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은 싫지만 평범한 건 참을 수 없다

제13회 동춘당문화제의 일환으로 열린 김선화 서예전

등록 2008.04.27 12:57수정 2008.05.0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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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기

어제 개막한 제13회 동춘당문화제

어제(4.26)부터 대전 동춘당공원 일원에서는 동춘당 탄생 402주년을 기념하는 제13회 동춘당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동춘당 송준길(宋浚吉, 1606~1672)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예학의 종장이라 일컫는 사계 김장생의 제자로서 예학(禮學)에 아주 밝았던 분이다. 문장과 글씨에도 뛰어났다. 우암 송시열 등과 함께 효종이 세운 북벌계획에 참여했으나 김자점이 청나라에 밀고하는 바람에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던 조선의 강골 선비다.

동춘당문화제는 동춘고택(대전 유형문화재 제3호)과 별서인 동춘당(보물 제209호), 그리고 송용억가(대전 민속자료 제2호)를 중심으로 열리고 있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큼 해마다 똑같이 되풀이 되는 행사의 내용을 올해는 과연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상투성과 구태의연함을 벗어던지고 참신함과 창의성으로 시민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역시나' 하는 실망감으로 변하지 않길 바라면서 어제(4.26) 오전, 문화제가 열리는 동춘당공원을 찾았다.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잠시 동춘당에서 열리는 숭모제례를 지켜보다가 문인화전과 서예전이 열리는 근처 송용억 가옥으로 향했다.

송용억 가옥은 대전시에 산재한 여러 문화재 중에서 내가 가장 즐겨 찾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 영산홍과 자산홍이 활짝 피어나 만화방창한 꽃천지를 이루었던 이곳은 이제 뒤꼍의 고려영산홍과 새로 피어난 백모란과 적모란만이 뜰을 지키고 있다.

이색적인 소재를 사용한 김선화 서예전


일 년 전부터 이곳 송용억가 사랑채는 두 사람의 예술가가 작업실로 쓰고 있다. 일흔이 넘은데다 몸마저 불편하신 집주인 송봉기씨가 근처에 아파트를 얻어 나가면서 집을 관리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큰 사랑채인 소대헌은 주로 문인화를 그리는 분이 쓰고 있으며 작은 사랑채인 오숙재는 서예가인 김선화씨가 쓰고 있다. 무엇을 생각하면서 집을 내주었는지 미루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작은 사랑채인 오숙재에선 동춘당문화제의 일환으로 열린 김선화 서예전이 열리고 있었다.


 '만사여의'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순조롭게 잘 이루어지라"는 뜻.
'만사여의'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순조롭게 잘 이루어지라"는 뜻. 안병기


 '인내'와 '상심'. '상심'이란 "평상심'이란 말을 줄인 것이다. 불가에서는 "평상심이 도"라고 얘기한다.
'인내'와 '상심'. '상심'이란 "평상심'이란 말을 줄인 것이다. 불가에서는 "평상심이 도"라고 얘기한다. 안병기


 
 '애'와 '무한불성'.  '무한불성'이란 "땀 흘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라는 뜻이다.
'애'와 '무한불성'. '무한불성'이란 "땀 흘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라는 뜻이다. 안병기


                                               
 '복'.
'복'.안병기

 판자에 쓴 '화이부동'. 논어에 나오는 말로 "화합하여 잘 지내되 각자의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자"라는 뜻이다.
판자에 쓴 '화이부동'. 논어에 나오는 말로 "화합하여 잘 지내되 각자의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자"라는 뜻이다. 안병기

화랑이 아닌 고택에서 열리는 서예전에는 색다른 맛이 있다. 붓이 있어야 할 태자리인 선비의 집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무척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본색(本色)을 잃어버린 채 둥둥 떠다니는 요즘 사람들의 세상살이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 바로 이 같은 '제자리 지키기'가 아닐까.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전시 준비가 약간 덜 된 모양이다. 망치로 작품을 걸어둘 기둥에 못을 박는 작가의 손길이 몹시 분주하다.

