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개봉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성적을 비관해 자살한 고등학생을 다뤄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사진은 영화 주인공 은주가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모습.
# 장면 둘. 아무도 '블랙리스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물론, 월초고사와 월말고사가 있었고, 국영수 같은 중요 과목은 주초고사와 주말고사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1년 365일, 하루가 멀다 하고 시험만 치렀던 셈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점수를 올리는 데에는 수업 열 번이 시험 한 번에 미치지 못하는 법입니다.
시험이 끝나고 결과가 나오면 석차를 공개했습니다. 전지에 검정 매직펜으로 써서 복도 한 쪽에 붙였는데, 1등부터 100등까지의 우등생 명단과 꼴찌부터 100명까지의 열등생 명단(이를 '블랙리스트'라 불렀습니다)을 대조할 수 있도록 다음 시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나란히 걸어두었습니다. 시험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는 취지였습니다.
비평준화 지역의 인문계 고등학교였던 까닭에 꼴찌라 해도 나름대로 '잘 나가는' 학생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순간 선생님들은 물론, 친구들에게조차 문제아로 낙인찍히는 뼈아픈 좌절감을 맛봐야만 했습니다. 와신상담 노력하여 그 깊은 수렁에서 벗어났다는 친구들 얘기는 거의 들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퇴학도 많고, 자퇴도 흔했으며, 드물긴 했어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대개 연이은 시험과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못 이긴 경우입니다. 교실에 빈 책상이 하나둘 늘어나도, 선생님은 '다수를 위해서는 소수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며 한눈 팔 때가 아니라고 다그치셨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해 볼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 장면 셋.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도시락 3개 가지러학교에 급식소가 따로 없었기에 모두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말하자면 교실은 공부하는 곳이자 밥을 먹는 식당이기도 했습니다. 학급당 학생 수가 60명이 훌쩍 넘었고,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까먹는 짓궂은 친구들이 있어서 수업 시작 몇 분 동안은 교실을 환기시키는 시간이었습니다.
등교 시간이 오전 7시,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밤 10시, '소수 정예'의 특별반은 자정이 돼서야 끝나는 빡빡한 생활 속에서 도시락은 모두 세 개씩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하루 세 끼를 모두 학교에서 해결해야 했고,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웃지 못할 유행어도 그 즈음 생겨난 것입니다.
보온도시락을 세 개나 챙길 형편이 안 되는 많은 아이들에게 겨울철은 식사 시간마저 즐겁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찬밥'을 먹어야 했던 아이들보다 도시락을 세 개씩이나 준비해야 했던 부모들의 고통은 훨씬 더 컸습니다. 고등학생을 두 명 둔 경우는 아예 도시락 챙기느라 아침이 부모에게는 '뼛골 빠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자녀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었던 '극성' 부모들은 식사 시간에 맞춰 학교를 찾아가야 했고, 교문에서 도시락을 사이에 둔 자녀와의 짧은 만남이 교도소 면회하듯 이뤄졌습니다.
오로지 자녀가 명문대에 갈 수만 있다면 자신과 다른 가족들의 그런 고통쯤은 너끈히 이겨낼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명문대 입학과 (죽지 않을 만큼의) 매질을 맞바꿀 수 있다는 얘기도 부모들의 입을 통해 심심찮게 흘러나오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