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황을 도표로 나타내면 <그림1>과 같다. 괄호 안의 숫자는 각각 해당 선택에 대한 한국의 이익과 미국의 이익을 나타낸다. 쇠고기 수입을 하지 않고 FTA가 비준되지 않으면 (즉 D의 경우) 아무 일도 없던 상황이 되므로 이 때의 이득값을 각각 (0, 0)으로 정한다.
그리고 FTA가 체결되었을 때 한국이 얻는 이득을 100으로 잡자.(이 부분에서도 논란이 많겠지만 FTA를 추진하는 정부의 입장을 반영했다.) 한국이 FTA로 100의 이익을 얻을 때 미국은 얼마의 이득을 얻을 것인가는 참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대략 미국 경제가 한국의 열 배 이상인 점을 감안해서 미국의 이득을 10으로 보았다.
즉, 한미FTA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100으로 보았을 때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그 1/10으로 본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모델링이다.
이제 쇠고기 수입의 효과를 생각할 때다. 여기서도 논란이 많을 것이다. 대통령은 이익이라지만 아마도 그것은 총체적이고 결과적인 이익일 것이다. 값싼 수입소가 들어오면 한국시장을 점령할 것이므로 분명 그 자체로는 손해다. 이 손해의 정도를 50 정도라고 보자. (이 또한 모델링이다. 정말로 어떤 수치가 정확한지는 경제학자들이 보다 엄밀하게 계산해야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한 미국의 이득 역시 한국이 손해 보는 정도의 1/10이라고 하자. 그러면 B항에서의 이해 득실은 (-50, 5)가 된다. 이 때, 쇠고기도 개방하고 FTA도 승인된 경우(A)의 이해 득실은 B와 C의 이해득실의 합과 같다. 이를 정리하면 각국의 이해 득실은 <그림2>와 같다.
미국, 자국 이익 극대화하려 쇠고기 개방 '위협' 가능
이제 각국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자.
미국은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FTA를 비준하는 것이 이득이다. 한편 한국은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수입을 거부하는 것이 이득이다. 따라서 양자가 각자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면 그 결과는 C가 된다. 이는 너무도 상식적인 결과이다. 세계 여러 나라가 이런 이유 때문에 서로가 이득을 보는 윈-윈의 결정을 내린다. 이런 게임을 '비영합 게임(non-zero sum game)'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한쪽이 다른 한쪽에 위협(threat)을 가하는 경우다. 월등한 국력차와 한미 간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하면 미국이 한국을 위협할 수단은 많다.
다시 <그림2>를 보자. C의 경우가 한국에는 최선이지만 미국에게는 A가 최선이다. 즉, 미국으로서는 A로 가고 싶은 유혹이 존재한다. 이 때 미국은 한국에게 "만약 한국이 수입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FTA를 비준하지 않을 것이다"고 위협한다. 즉, 미국은 D로써 한국의 C를 위협할 수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이런 입장이 너무나 확고해서 어떻게 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면 A로 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A의 이득(50)이 C의 이득(100)보다 작기는 하지만 D의 이득(0)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는 한미FTA를 찬성하는 정부 고위관료들의 한결같은 논리구조이다. 다른 여타의 각론에서 약간씩 손해를 보더라도 전체적으로 우리가 조금이라도 이득이면 그렇게 간다는 것이다.
한국, 쇠고기 수입 손해 크게 보면 '위협'에 맞서야
그러나 과연 이 결과, 즉 A의 경우가 현실적으로 최선의 결과일까. 한국은 미국에 맞선 어떤 위협도 할 수 없는 것일까. 200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전략이론의 대가 토마스 셸링(Thomas C. Schelling)에 의하면 자신의 이득값을 삭감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상대방을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이 A의 경우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쇠고기를 수입했을 때의 손해가 FTA를 했을 때의 이득보다 크지 않다는 대전제 때문이다. 만약 쇠고기 수입의 대가가 FTA에 의한 이득을 초과하면 (즉 100보다 더 크면) 한국이 A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 정부가 쇠고기 수입의 손해를 100보다 작다고 인정해 버리면 스스로 운신의 폭을 줄이게 된다.
만약 통상관리들이 쇠고기 수입의 손해를 FTA의 이득보다 두 배(200)로 크게 계산했다면 이 때의 이해득실은 <그림3>과 같다. 이 표에 의하면 한국은 C에서 D로 갈 수는 있을지언정 A로는 가지 못한다. 즉, 스스로의 이득을 삭감해 버리면 누가 봐도 한국이 수입개방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따라서 미국에게도 한국으로 하여금 A로 가게 할 유인요소가 제거되는 것이다.
