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회 강화군의회 의원. 신성초등학교 1회 졸업생으로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참석했다.
조경국
구 의원은 강화군에서 3선째 군의원을 하고 있다.
"졸업한 지 37년째 되는 후배들을 폐교가 된 모교에서 만나보니 감개무량합니다. 그동안 머리도 희끗희끗해지고 보릿고래를 넘어 힘들게 살아오느라 애환도 많았을텐데 그래도 고향에서 동창 친구를 만나게 되니 행복하기 그지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인생의 후반기라 할 수 있는 오십 고개에 올라섰는데 앞으로 남은 세월은 힘닿는껏 사회에 봉사도 하고 반칙하지 말고 정직하게 결승점을 향해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전애자 선생님의 '다시 듣는 수업'이 있겠습니다."전애자 선생님은 스물 두 살에 교대를 졸업하고 신성초등학교에 발령받은 뒤 6년 6개월간 근무하고 인천, 서울에서 교편을 잡다가 작년에 정년퇴임을 했다.
"차렷! 경례."옛날 반장 고상남씨의 씩씩한 구령에 따라 인사를 받은 뒤, 선생님은 준비된 출석부를 읽어갔다. 모두 54명의 졸업생 중에 30여명이 참석했다. 그 사이 세 명은 유명을 달리했고, 연락이 끊긴 이도 여럿 있다고 한다. 선생님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동창회장은 스크린에 띄운 졸업앨범의 얼굴 하나하나를 가리켰다. 흑백 졸업앨범 속의 단발머리·까까머리 초등학생들은 착한 자세로 반듯하게 서 있었다.
37년 만에 불러보는 출석부출석부 이름을 부른 뒤 선생님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37년 만에 제자들에게 수업을 했다.
"저기 창밖의 운동장에 높다랗게 서있는 포플러·노간주나무 같은 나무가 보이죠. 제가 부임한 뒤 학생들하고 함께 심은 나무들이에요."37년의 세월은 코흘리개 학생들뿐만 아니라 나무들이 성장하는 데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여러분 옥수수빵 먹던 기억나요? 처음엔 옥수수가루 빻아서 학교 숙식실에서 쪄서 나눠주었지요. 그리고 나무젓가락 만들어서 송충이 잡으러 다니던 것 생각나요? 지금 같으면 교장 선생님한테 '이것은 애들이 할 일이 아닙니다' 하고 항명했을 텐데, 그 땐 국가시책이라 그렇게 할 수 없었죠. 퇴비만들기 하던 일, 전등사·광성보로 걸어서 소풍가던 것도 생각 나네요."환갑이 지난 전애자 선생님은 이십대 초반의 앳된 여교사로 돌아가 추억의 보따리를 맘껏 풀어 놓았다.
"제가 부임한 뒤부터 강화 길상면의 강남중학교에 가려면 시험을 봤어요. 그 때 학부모님들이 그래도 중학교에는 가야 된다면서 학교에 전기 설치하는 것을 도와주고 비싼 시험지도 구해주고, 저녁 늦게까지 공부했어요. 그 때는 저도 경험이 짧아서 가르치는 게 서툴렀는데, 아이들 성적이 안 오르면 혼자서 울곤 했지요."젊은 여교사로서의 애환도 털어 놓았다.
"당시 교장 선생님이 하얀 양복에 하얀 구두 신던 멋쟁이였는데 청소를 얼마나 철저히 관리하던지 비품에 먼지라도 하나 있으면 난리가 났죠. 그리고 난 강화에서 자라서 풍금도 잘 못 쳤는데 처음에 애를 많이 먹었죠."선생님의 수업이 끝난 뒤 모두 일어나 교가 제창을 했다. 신성초 1회 졸업생이라는 넙성리 이장님도 따라 부르셨다.
"대모산 힘찬 줄기 강화를 이루고 손돌목 높은 파도 우리 기상일세. 이 곳에 우뚝 솟은 신성학교는 배움의 터전이요 문화의 선봉."얼굴에 동심의 꽃이 활짝 피어난 나이 오십의 학생들이 입을 모아 교가를 부른다. 뒤이어 경기도 양평에서 국악 봉사 활동을 한다는 예쁜 '알방구리' 최정애씨가 동창, 고향 어른 들 앞에서 노랫가락을 구성지게 뽑았다.
"꽃 사시요. 꽃을 사시오 꽃을 사. 사랑·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