이 책 반응을 막 물어보는 거예요. 유럽과의 교류는 많았지만 이런 식의 기획은 없었던 거죠."
<대화>의 기획 의도를 묻자 2006년 펴낸 <팔레스타인의 눈물(도서출판 아시아·이하 <눈물>)> 얘기로부터 시작했다. <눈물>은 수아드 아미리 등 팔레스타인 작가 11명의 산문을 엮은 책으로 역시 그녀가 팔레스타인 작가와 함께 기획하고 번역했다.
"팔레스타인 얘기를 알리되 정보나 숫자보다는 마음을 움직이는 글로 해보자 해서 <눈물>을 묶어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어요. 그런데 팔레스타인 작가들 이름도 어렵고 조금 멀게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한국 작가들과 함께 좀 더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감성적인 에세이를, 또 일방적으로 팔레스타인 얘기만 듣는 게 아니라 한국 얘기도 하면서 풀어나가면, 작가들한테도 도움이 되고 독자들도 가깝게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해서 (<대화>를) 제안하게 된 거죠."'대화'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을 뛰어넘어 서로가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자카리아 무함마드 시인이 팔레스타인의 선인장 꽃 그림을 얘기하자 소설가 전성태는 광주항쟁 때 계엄군의 총탄에 상처 입은 은행나무 얘기를 들려준다. 바쉬르 살라쉬 시인과 소설가 정도상의 글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분리장벽과 한반도의 분단장벽은 하나의 장벽으로 이어진다.
또한 이스라엘 주민법에 따라 은밀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팔레스타인 가정에 대한 아다니아 쉬블리 작가의 얘기에서 김해자 시인은 20대 시절 위장취업 생활을 하면서 다락방에 수배자 선배를 숨겨줬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린다. 바쉬르 시인이 이스라엘이 '안보'를 이유로 팔레스타인 땅에서 4만 그루의 올리브 나무를 뽑아낸 사실을 고발하자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작가 최성각은 함께 분노하며 신개발주의자들의 대운하사업 등을 비판하기도 한다.
오수연도 책 서문에 <대화>는 "서로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신호 보내기"이자 "어깨 걸고 함께 버티기"였다고 적었다. 그에게 "한반도의 분단장벽과 팔레스타인의 분리장벽은 실은 별개의 장벽이 아니며, 이스라엘 불도저에 4만 그루 올리브 나무가 밀리고 새만금에서 백합과 농발게가 사라진 것도 다른 사건이" 아니다. <대화>를 읽는 독자들에게 바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독자들로선) 간단하게, 저(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나처럼 상처받고 섬세하고 자유롭고 싶고 그런 사람들이구나, 이걸 느끼면 된다고 생각해요."미국 때문에 팔레스타인에 갔는데...오수연은 2003년 이라크전쟁 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현재 한국작가회의)의 파견 작가이자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을 다녀왔다. 그때 체험을 2004년 보고문 <아부 알리, 죽지 마 - 이라크 전쟁의 기록>(향연)에 담았고, 지난해에는 그 체험을 바탕으로 연작소설집 <황금지붕(실천문학사)>을 펴냈다.
또한 팔레스타인에서 만났던 작가들을 한국에 초청하고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는 데 다리를 놓았으며, 앞서 얘기했듯이 2006년 팔레스타인 작가들의 산문을 묶어 <팔레스타인의 눈물>을 펴내기도 했다. 이같은 활동에 힘입어 2006년 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젊은작가포럼이 선배 문인에게 주는 '아름다운 작가상'을 받았다. 선정 이유는 "두려움을 떨치고 작가의 존재이유를 보여주었다"는 것이었다.
"2003년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만 해도 솔직히 너무 몰랐죠. 미국 때문에 간 거죠. '미국 해도 참 너무해' '가만히 앉아서 있을 수 없어' 해서 간 건데, 가니까 아랍이라는 거대한 세계가 있었던 거죠. 그 이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면서 사람도 만나고 책들도 보고 그러는데 거긴 정말 하나의 월드예요, 아랍권, 아랍월드죠.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자라면서 받아들인 문화가 미국 위주였기 때문에 가보면 우리가 얼마나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 알게 돼요."2003년엔 "너무나 모르는 세계를 처음 접해서 어벙벙하고 사태를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제대로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지난해 12월 3일부터 올 2월 27일까지 3개월간 팔레스타인을 다시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