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때문에 식당하는 것도 창피하지 않아"

무뚝뚝한 나의 아버지, 사랑합니다

등록 2008.05.08 14:35수정 2008.05.0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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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어머니와 무뚝뚝한 아버지 가게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대화는 거의 없다. 처음엔 이런 무뚝뚝한 아버지가 미웠지만 이제는 묵묵히 뒤에서 가족에게 주는 사랑을 느껴서 너무 감사하다. ⓒ 이상원

▲ 가게에서 어머니와 무뚝뚝한 아버지 가게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대화는 거의 없다. 처음엔 이런 무뚝뚝한 아버지가 미웠지만 이제는 묵묵히 뒤에서 가족에게 주는 사랑을 느껴서 너무 감사하다. ⓒ 이상원

아버지는 부유한 가정에서 부족한 것 없이 생활했다. 어려서부터 '엘리트'라는 말을 들으며 서울에서 유명한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했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취직해 10년을 근무하셨다. 11년째 되던 해 아버지는 개인 사업을 하신다고 사표를 냈다. 

 

첫 번째로 한 건설회사. 아버지는 천안에 조그만 건설회사를 차렸다. 아파트 부지, 골프장 부지에 7년을 매달렸으나 계약은 한 건도 없었다.

 

두 번째로 한 관광회사. 처음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관광회사를 차렸다. 천안의 2개 대학과 계약하고 서울에서 천안까지 통학버스를 대절했다. 비교적 큰 규모로 사업을 운영하던 중 천안에서 서울간 전철이 개통된 2005년 후 회사는 문을 닫았다.

 

결국 어머니는 건설회사 사업의 실패 후 조그만 꽃가게를 차렸다. 수입이 없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께서 가족을 위해 매일 같이 가게에 나갔다. 6년 만에 어머니는 식당을 하나 더 차리셨고 우리 가게는 두 개가 됐다.

 

처음에 아버지는 가게에 잘 나오지 않으시다가 몇 년 전부터 매일 나오신다. 아버지는 말도 없고 무뚝뚝하다. 중고등학교 때는 아버지가 바쁘셔서 거의 못 뵀고, 대학교 와서는 말없고 무뚝뚝하신 아버지이기에 대화가 없었다.

 

그런 아버지가 식당에서 식사하는 중 먼저 대화의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느낀 점과 교훈을 가르쳐 주셨다. 또한 이런 말도 했다.

 

"아침마다 넥타이 매고 큰 빌딩으로 출근하는 향수를 잊는 데 20년이 걸렸어. 너와 동생 때문에 이젠 식당하는 것도 창피하지 않아."

 

고등학교 다닐 때는 아버지가 왜 가게에 자주 나가지 않으시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순간 너무 눈물이 나 어쩔 줄 몰랐다. 어려서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던 아버지는 위기 상황에서도 향수에 빠져 거대한 꿈을 꾸셨던 것이다.

 

내가 태어난 25년 전 사진 속의 아버지는 나를 보며 웃고 있다. 25년이란 시간을 지나서 나눈 첫 진지한 대화로 그때 사진 속의 웃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예전의 향수보다 지금 서로를 의지하는 가족의 행복이 더 소중하다는 걸 알았다.

 

어버이날인 오늘 아버지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꽂아 드리며 지금까지 못했던 말을 하겠다.

 

나의 영원한 스승 아버지 존경합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2008.05.08 14:35 ⓒ 2008 OhmyNews
#충남대학교 #이상원 #오빠 #언론정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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