토마스 셸링에 의하면 "성공적인 위협이란 그것을 이행할 때 상대방보다 자신이 더 많이 다친다는 위협"이다. 그러니까, 협상에 나선 한국 관리들은 <그림2>가 아니라 <그림3>을 가지고 협상에 임했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실제 쇠고기 수입에 의한 손해가 50인지 200인지가 아니다. 실제 손해가 50이라 하더라도 협상에서 최고의 국익을 얻으려면 200이라고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한국 관리들이 오히려 <그림2>의 이해득실을 공공연하게 한국 국민들에게도 주장해 왔다. 언론들도 이 논리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었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스스로의 손을 묶어버린 것이다.
정말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손해가 50밖에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 손해는 아마 200보다도 훨씬 더 클 것이다. 왜냐하면 광우병 쇠고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한국의 검역주권과 통상주권이 포기되었다. 생명과 주권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지금은 FTA에 의한 긍정적인 효과 자체가 문제시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설령 FTA로 인해 한국이 얻는 직간접적인 효과가 제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헛되이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보다 좋을 수는 없다. 그러니까, 현실의 상황은 <그림3>의 A 경우보다도 훨씬 심각하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한국 관리들은 <그림2>의 계산표로 협상에 임했고 그 논리대로 국민들을 설득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통상관리들은 쇠고기 수입으로 인한 국가적 손해를 상대적으로 매우 낮게 책정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통상관리들은 광우병에 노출된 한국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은 협상과정에서 전혀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국민을 아끼는 마음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민을 아끼는 마음이 없더라도 훌륭한 협상을 위해서는 국민을 무척 '아끼는 것처럼' 해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과를 정해놓고 협상하는 시늉만 한 것 아닌가
이는 협상 자체에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라 협상의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협상하는 시늉만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즉,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위한 일종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의 말마따나 쇠고기 협상이 FTA와 전혀 무관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이번 쇠고기 협상이 단지 방미 중 캠프 데이비드에서 숙박할 것인가 백악관에서 숙박할 것인가와 연동되었을 뿐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물론 백악관보다야 캠프 데이비드에서 숙박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한국에게 도움은 되겠지만 그 정도는 매우 미미할 것이다. 편의상 이명박 대통령이 백악관에 묵을 때의 이득을 0이라고 했을 때 캠프 데이비드 숙박의 이득을 1이라고 하자. (물론 이 값은 FTA를 통해 한국이 얻는 이득 100에 비해 무척 과장된 수치이다.) 미국 또한 이를 통해 동맹의 건실함을 과시한 댓가로 1의 이득을 얻는다고 가정하자. 이것을 표로 정리하면 <그림4>와 같다.
게임이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모든 게임의 참가자가 충분이 합리적이며 이성적이라는 가정을 해야만 한다. 한국이 특히 미국과 갖가지 협상을 해 온 것을 보면 과연 한국은 충분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플레이어인가 하는 의구심을 늘 갖게 된다. 지난 4월 24일자 한겨레 신문 기사(http://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283997.html)를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쇠고기 개방을 노무현 때부터 준비된 것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보고회에서 "당선인 시절 노 대통령을 만나 퇴임 전 쇠고기 문제 해결을 요청했더니 '한-미 에프티에이 협상 때 미국 쪽이 자동차 재협상 문제를 들고 나오면 쇠고기를 들고 있다가 바터(교환)하겠다. 당시 그 조건 때문에 해 줄 것을 안 해 준 것'이라고 말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하지만 이번에 미국 갔을 때 수전 슈워브 무역대표부 대표가 자동차 문제에 대한 재협상이 없음을 분명히 강조했다"며 "따라서 쇠고기 문제는 한-미 에프티에이와 상관 없이 풀어줘야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이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협상참가자로서의 자세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우리 쪽의 기본협상전략을 그대로 노출시킨 것도 그렇고 막강한 히든 카드 하나를 그냥 버린 것도 그렇고, 미 무역대표부의 말 한마디에 시장개방이라는 행동을 취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엄청나게 낮은 가격으로 농약과 각종 유해물질에 절은 중국산 농산물이 들어와도 이제는 "값싸고 질좋은 농산물을 먹는 것에 도움"이라고 얘기해야 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까지의 나의 분석이 아주 헛된 것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통상관리들이 충분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것이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도움말을 주신 이현근 박사(고등과학원)와 이충기 박사(이화여대)에게 감사드립니다.
2008.04.29 18:21 | ⓒ 2008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게임이론으로 분석한 쇠고기 수입과 미 FTA 비준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