전시된 작품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글씨를 쓴 다음 도자로 구운 작품과 꺼끌꺼끌한 삼베에 쓴 작품. 도자로 구운 작품은 초벌로 구운 도자를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하기 위해" 아무렇게나 깨트린 다음 글씨를 쓴 다음 다시 구운 것들이다. 도자의 가장자리는 바른 유약의 양에 따라 제각기 다르고 다양한 무늬를 연출하고 있다.

다른 한 종류는 삼베에 글씨를 쓴 작품들이다. 어떻게 붓질이 잘 안 될 게 뻔한 꺼끌꺼끌한 삼베에다 굳이 글씨를 쓴 것일까. 아무래도 한옥과의 조화를 염두에 둔 게 아닐까.

세상엔 <한문성경보감>이란 책도 있다

  한국기독서예선교원에서 제작한 우리말식 한문 성경인 <한문성경보감>의 한 구절. "어렸을 때 가르쳐 놓으면 나이들어서도 잊어버리지 않는다"라는 뜻이라 한다.
한국기독서예선교원에서 제작한 우리말식 한문 성경인 <한문성경보감>의 한 구절. "어렸을 때 가르쳐 놓으면 나이들어서도 잊어버리지 않는다"라는 뜻이라 한다. 안병기

  <한문성경보감>의 한 구절.
<한문성경보감>의 한 구절. 안병기

 '상심'.
'상심'.안병기

 '인내".
'인내". 안병기

작품의 글씨는 행·초서를 섞어 썼다.  문화제의 성격에 맞추려다 보니 그리된 것일까. 글의 내용도 '애'라든가 '복' 같은 간단하면서 일상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삼베에 꽤 길게 써내려간 글씨는 무슨 내용일까.

작가에게 물으니 <성경보감>의 구절들을 적은 것이라고 한다. <성경보감>이라니? 듣느니 처음이다. 재차 <성경보감>이 어떤 책인지 물었더니 성경을 한자로 옮긴 것이라 할 뿐, 자세하게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몇 마디 말로 딱 부러지게 설명하기엔 벅찬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와 검색해 보니, 한국기독서예선교원에서 제작한 우리말식 한문성경이라고 나온다. 정식 이름은 <한문성경보감>으로 아마도 서예가들을 위해 만든 책인가 보다. <신약성경> 시편에 나오는 한 구절만 예로 들자면 이런 식이다.

主乃我之牧者(주내아지목자), 使我不至窮乏(사아부지궁핍), 使我臥於草地(사아와어초지), 引我至可安歇之水濱(인아지가안헐지수빈) 여호와는 나의 牧者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詩篇 23: 1~2절

"부지런하지 않으면 세상을 읽을 수 없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부지런히 쫓아다니면서 세상을 읽을 수밖에.

1984년, 정신 수양차 서예에 입문했다는 김선화 작가. 그의 작품들에선 화선지 대신 도자와 삼베라는 이색적인 소재에서 풍기는 여성만이 가진 특유의 아기자기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소재는 그렇게 여성스러운 반면에 글씨체만은 남성 서예가의 서체를 방불할 만큼 굉장히 활달하다. '화이부동'이라 쓴 작품이 대표적이다.

공자의 세계는 화이(和而)'를 추구했던 세계였을지라도  예술은 역시 "화이(和而)'보다는 '부동(不同)을 추구하는 세계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문화재인 오숙재에서 작업하는 이 작가가 남들의 작품과는 결코 화목하지 않고 홀로 독야청청한 작품 세계를 이뤄가길 빈다. 제13회 동춘당문화제는 오늘까지 계속된다.

서예가 인정 김선화

인정 김선화

한국서화작가협회 초대작가
국제미술가협회 영동지부장
근정회(槿情會) 회원

1984년 서예에 입문 동춘 박기태 선생에 사사
1988년 신춘초대회원전
1990년 아세아국제미술전
2004년 대한민국국제미술대전종합대상
2005년 한·일 서화대전 감사장
2006년 한·중 명인 병장 우수작가전
2007년 2014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기원 웰컴 투 평창 214인전

*개인전 2회

현재 충북 영동에 거주하는 작가는 송용억가의 작은 사랑채인 오숙재를 작업 공간으로 삼아 정진하고 있다.

#동춘당문화제 #송용억가 #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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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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